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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안대군 묘를 만났을 때

by 정수윤세

그는 조선의 개국공신이다. 본명은 이방간으로 태조 이성계의 네 번째 아들로 태어났고 제2차 왕자의 난 때 동생인 이방원에게 패배하고 실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좋아하는 편인데 회안대군은 주연이라기보다 조연에 가까운 인물이다. 조선 개국에 많은 도움을 줬었고 목표를 이룩하고 나서는 왕이 되고 싶다는 야망이 있었으나 동생에게 밀려 꿈을 이루진 못했다.


회안대군의 묘는 친할아버지의 산소와 맞닿은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할아버지 산소에서 바로 정면에 보였던 위치였기 때문이다. 현재는 이장을 해 다른 곳으로 모셔서 아니긴 하지만 항상 명절에 성묘를 가면 회안대군의 묘가 보여서 궁금하긴 했었지만 직접적으로 방문해 본 적은 없다.


사실 어떤 조선의 위인의 묘소도 찾아가본 적이 없다.

가장 유명한 여주의 세종대왕 묘도 가본 적이 없고 서울의 선정릉도 가본 적 없는데 최근에 운동을 시작하면서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 보니 갑자기 궁금해졌고 회안대군의 묘를 두 발로 걸어가 보았고 신기했다.

아래서 본 사진과 위에서 본 사진인데 일반적인 조선 부부묘는 좌우배치 이거나 남자가 위 여자가 아래에 위치해 있다고 하는데 반대로 회안대군이 아래 부인의 묘가 위에 위치해 있다고 하고 둥근 묘의 형식이 아니라 네모난 형태를 띠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웠던 사실은 회안대군의 묘의 위치가 군왕지지(君王之地)라는 군왕이 나올 명당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왜 묘를 이렇게 썼을까 싶었다.


다른 사람이 선점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위함일 수도 있는데 안내판에 의하면 이 자리가 ‘뜸 터’라고도 불린다고 했다.


실제로 땅을 파서 뜸을 뜬것처럼 해놓은 게 있다고 하는데 갔을 때 본 적은 있으나 멧돼지나 야생동물의 소행인 줄로만 알았었다.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는 게 놀라웠다.


이렇듯 조선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듯싶다.


당시의 사회 패턴을 본다면 그럴 만도 한 게 그래서 왕은 항상 힘이 있는 세도가들을 주시했고 견제하며 왕권 강화를 위해 힘써왔다.


현재는 조선의 때와는 너무 다른 사회구성이지만 어쩌면 아주 많이 닮아있다. 붕당정치가 생겨난 이례로 지금도 같은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니 말이다.


국민이 선출하고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있고 귀를 닫으면서 자신의 목소리는 알리려 하는 모순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는다. 물론 시민들의 말을 경청하고 법을 만드는 순기능을 하시는 국회의원분들도 계시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분들이 다수가 아니라 소수라는 것이고 소수라는 특성상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해 나가시는 분들이다.

국회의원처럼 사회 지도층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힘들어지기도 한다. 같이 만들어가는 국가와 사회를 어떤 소수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이름은 자신들만이 안다. 자신들만이 역사의 산 증인이고 우주에 존재하는 별들이다.

평소와 같이 낮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둠이 오면 언제나 빛을 내어 자신이 살아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언제나 우주에 존재하고 그렇기에 아름다운 하늘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아무리 새카만 검정 박스도 아주 옅은 빛만 있어도 도드라지게 보인다. 심지어는 스포트라이트 효과가 된다.


경험은 차이를 만들 듯이 역사는 우리에게 어둠이 빛을 잡아먹는 것을 방지하는 지침서가 되어준다.


자신만의 위치에서 자신의 빛을 보여주려는 모든 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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