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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지금 내가 짓고 있는 표정

by 도심 Mar 28. 2025

지금 당장 자신이 짓고 있는 표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라고 하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없을 것이다. 이유는 자신의 표정은 거울이나 카메라를 이용해서 보기 전까지는 어떻게 생겼는지 시각적인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자신이 가진 감각을 이용해 현재 기분이 어떤지 마음이 어떤지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서 또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추상적인 상상을 통해 말할 수 있다. 사람은 거울을 보기 전의 표정과 거울을 봤을 때의 표정이 찰나의 순간에 바뀐다고 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자각하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거울을 보기 전의 표정이 거울을 볼 때와 전혀 다름을 인간의 뇌는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모종의 이유로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이질감을 느낀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고 무심코 웃기라도 하는 날에는 자각하지 못하는 몇 초의 시간을 지나 웃었다는 자각과 함께 죄책감으로 자신을 어두운 그곳으로 끌고 들어간다. 과연 누가 그에게 웃음이 죄라고 말했을까? 무서운 일이지만 범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물론 개인적인 모종의 이유는 각가지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직장 동료 혹은 상사와 갈등, 가족과의 불화, 지인과의 다툼, 연인과의 이별 등 사람마다 이유가 있지만 그 누구도 자신에게 ‘웃는 것은 죄다’라고 말한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해 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분석하고 자신만의 피드백을 통해 잘못을 뉘우치는 과정에서 남보다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더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객관적 시각에서 보아도 자신보다 타인이 잘못을 저질렀음이 분명해도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존감이 낮다는 말로 일반화할 수도 있지만 섣부른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자존감이 낮다고 해서 모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지 않는다. 반대로 상대에게 모든 원인과 귀책사유가 있다는 소위 말하는 ‘남 탓’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남에게서 주로 이유를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은 모두 정당하며 자신만의 기준안에서 정당하지 못한 말과 행동들은 모두 타인에게 귀속시켜서 합리화를 통해 자신을 방어한다.


같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현저히 다른 사람들이 있다. 둘 중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개인의 마음이 느끼는 정도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먼저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에게 웃는 표정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은 하루하루가 지옥일 것이다. 정말 범죄를 저질렀다면 차라리 사법부의 판단을 통해 판결을 받고 항소를 하든 결과를 받아들이고 죗값을 치르든 선택할 수 있는데 자신에게 내리는 형벌은 정해진 기간이 없다. 심지어는 사법부에서 내리는 무기징역은 일정 기간을 지나 조건을 충족하면 사면을 받을 권한도 생기건만 자신에게 자신이 내리는 형벌은 끝이 날 기미도 보이지가 않는다. 이처럼 매일 죗값을 치르면서도 사회생활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집에서 나서는 순간부터 모두가 두렵게만 느껴질 것이다.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버텨내야만 할지 막막해진다.


남의 탓을 하는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은 지옥을 살아간다. 문제를 야기한 상대방을 매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이별로 끝이 났다고 해도 도무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언제 떠날지 지긋지긋하다. 만약 상대방이 불륜이라도 저질러서 이별 사유에 엄청난 지분을 가졌다면 상대방이 평생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이 결과는 상대방이 아니라 본인에게 귀속되어버린다. 오히려 상대방은 새로 만난 사람과 행복한 것 같고 SNS나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도 별일 없이 잘 산다는 말을 듣기라도 하는 날엔 더 울화가 치민다. 조금 다른 예로 연인관계가 아니라 상대방이 직장에서 마주치는 사람이거나 지인이라면 여러 사람이 있는 환경 속에 있으면서 고통받게 된다. 자신이 탓했던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어야만 하는데 또 다른 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 왠지 모를 분노도 생긴다.


이런 마음의 상처는 모두 표정으로 전이된다. 정확히는 마음의 표정이 외부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표정을 보고 어디가 아픈지 무슨 일이 있는지 좋은 일이 있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비교적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집에서는 마음 편하게 있으며 재미있는 것을 보면 웃고 즐겁게 살다가 외부에서는 의식적으로 웃는 표정을 지어도 진심으로 짓는 표정이 아니라면 금세 의식을 놓치고 무의식이 표정을 지배하는 찰나의 순간 다시 무표정으로 변한다. 자신이 무표정으로 변했는지 아닌지는 자각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상대방이 누구든지 간에 거울 같은 효과를 내기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자신이 최초에 웃고 있었다면 상대방도 내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면 자신 역시도 계속 웃는 표정을 유지하고 대화를 함에 있어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웃다가 어느 순간 상대방이 무표정이 되었다면 자신의 표정도 무표정이 되었다는 반증이 된다. 상대방의 표정에 집착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진짜 웃고자 한다면 진심을 통해 나오는 표정만이 상대방이라는 거울을 통해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의식적으로 무표정을 짓기보단 의식적으로 웃는 것이 모든 상황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는 있다. 떡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많이 웃어본 사람이 진심으로 웃는 표정이 뭔지 알 수 있다. 설령 무의식적인 실수로 상대방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절대 ‘웃음 금지형’을 내려선 안된다.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다 타고 하얀 재가 되어버린 나무토막 같다. 


유튜브를 보며 우연히 나태주 시인님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린아이’라는 시를 쓰셨을 때 영감을 받은 건 모르는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이었다.     


예쁘구나 생각했더니
방긋 웃는다


귀엽구나 말했더니
꾸벅 인사한다


하나님 보여주시는 세상이
이와 다르지 않다.     


나태주 시인이 말씀하신 길을 가던 모르는 어린이가 자신을 보고 웃는 이유는 자신이 웃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하셨다. 즉, 마음의 생김에 따라 표정이 생기고 표정에 따라 매일 만나는 같은 세상이어도 다르게 보인다는 말씀으로 나에겐 받아들여졌다. 


표정이란 웃음만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꿀이 뚝뚝 떨어진다고 표현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라던가 정말 싫어하는 물건 혹은 대상을 바라봤을 때 경멸하는 표정이라던가 슬플 때 짓는 표정이라던가 다양한 표정이 있다. 누구에게나 어떤 표정을 지을지 선택의 자유가 있음에도 자신을 억압해 웃음 짓지 못하거나 눈물짓지 못하는 사람은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웃음을 가장 큰 가치로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실된 마음으로 환하게 웃는 사람의 표정을 보면 주변 사람이 모두 동화되곤 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웃음은 번진다. 표정이 다양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는 원인은 자신이 가진 감정을 적재적소에 표현하지 못함으로 인해 혼란이 생기고 내부의 혼란은 외부까지 번져서 갈등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마음껏 웃고 마음껏 우는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뒷받침하고 있다, 아무리 인생이 힘들고 고달파도 웃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누구의 무엇이 아닌 단 한 사람이기에 타인을 신경 쓰느라 웃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예전 무한도전에 나왔던 노홍철 님의 말 한마디가 크게 와닿았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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