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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Aug 02. 2021

아이를 혼내는 게 무의미한 5가지 이유

수년 전 TV를 보다가 유명 방송인이 이런 말을 했다. “아들을 키우니까, 목소리가 점점 커져요. 제가 이렇게 소리 지르는 스타일이 아닌데…” 멋쩍게 아들 육아의 고충을 털어놓던 그분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이야.


소파는 앉 거란 개념보다 뛰어내릴 수 있는 지지대로 생각하는 아들, 살금살금 걷는 개념보다 우사인 볼트처럼 뛰어야만 하는 아들. 그나마 아들 치고는 얌전한 거라고 말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 집 안에서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아니, 바람 잘 한시도 없다.


인격수양을 요하는 상황들을 불시에 맞닥뜨리면서 마음에 인내를 새겨본다. 그간 아이와의 갈등을 풀기 위해 여러 방법을 적용해 보았다. 언성을 높여 혼을 내기도 하고, 생각 의자에 앉히기도 하고, 유튜브 금지령 같은 벌을 주기도 하고… 그러나 고작 육아 6년 차에 아이를 혼내는  의미 없다고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번째,

교정시키고 싶은 아이의 말과 행동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


혼을 내서 아이의 언행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건 정말 팩트다. 일시적으로 그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안심할 순 없다. 아이는 궁극적으로 그 언행을 고치려는 의지가 전혀 없고, 관련해서 혼까지 났던 기억을 쉽게 까먹는다. 그래서 바로 다음날, 리셋 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 행동을 반복한다. 분명히 어제 엄마에게 혼나 놓고선... 엄마의 말을 기억하냐고 묻는 질문에 아이는 순진무구한 눈빛이다.



두 번째,

아이는 혼난 이유보다 본인 상처만 기억한다.


정말 아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었는데, 아이는 엄마가 혼을 낸 이유를 기억하지 못했다. 단지 버럭 하는 엄마 때문에 순간 굳어버린 것일 뿐이다. 상황이 좀 나아지고 아이와 대화를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뾰로통하거나 시무룩해진 아이에게 혼이 난 이유를 설명하면, 본인은 높은 언성에 자기가 상처 받았다는 것만 늘어놓는다. 원인이 어찌 되었건 엄마가 혼을 낸 것이 속상할 뿐이다.



 번째,

엄마의 혼내는 패턴을 그대로 동생에게 적용한다.


요즘 신랑과 내가 거울을 보는 것처럼 민망해질 때가 많다. “한 번만 더 이렇게 하면 혼낼 줄 알아!”, “너 이러지 말랬잖아!”. 아이는 동생이 자신의 무언가를 흐트러트릴 조짐만 보이면 순식간에 엄포를 놓는 무서운 형아로 변해버린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동생을 휘어잡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상황에서 엄마에게 들었던 말 그대로 동생에게 쏟아내는 형아의 모습, 그리고 서럽게 울며 형아가 무섭다고 숨어버리는 동생의 모습을 본다. 내 잘못 같아 뭐라 할 말이 없다.



네 번째, (어쩌면)

엄마 스스로 분을 못 이겨 더 혼내는 경우가 많다.


몹시 분주하거나 불안한 마음에 화를 표출하기 쉬운 발화(Anger)점의 경계에 있는 건 아닐까? 워킹맘으로 긴장과 예민의 줄타기를 하다 보니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일 때가 많았다. 언제든 화낼 수 있는 상태일 뿐, 아이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밤마다 아이를 재우고, 후회투성이가 된다. 엄마의 마음이 여유로우면 아이의 잘못이나 느린 행동들도 너그러이 이해하고 기다려줄 수 있게 된다.



다섯 번째, (가장 중요한, 가장 겁이 나는 이유인)

아이와 거리감이 생길 수 있다.


사춘기를 겪는 집 이야기를 들으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여섯 살 난 아이도 속이 상하면 대화를 거부한다. 어쩔 땐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단호하게 표현한다. 종종 아이가 속이 상하면 소리를 지르곤 했기에 대화를 위해 진정시킬 목적으로 일부러 유도했다. 그러더니 아이는 점점 스스로 서운한 감정을 고르기 위해 시간을 가지려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시간이 좋게 작용할 때가 많아서,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풀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나와 멀어질 수도 있겠구나’ 싶어 겁이 났다. 심지어 안고 싶거나 뽀뽀하고 싶을 때마다 “엄마, 안아줄 수 있어?”하고 먼저 물어보는 데, 단호하게 싫다고 거부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눈물이 고였다.


여전히 나는 육아의 시행착오 중이다. 최근 신랑과 합의한 방법은 ‘서로 반대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와 신랑이 부딪치는 상황이 생긴다면, 바로 ‘분리’하여 엄마가 아이 마음을 읽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부딪치는 경우엔, 신랑이 그 역할을 한다. 우선 '서로 반대의 역할을 한다는 것''대립되는 상황을 빠르게 종식시킬 분리의 과정'이 효과적으로 느껴졌다. 아이는 기댈 곳이 생긴 것이고, 부모는 화가 나는 상황에서 범할 수 있는 실수(독설 같은)를 줄인 것이다.


자녀들이 장성해 각자 가정을 이룬 어머니가 쓴 양육 서적을 읽은 적이 있는데,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지금 내가 처한 영유아 육아의 힘든 고충은 셀 수도 없는데, 그분이 적은 힘든 순간들은 모두 아이들이 중고등학생 사춘기였을 때였다. 그렇구나, 아직 가장 힘든 시기는 찾아오지도 않았구나. 갈길은 멀다. 육아라는 망망대해를 건너기 위해, 튼튼한 징검다리 하나씩 하나씩 놓으면서 건너야 하지 않을까? 쓸모없는 데 시간낭비 않고, 효과 있는 육아를 하기 위해 오늘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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