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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 Oct 13. 2021

TV를 산산조각 낸 아이가 만든 변화

똑똑똑, 초보엄마입니다.



결혼 선물로 TV를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TV 없이 살아온 나는 필수가전 리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신랑의 원이었다. 막상 집에 TV가 생기자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끔 보던 드라마도 꼬박꼬박 챙겨보고 집에서 간편하게 영화를 즐기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점점 TV애용자가 되었다. 다만,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미디어 노출을 최대한 늦게 시키자는 육아관을 지키기 위해 TV 시청 시간을 아이가 밤잠 들고 난 뒤로 조정했다. 지친 육아를 달래줄 달콤한 마시멜로처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2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먹을 파스타와 스테이크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우당탕탕! 갑자기 난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TV가 바닥에 내동댕이 쳐 있었다. 40인치가 훌쩍 넘는 TV를 고작 한 살배기 둘째가 손쉽게 당겨버린 것이다. 다행히 파편이 하나도 튀지 않아서 아이는 무사했다. 해맑은 아이를 피신시켜놓고 사건 현장을 수습했다. TV를 틀어보니 화면이 반으로 갈라져 먹통이었다. 다가올 긴 연말 연휴를 그간 참았던 영화를 보기 위해 벼르고 있었는데, 그 꿈도 함께 산산조각 나 버린 것이다.


그렇게 강제로 새해부터 TV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TV를 정리한 휑해진 그 자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 가구 배치를 다시 했다. 거실에서 함께 놀 수 있는 보드 게임과 기저귀, 손수건 등의 수시로 사용하는 육아 템을 정리할 수납장을 배치했다. 수납장 위에는 사이즈가 딱 맞는 거울을 당근에서 무료드림받아 고정시켰다. 선반 용도로 네이버 클로버와 발뮤다 토스터를 놓고 사용하기로 했다. 놀랍게도 TV가 없어진 자리는 TV의 존재감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바뀌었다. 수납장으로 공간 이용률이 높아졌고, 가전도 아이 손이 닿지 않아 안심하며 사용하고 있다. 한 살배기 아이의 큰 그림이었을까?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면서 처음 세팅해둔 가구들은 이런저런 이슈로 위치가 달라졌다. 방 내에서 움직이는 것을 넘어 방과 방의 목적을 바꾸는 대이동도 서슴지 않았다. 침대, 책상, 책장, 소파, 식탁 등 굵직한 가구들의 위치를 잡으면 공간 활용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자잘한 가구들은 추가하거나 정리하기도 했다. 계획대로 놓여있는 건 붙박이장과 냉장고뿐, 우리 네 사람에게 가장 맞는 생활 패턴으로 계속 이 공간에 변화를 주고 있다.


계절마다 상황마다 우선시 되는 포인트는 다양하다.

프리랜서인 내가 집에서도 빠르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하는 공간을 구분하는 것

큰 애가 열심히 만든 레고나 블록을 동생이 부서뜨리지 않도록 보관과 전시 용도의 공간을 만드는 것

층간소음으로 피해 가지 않게 마음껏 공놀이나 점프할 수 있도록 매트를 놓고 놀이터화 하는 것

하루 적어도 한 번은 하늘을 보며 여유를 갖고, 햇살 일광욕을 할 수 있도록 소파를 재배치하는 것

손님이 왔을 때 외투를 걸기 좋게 현관 가까이 행거를 설치하고, 식탁을 넓게 쓸 수 있게 배치하는 것


일상생활 중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놓치지 않고, 편하게 쓸 방법을 고민해 즉각 공간에 반영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매번 새로운 공간에 이사 온 것 같은 설렘은 덤으로 얻는다. 가끔은 상상과는 달리 공간이 더 불편해질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쿨하게 원상 복귀한다. 다행히도 대부분은 동선이 자연스러워 편리성을 높이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줬다. 궁극적으로 우리 삶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접근이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었을 때는 크게 집에 바라는 것도 없고, 공간에 투자하는 에너지도 아까울 수 있다. 그러나 24시간 대부분을 머물러야 하는 요즘 시기엔,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떤 집(공간)이 좋을지 고민된다.


최근 다양한 집과 집주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해주는 EBS [건축 탐구-집]이란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출처 :  EBS 건축탐구 집

집의 외관, 실내 구조, 자재들을 보고 누가 살고 있을지 상상해보면, 신기하게도 건축주인 집주인과 참 닮았다. 그분들은 자신의 가치관/철학을 담아 집의 목적을 설정하고(멋진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 치유를 위해, 반려동물들을 위해 등), 각 공간을 구상하고(글을 쓰는 글방, 자녀를 위한 다락방, 대화를 위한 가족룸, 취미를 위한 공방 등), 자재를 골라 직접 지어서 살고 있다. 필요에 따라 집을 조금씩 고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집이 무르익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집의 공간에 대해 다양한 영감을 받을 때면, 우리 가족의 공간에 우선적으로 적용할 기준이 생긴다.


1. 시간과 자연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집 - 창문 너머 들어오는 바깥 풍경을 활용해(차경)

출처 : EBS 건축탐구 - 집


2. 취미나 일을 하며, 커뮤니티를 이룰 수 있는 함께 하는 공간 - 식탁 교제나 배우는 공방처럼

출처 : EBS 건축탐구 - 집

3. 아이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뛰놀며 자극받는 공간

출처 : EBS 건축탐구 - 집


나와 우리 가족에게 더 풍성한 삶을 만들어주는 공간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어디에 살든 가장 중요한 건, 함께 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마음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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