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
인생은 순간을 선택하는 삶을 살면서 항상 출발선에 서 있기를 반복하는 일이다.
똑같은 매일이라 생각하기 쉬운 일상도 매번 새로운 출발선상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날, 새로운 출근길, 새로운 날씨, 거리의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차들과 새로워진 자신이 있다.
매일 아침 무거운 눈꺼풀을 들고일어나는 하루를 맞이하더라도 오늘의 출발이고, 내일의 시작도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다. 모든 선택의 순간에 시작이 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새로운 시작이고, 식사, 청소, 업무, 운전 등 어느 요소도 시작과 끝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간의 인생은 유한하고 시작과 끝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점에 서 있고 보이지 않는 결승선을 향해 간다.
뛰든, 걷든, 기어가든 결승점은 단 하나로 귀결된다.
때때로 환경에 의해 시작점이 저만큼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면 허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그 시점에서 투쟁할 것인지, 체념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결과는 토끼와 거북이 동화처럼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인생이 재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인생이라는 긴 트랙을 가다 보면 많은 상황을 마주한다. 중간에 끼어들기하는 철면피도 있고 한층 더해 처음부터 자신의 트랙이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페이스가 떨어져 힘에 부쳤을 때 내 속도에 발맞춰 주고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들 또한 있다.
문학과 음악처럼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도 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창의력은 경험에 의한 인간의 감정과 경험에 의해 뇌의 시냅스를 변화시켜 조합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 미국의 신경과학자 에릭 캔델처럼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 기존의 것들을 창조적으로 조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결과가 창의력의 결과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요즘 같은 정보의 바다에 살면서 오직 한 사람의 경험과 느낌으로만 설명할 수 없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사회를 구성하며 살며 기록되는 기억의 헛간에서 비롯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행위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서 조합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가져다 보통의 사람들은 알아챌 수 없을 만큼 교묘하게 변환시켜 자신의 창의력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실생활에서 생각보다 많이 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도 달리기 시합할 때, 한 발짝이라도 앞서려 교묘하게 출발점 혹은 결승점을 조작하거나 승부의 욕심에만 눈이 멀어 타인을 다치게 하는 반칙 행위를 자행한다. 일반적으로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도 잘못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반칙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승부욕이라 불리는 욕심이 과해 만들어진 탐욕의 결과물이다. 해당 결과는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고 인정받으려 해서도 안된다. 나도 경쟁자도 사람일진대, 하물며 지켜보는 많은 이들 모두 똑같은 생물학적 구성을 가진 사람들인데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면 지탄의 대상이 될 뿐이다.
또한, 보통 반칙을 자행하는 사람들은 끝이 좋지 못하다. 영화 부산행에서의 김의성 님이 연기했던 역할처럼 오직 본인이 살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거나 모함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오히려 떳떳하다고 우기지만 우리는 모두 결말을 알고 있다.
타인의 성공적인 인생을 모티브로 동기부여 삼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칼치기로 끼어들어 피해를 주어선 안된다.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듯이 피해 당사자의 시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남보다 속도가 뒤처진다고 해서 돌을 던져 상대방을 떨어트린 뒤 결승점에 도달하는 행위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닐진대 그렇게 해서 돈을 벌었다고 한들 과연 행복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찾아가는 인생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필연적으로 다가올 눈을 감는 순간에 과연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같이 기뻐하고, 박수쳐주는 사람이야말로 끊임없이 성장한다.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는 프랑스의 철학자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되묻고 시작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타인의 시작과 과정을 지켜보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오직 나만의 시작을 나만의 길을 무심히 그리고 초연하게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