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어린 로레인 Nov 01. 2021

아이가 손에 빨대를 끼우고 담배 흉내를 냈다

똑똑똑, 초보엄마입니다.




꽤 일찍이 독립한 나는 낯선 동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마다 불안함에 경계태세를 취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동네가 익숙해질 때에서야 마음 편히 외출했다. 그런 엄마와는 달리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매일 새로운 흥밋거리들이 넘치는 동네 탐험에 온몸이 바쁘다.


나의 신혼집은 핫플레이스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핫플레이스에 모여드는 사람들과 직장이 많은 곳이라 주중 주말 밤낮 상관없이 북적였다. 놀거리, 볼거리, 먹을거리가 가득해 신혼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첫 아이가 태어났다. 교육 환경이 좋아야 한다는 것은 ‘맹모삼천지교’라는 단어로만 알고 있을 뿐 거주지를 바꿀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두세 살 되던 어느 날, 아이가 빨대 꽂힌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빨대를 손가락에 끼워 담배를 피우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우연히 목격한 아이의 모습에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왜지? 가족 친지 그 누구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터라 어디서 아이가 이런 행동을 배우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담배 연기를 뿜는 놀이를 한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 산책을 나갔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흡연 중인 분들을 보게 되었다. 골목을 쭉- 스캔해보니 3-4그룹 이상의 흡연 중인 분들이 눈에 띄었다. 그렇구나… 길거리 곳곳마다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이 아이의 눈에는 그저 재미있는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예전엔 걷다가 마주치는 스모커들을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었다. 각자의 기호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최근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담배들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편의점 전면 유리를 반투명으로 코팅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 무용지물이란 생각이 든다. 막상 길거리 곳곳마다 담배 피우는 분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종종 아이는 빨대와 사탕 막대기로 담배 피우는 행동을 놀이처럼 하곤 했다. 일부러 무심하게 반응하며 아이를 혼내지 않았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것을 정확히 알려주고는 되도록 다른 놀이로 관심을 유도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모방 행동은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더 나은 환경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이사했다.


속상하게도 여전히 길거리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최근 이성을 겨우 붙잡을 만큼 속이 상한 일이 있었다. 아이들과 하원 길, 담배를 피우던 한 남자분이 보였다. 가급적 아이들을 등지고 연기가 안 닿게 노력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분은 태연했다. 내뿜는 연기가 나와 아이들 얼굴 쪽으로 오길래, 나는 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날려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분은 내 행동에 기분이 나빴던지 내 뒤통수에 담배 연기를 훅- 내뱉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의 단전에서부터 내뿜는 소리와 진한 담배냄새로 단번에 알아차렸다. 바로 고개를 돌려 피우는 자유처럼 거부할 자유도 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들을 잡은 손을 더 꽉 쥐고 담담히 화를 누르듯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다가 한참 지나서 뒤를 돌아봤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담배를 피우는 내내 나를 쏘아봤겠구나 싶었다.


흡연하느라 마스크 벗는 것쯤은 한걸음 양보한다 쳐도, 길가는 행인에게 담배 연기가 닿지 않도록 흡연 매너를 갖추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어쩌면 한두 명의 무례한 흡연자들 때문에 매너를 지켜주시는 분들까지 욕먹을 수도 있겠지만, 비흡연자로서 너무 불쾌한 경험이었다.


하아… 담배연기는 이제 미세먼지처럼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걸까? 이제는 둘째까지도 빨대로 그런 흉내를 내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두 아이와 함께 거니는 동네가 조금 더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우리 아이들을 존중하고 의식하는 어른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동네로 추억되길.



매거진의 이전글 TV를 산산조각 낸 아이가 만든 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