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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Nov 03. 2021

아이 마음에 부모의 말을 심었더니..

똑똑똑, 초보엄마입니다.



푸르른 정원을 품은 집을 꿈꾼다. 그러나 당장 이사를 갈 수 없는 현실에서 합리적인 대안으로 화분 몇 개를 구입했다. 베란다에 놓인 널따란 텃밭용 화분에는 오이, 바질, 토마토 씨앗을 심고, 작고 둥근 화분에는 부추 씨앗을 심어 두었다. 두어 달 공들여 관리하니 싹이 트고 열매 맺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참 신기한 경험이다. 담쟁이처럼 울타리를 감싸며 쑥쑥 자라는 오이를 보니 뿌듯함이 크다. 그렇게 자연을 품은 집에서 살겠다는 소망은 더욱 분명해졌다.


아이와 함께 6번의 사계절을 지나왔다. 문득 나와 아이는 그 사이 어떤 열매를 맺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맞춰가는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다. 아이의 입장을 헤아려보면, 영화 트루먼쇼처럼 미리 세팅된 부모와 집에서 자신의 영역을 키워나가는 과정 역시 평탄치는 않을 듯하다. 무엇보다 스펀지 같은 아이에게 부모의 말과 태도도 참 중요하다고 느낀다.


엄마, 한 시간이면 충분할 거 같은데요?


밥을 씹지 않고 물고만 있는 둘째에게 여러 번 타이르다가, 이제 밥을 치워야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벌써 시곗바늘은 한 바퀴를 지나 두 바퀴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내 인내력도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 그런데 먼저 밥을 다 먹고 여유 부리던 첫째가 내게 한 마디 던졌다.


첫째 : 엄마, 동생한테도 시간을 줘야죠.

엄마 : (뭐?) 많이 기다려준 거 같은데.. 얼마나 더 줘야 돼?

첫째 : 1시간이면 충분할 거 같은데요? 기다려주면 잘할 거예요.


시간의 개념을 잘 모르지만, 기다림의 체감을 시간으로 어렴풋이 표현하는 아이의 배려심에 순간 나는 속 좁은 엄마가 된 것처럼 부끄러워졌다. 담백하게 멋진 대사를 날리는 아이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설렜다.


아이는 그 말을 어디서 배운 걸까?


늦게 퇴근한 신랑에게 저녁에 아이와 있었던 일을 나누다가 의외의 정보를 얻었다. 그 말은 꽤 오래전 신랑이 아이에게 심어 놓은 말이었던 것이다. 빨리 놀러 나가고 싶은 마음에 서두르다 보면 잘 빠뜨리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신랑은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으니 여유롭게 챙기라고 말을 건넸던 것이다. 그때는 스쳐지나 간 듯 보이지만, 그 말이 어느 순간 아이 입에서 나온다고 한 남편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의 마음 한편에 씨앗으로 심긴 부모의 말들은 어느 순간 입술의 열매가 되어  튀어나온다는 사실. 그래서 이젠 수시로 “형아가 도와줄게”라며, 매너 좋은 형아 모습을 보일 때면,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밤마다 잠 기운에 눈을 가물가물하는 아이에게 뽀뽀와 함께 귓속말로 “엄마는 널 무척 사랑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아들”이라고 말해줬다. 하루의 마지막, 가장 사랑을 듬뿍 담은 말로 아이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남았을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을 잠재울 주문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가장 행복한 미소를 띠며 잠이 든다. 그러다 어느 날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기진맥진해 침대에 드러누운 엄마에게 아이가 쪼르르 옆에 누우며 귓속말을 해줬다.


엄마 사랑해, 좋아해, 축복해


가히 엄마를 슈퍼우먼으로 만드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비타민 500알을 먹은 듯 힘이 막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육아를 하면서 엄마로서 다시 우리 엄마 딸이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아이를 자라게 하는 말처럼 아이가 엄마를 엄마로 자라게 해주는 말을 해줄 때면, 비로소 육아의 과정을 한 단계 더 넘어선 것 같다. 조그만 체구에서 나오는 아이의 말 한마디는 세상 그 어떤 것들에서도 느낄 수 없는 벅찬 감동이 있다. 순수한 아이의 사랑고백에 엄마로 사는 삶의 행복한 이유를 발견한다. 그렇게 오늘도 나를 위한 말을 아이의 마음에 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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