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어린 로레인 Apr 23. 2023

학부모 참관수업에서 유일하게 발표를 거부한 아들



기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고,

낯을 가린다고 생각할 수 있고,

충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체 학부모가 함께 한 자리에서 친구들 다 하는 발표를 우리 아이만 하지 않았다고 하니 민망하기 그지없다.



학기가 시작하고 보통 3,4월은 학부모총회와 참관 수업이 있다. 부모님 스케줄을 배려해 같은 날 연이어하기도 하고 각기 다른 날 진행되기도 한다. 우리 아이의 학교는 후자였다.


좁은 교실이 북적일 것을 감안해 부모 중 한 사람만 참관을 오라고 하셔서 나는 선뜻 남편에게 양보했다. 무던한 남편이 좀 더 편하게 참관하고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전 휴가를 내고 학교에 간 남편은 수업 후 아들과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남편이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하기 전까지 나는 그저 모든 것이 무난하게 지나고 있다고 느꼈다.


회의가 잡혀서 짧게 통화한다고 하면서 남편이 침착하게 입을 뗐다.


"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돌아가면서 가족자랑을 하나씩 하라고 발표를 시켰는데 우리 아이만 발표를 안 하겠다고 하더라. 선생님이 몇 번씩 잘할 수 있다고 격려했는데 손사래 치면서 안 하겠다고 하니까 다음 아이로 넘어갔어."


너무 짧게 전달받은 내용이어서 전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남들 다하는 간단한 발표를 거절했다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자 나는 혼자서 얼굴이 후끈해졌다. 장난기 가득한 짓궂은 모습만 봐서는 낄낄거리며 발표도 잘할 것 같은데 왜 아이는 그렇게 반응했을까?


한편으론 그 자리에 남편이 가서 다행이었다고 느껴졌다. 나는 당황하면 새빨개지는 얼굴이라 다른 부모님들의 시선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속이 부글거리면서 이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내 아이가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보통 수준이라도 유지했으면 하는 암묵적인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부모로서 아이를 어떤 방향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실질적인 속마음과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남편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순간 당황했어. 근데 나도 어렸을 때 발표 되게 어려워하고 싫어했던 게 생각나더라. 그럴 수 있는 거 같아. 그래도 안 하겠다고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야!"


남편이 해석한 내용을 들어도 나는 선뜻 공감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렵지 않은 걸... 친구들은 다 하는데... 그런 마음의 소리가 계속 올라왔다. 그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의 예상치 못한 행동이 내 자존심을 건드린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 유쾌하고 활동적인 아이, 매너 있게 행동하는 아이,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하는 아이,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 등등 내가 만들어놓은 아이에 대한 기준이 내 어깨를 띄워주는 거란 생각이 들어서 화들짝 놀랐다.


엄마 자존감을 아이에게 기대하는구나 싶어서 부끄러워졌다. 나 스스로 건강한 자존감을 잘 지켜야 아이의 그 어떤 모습에도 치우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다.

초1, 학령기의 첫발을 뗀 지금 이 사실을 깨달아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내 아이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하굣길, 학교문을 나서는 아이를 와락 껴안으며 오늘도 고생했다고 아이를 토닥였다. 아침에 아빠를 만나서 좋았다고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며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발표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묻고 싶은 마음을 훌훌 털어버렸다. 아무렴 어떠냐고, 이렇게 행복하게 하루하루 잘 살아가자.

 

이전 19화 아이를 혼내는 게 무의미한 5가지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