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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힘들어..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by 정수윤세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수시로 연락하지 않아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모르는 소중한 친구들에게 가끔 연락할 때가 있다. 내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다. 여유가 생기면 비로소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소소한 안부를 묻는다. 그럴 때면 인생이 항상 힘들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사실 친구라기엔 나이가 8살 어린 동생인데 약 5년 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어딘가 어른스러운 모습에 대단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똑똑하고, 현명하면서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동성도 아니고 이성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이렇게 연락할 때면 항상 인생이 힘들다고 말한다. 그리 깊은 속사정을 나누는 사이는 아니다 보니 무슨 일이 있는지는 상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최적의 단어를 찾아 말해주려 노력한다.


처음 알던 때부터 빨리 돈을 모아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2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에도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도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 굳이 말하지 않기에 나도 굳이 묻지 않았었다. 아주 가끔은 말도 안 되게 답답할 때 먼저 연락을 주기도 한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아주 잠깐이지만 편안해진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요즘은 그 친구에게 남자 친구가 있어서 티끌만큼의 오해라도 만들지 않으려고 1년에 한 번 안부를 묻는 정도인데, 3일 전에 진짜 딱 1년 만에 연락했음에도 인생이 힘들다는 답변이 먼저 돌아왔다. 일이 힘들고, 같이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람이 힘들다고, 살기 싫다고 말해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이든지 답답함에 자신도 힘이 든다고 했다. 물론 내게 정답을 원해서 한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이나 팩트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나의 답변은 이랬다.


‘사람은 사람이길 인정해야지, 새가 아닌데 하늘을 날길 원하면 끝내 할 수도 없겠지만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목적 지향적인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한순간에 받아들이고 바뀔 거라는 생각도 없고 그렇게 되길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아주 잠시만이라도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했다. 목표란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목표는 사람을 오히려 지치게 한다. 혹자는 목표를 높게 잡아야 그 비슷한 언저리에라도 머물 수 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자신의 현재 객관적 위치를 인지하고 인정하고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새가 아닌 사람이 하늘을 날고 싶다면 팔에 깃털을 붙이고 열심히 팔을 젓기보다는 도구를 이용하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패러글라이딩이든 번지점프든 스카이다이빙이든 글라이더든 원한다면 선택할 수 있다. 꼭 새와 똑같이 날개를 휘저으며 하늘을 날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도 아주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기에 누구에게도 정답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잠시 쉬길 바라는 이유는 계속 뛰어서는 숨만 차고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표에 다다르면 다다를수록 점점 목표는 멀어진다. 예를 들어 서울에 30평대 아파트가 인생의 목표인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미친 듯이 돈을 아끼고 아껴 5년 안에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고 한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한다. 목표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30평대 서울의 아파트를 구매하려 발버둥 치는 동안에 더 예쁘고 좋은 집들이 주변에 많이 생겨났고, 친구들은 이리저리 해외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고 행복한 모습만 눈에 보인다. 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목표로 두었던 집을 산 일은 분명히 대단한 일이고 박수받아 마땅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다음이 없다. 그렇기에 목표란 당장 눈높이에서 15도 정도 높이의 것을 바라보고 하나씩 천천히 계단을 오르듯이 이루어 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나를 이루면 둘을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기에 아주 작은 것부터 소소하게 만족감과 성취감을 충족시켜줄 목표를 하나씩 달성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위치도 높아져 있을 것이다.


분수에 맞게 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듣는 시점에 부정적인 마음이 더 컸다면 상대방을 욕할 것이고, 긍정적인 마음이 더 컸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비밀은 여기 있다고 본다, 자기 분수에 맞게 사는 게 행복을 찾는 최고의 지름길이다. 행복이 뭔지, 삶의 의미가 뭔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뭔지 찾으려 36년을 헤매고 다녔다. 그렇기에 힘들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위로도, 조언도 해줄 수 없다. 정말 힘들다고 느낄 때는 절대 믿지 않을 것이고, 믿을 수도 없음을 알고 있다. 답은 너의 마음 안에 있다는 말을 말이다.


우리나라는 신분 계층이 사라졌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사회적 신분 계층은 계속 사람들의 고정관념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있다. 나는 행복한 노비다. 불행한 양반이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재 불행하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무조건 양반이 되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렇게 힘들게 달려간다. 정말 크나큰 모순이고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희망 고문이다. 특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양반이 되길 바라는 사람들은 자신은 원래 양반이라고 속이며 신분제도가 없어졌음에도 마음속의 신분제를 자신만의 생각과 시각을 투영해 세상을 바라본다. 이때 한걸음 물러서서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과연 누가 나의 신분을 정해주었는가? 조상님 혹은 부모님인가? 아니다. 바로 자신이다. 아무도 자신에게 그렇게 살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가정적 환경, 사회적 환경, 통념, 문화 등이 영향을 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결국 선택한 것은 바로 자신이다.

오늘. 지금. 현재. 행복할 수 없는데 내일 행복할 방법이 있을까?


정말 바라고 또 바라던 사회적 양반 계층의 위치가 된다 해도 매 순간 행복할 수 있을까? 원하던 위치에서 진심으로 얻고자 하는 게 과연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일? 집에 돌아오면 공허함이 온몸을 지배할 것이다. 돈?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인생의 가치는 얼마든지 널려있다. 삶에 매몰되어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느낀다. 자신이 목표이고 목표가 곧 자신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인생은 그렇지 않다. 인생이 정말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욕심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신호다. 손 하나가 겨우 들어갈 호리병에 금은보화가 잔뜩 들어있다고 해도 욕심을 버리고 손에 쥔 금은보화를 내려놓을 용기가 필요하다. 순간에는 정말 아쉬움이 가득할 테지만 욕심을 포기한 대가를 당신의 운명은 다른 방식으로 보상해 줄 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다.


요행을 바라면 욕심만 커진다. 그저 내려놓고 묵묵히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운명이 준비한 선물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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