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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자 Feb 03. 2022

서른아홉

아홉수 그리고 삼재

이십 대에서 삼십 대를 향할 때는 늘어가는 나이에 적응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리는 시간에 마음은 그저 늘 스물세 살에 머물러 있었다.

학생인 시간과 학생이 아니던 시간이 그만큼 다르게 느껴졌던 탔일까.

삼십 대가 되고서는 일과 육아에 꽉 찬 하루를 넘기다 보니 늘어난 건망증처럼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았다.

새해가 되고 서른아홉.  

어느새 서른아홉이 되어있다. 세상에 서른아홉이라니. 스물아홉과는 또 차원이 다른 느낌.

이제 좀 어른이 되려나 했던 스물아홉과는 달리 이제는 늙어가기 시작하는 걸까 싶은 내리막의 설움이 내비치지만 아직은 마흔이 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나이 먹은 나 대신 커가는 아이의 모습으로 위로받기 시작한다.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아이 아빠는 아재의 모습이 싫어 마흔이 되면 죽을 거라는 황당하고 극단적인 농담을 하곤 하더니 슬리퍼에 신사양말을 신는 아재 패션 하나 고칠 생각이 없는 채로 오십을 바라보는 아재로 잘만 살고 있다.


내년이 되면 아직은 만으로 삼십대라고 우기게 될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뭔가 알차게 마지막 삼십 대를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다.


모은 돈 하나 없이 시작한 우리 부부는 결혼식부터가 마이너스의 시작이었다.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연체라는 단어는 듣지 못하고 자란 나로서는 결혼 후 날아든 연체료, 독촉장이 참으로 낯설었다.


살짝 이른 나이에 결혼한 엄마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졸업반일 즈음 아파트를 장만했다. 그때 엄마 나이는 서른 중후반.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어렴풋이 우리 부모님은 고생하시고 집 장만도 늦어지신 거구나 생각했던 나란 아이는

결혼을 하고 살림을 하고 세금을 내는 어른이 되면서 그런 부모님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제 때 집 장만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저 직장 잘 다니면 적당한 재산이 모이고 집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모두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2022년 현재는 변화의 물결이 아주 요동을 치다 못해 조리돌림을 하는 듯하다. 코로나19라는 말도 안 되는 것이 물러나지 않고 우리 삶에 들러붙어 우리는 펜데믹 속에 예상하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정책은 따라가기도 숨이 차다. 어쩌면 더해진 이 불안감이 조금은 더 미래에 대한 공부와 대비에 불을 붙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아기에서 어린이가 되고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최근에 들어서야 재테크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조금은 가정경제가 정상 궤도에 오르며 안정권에 들어서고 있었고, 가정경제가 상향선을 그릴지는 가계부의 책임자인 내 손에 달려있는 것만 같다.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그리고 내 아이에게 어디까지 길을 인도해 줄 수 있을지.


지금은 감사하게도 우리 부부가 나름은 안정적으로 일을 하며 일정한 수입을 얻고 있지만 과연 이 수입이 어디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나는 몇 살까지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  한국 여성이 직장에서 일반적으로 어디까지 인정받으면서 일하느냐를 생각하면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서른아홉. 어쩌면 지금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황금기가 될지도 모른다.  


아홉수, 삼재, 삼십 대의 마지막.

아주 희망차기 그지없는 새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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