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어린 로레인 Feb 10. 2022

더 이상 아이 재우느라 에너지 낭비하지 않기

똑똑똑, 초보 엄마입니다.



일곱 살, 네 살 두 아들의 엄마로서 아이들과 하루 일과를 보내다 보면 녹초가 된다. 놀아도 놀아도 심심하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아이들을 향한 엄마의 에너지는 금세 바닥을 보이고 만다. 매일 밤, 씻기고 재울 시간이 되면 이제 곧 해방인가 싶은데, 애석하게도 동화책 대여섯 권 읽고 불을 꺼도 아이들은 쌩쌩하다. 보통 한 시간이 넘어가서야 잠이 드는 아이들 옆에 멀뚱멀뚱 누워있는 나는 속으로 조바심이 난다.


첫째가 태어나고 얼마지 않아, 나는 당시 유행하던 똑게 육아(똑똑하고 게으른 육아)를 배워 분리 수면을 시작했다. 아이 스스로 잠이 들 수 있게 매일 규칙적으로 수면 의식을 반복했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부모에게는 꿀 같은 육퇴,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좋았다. 1년 정도 꾸준히 지켜왔지만, 점점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아이방 외풍도 한 몫해 어쩔 수 없이 다시 합쳐야 했다. 그간 분리 수면하느라 고생한 것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허무함을 맛봤다. 둘째 역시, 태어나 잠깐 동안 떨어져 재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은 온 가족이 한 침대에서 잠드는 환경으로 정착했다.


최근 분리 수면에 대한 고민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마침 그날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이들이 어서 잠들기만을 기다리던 날이었다. 그러나 산처럼 쌓인 책을 모두 읽고 불 끄고 누워서도 못 자는 아이들… 한 시간 즈음 지나 이제 잠이 들었을까 싶었는데 다시 낭랑하게 질문을 던지는 아이를 보자, 이대로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실행의 방아쇠를 당겼다. 바로 다음날부터 나는 수면 의식 후 불을 끄고 방을 나가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내 얕은 인내심의 한계가 드러날 수도 있기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일곱 살 첫째는 엄마의 결단에 쉽게 수긍했다. 평소에도 피곤하면 알아서 잘 자는 성격이라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 어린 둘째는 엄마 옆에 꼭 붙어서 자고 싶은 마음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랑 자고 싶어~” 떠나가라 우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의 이기심에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졌다. 그러나 번복하면 다시 기회가 없을 거 같아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오늘부터는 책 읽고, 감사한 일 나누고, 안아주고, 뽀뽀하고, 기도하고, 엄마는 불 끄고 나올 거야! 이제부터 형아랑 둘이 잘 자는 거야”


아이는 방문 닫고 고작 문 앞에 있는 엄마가 멀리 가버릴 까 두려웠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를 불렀다. 그러다가 문을 열고 나와 “엄마랑 잘 거야”라며 엄마에게 푹 안겼다. 나는 아이를 더 꼭 안아주며 “엄마는 할 일이 있고, 그걸 해야 빨리 잘 수 있어! 엄마 자리 만들어놓고 자면 엄마가 거기에 누울게. 우리는 아침에 만날 거야” 아이를 다독였다. 다시 침대에 눕히고 나오자, 한참을 울던 아이는 지쳐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조용하던 첫째가 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내가 조용히 배를 토닥여주니까 잠들었어요~”


첫째 말이 참 든든하게 들렸다. 낮에는 레고 가지고 투닥거리더니 엄마 없이는 한결 애틋해지는 것 같아서 기특했다. “잘했어~ 너도 어서 들어가서 자~” 아이는 자기도 졸린지 서둘러 침대에 누웠다. 무사히 첫날의 고비를 넘겼다. 다음 날도 아이는 마찬가지. 엄마가 분리 수면할 거라는 건 이해한 눈치지만, 그래도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한참 뒤 서러움에 울먹이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보고 싶어요. 꼭 안아주세요”라며, 엄마 품, 엄마 냄새를 한 번 진하게 느끼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형아 옆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꾸준히 아이들에게 엄마는 잠이 들 때까지 옆에 있지 않음을 일러주었다. 5일째 되는 날이 되어서야 아이는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일 아침이 되면 엄마를 꼭 안아줄 거예요!”


아이의 말에 나는 무한 긍정의 눈빛으로 “그럼, 엄마도 널 꼭 안아줄게”라고 약속했다. 문을 닫고 나와서도 나는 소파에 한참을 앉아 아이들이 스스로 잘 잠들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방문에 귀를 기울였다. 첫날 한 시간에서 30분, 20분으로 점점 시간이 줄어들며 아이들도 나도 서서히 적응해나갔다.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스스로 잠든 아이들을 보면 참 사랑스럽다. 침대를 한 바퀴 뒹굴다가, 형아 손을 꼭 잡고, 나란히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고, 다양한 모습을 보면 엄마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가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다. 이렇게 분리 수면을 성공하고 나는 크게 2가지를 깨달았다.


먼저는, 아이들은 부모가 없을 때 새로운 기지를 발휘한다는 것. 형제라서 그런지 장난감이 겹칠 때면 속상해서 눈물바람을 보일 때가 종종 있는데, 이번에는 첫째가 우는 동생이 안쓰러운지 갖은 방법으로 동생을 달래고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배를 토닥여주고, 조용히 잠들 수 있게 방해하지 않고, 같이 베개를 베고 누울 수 있게 자리를 옮겨주고, 손을 꼭 잡아주고, 심지어 우는 동생 대신 엄마에게 와서 협상을 하기까지… 듬직한 형아의 면모를 보여주니, 나의 육아가 영유아기를 지나 새로운 스테이지에 들어섰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엄마도 아이도 넘어야 할 고비가 있고, 그 고비를 넘기는 것은 에너지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한 꾀이자 지혜라는 것. 아이들을 재우던 꽤 많은 시간들은 그 자체로도 행복감을 준다. 인생의 마라톤 같은 여정 속에 소소한 행복감을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야 할 일을 앞두고 시간이 부족해서 애가 탔다. 여전히 내 커리어에도 더 성실하게 임하고 싶은 마음이라 소모되는 시간이 아까웠다. 이렇게 새롭게 확보된 시간을 통해 나는 집도 더 깔끔하게 관리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퀄리티 있는 나만의 시간으로 활용하고 싶다.


오늘도 잘 자자, 우리 아들들! Sweet Dream!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왜 날 사랑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