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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자 Feb 17. 2022

하찮아도 좋아

퇴근하고 오니 딸아이는 거실에 엎드려 제 전용 태블릿 PC로 어린이 프로를 보고 있다.

-예전 같으면 동화책을 보고 있었다... 가 맞는 풍경이겠지만 요즘은 어린이 태블릿 없는 애들을 보기가 더 힘들다- 엄마가 와도 그곳에 쏙 빠져있는지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보던 프로가 끝나고 나서야 반갑기는 했는지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애교를 피며 엉겨붙는다. 그러고는 오늘 연을 만들었는데 연이 어디 있냐 묻는다. 그걸 니가 알지 내가 알겠냐?

어린이집에서 가지고 오긴 했냐고 하니 가방에 잘 넣어서 왔단다. 그럼 가방을 잘 찾아보라 하니 쌩하니 달려가더니 텅 빈 가방을 보여주며 울상이다.

진짜 가방에 넣어왔는데 없다면 정리의 달인 할머니가 범인(?)이다. 나는 예상이 퍽 가능했지만 할머니께 물어보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게 연이야?  종이 쪼가리 그거? 하시며 시끄러워지기 전에 휴지통을 뒤져 한층 더 구겨진 연을 찾아 내놓았다.

소중한 연을 찾은 기쁨과 동시에 구겨진 연이 속상해 아이의 얼굴도 구겨졌지만

색종이 한 장에 위태로운 철사 꼬다리 하나 달랑 붙여놓고 연이라는 그 모양새가 우스워 우리는 깔깔대고 웃었다.

어릴 적 보물상자를 들여다보면 참으로 하찮다. 풍선껌에 들어있던 꼬마 만화, 색색깔의 학종이, 플라스틱 반지, 과자봉지 속 딱지, 친구와 나눈 편지, 아빠 서랍 구석에서 찾아낸 토끼 모양 집게, 이제는 쓰지 않는다 엄마에게 받아낸 귀걸이... 

누군가 본다면 쓰레기인지 아닌지 구분도 애매한 이 잡동사니들이 그때는 뭐가 그리 소중했는지 상자 속에 차곡차곡 모아 두고 얼마나 애지중지 했던가. 

남이 볼 땐 하찮을지언정 나에게 있어 그것들은 하나하나 참으로 귀했었더랬다. 두 번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스티커 하나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아이가 쉽사리 살 수 없는 과자 속 장난감도, 몇 마디 쓰여있지 않은 꼬깃한 쪽지도 그들이 담고 있는 사연 하나하나가 보물이 되었다.

자라면서 어린 시절의 보물상자는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시간이 흘러도 일상 속에 소중한 것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물건도 되었다가 마음이 되었다가 사람이 되기도 했고 이야기가 되었다.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각자의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 공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도 쏟아지는 세상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듣고 볼 수 있는 요즘,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것저것 찾아보고 듣곤 한다. 

점점 개인이 브랜드화되어가고 있는 시대가 되어가니 평범하게 살다가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가 듣는 것이 흥미롭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듣다 보면 역시나 그들은 재주도 많고 능력도 많고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난사람이다. 이들 중 어느 방송에선 그런 이야기를 했다. 성공한 이들처럼 무언가 하고자 공부하면서도 성공한 사람은 성공할만한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해보지도 않고 쉽게 포기한다고. 처음부터 번듯한 것을 내놓으려 애쓰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하찮은 것부터라도 실행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꽤나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아 편하게 그림을 그리고 연습하려고 블로그나 SNS를 시작했으면서 어느 순간 번듯한 그림이 되지 않으면 올리기가 꺼려져서 자꾸만 게으름 아닌 게으름을 부리다 보니 점점 손을 놓게 되었던 것.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큰 것에 욕심을 부리느라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못하느니 작은 일이라도 실행에 옮길 때 그것이 차곡차곡 모여 내 자산이 될 것이다. 

작심삼일이 될지 모르지만 낙서 나부랭이, 몇 줄짜리 글 꼭지,,, 다시 끄적여 본다. 삼일 뒤에 다시 작심하면 되지 뭐. 


하찮은 것들이 다시 보물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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