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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생활자 Dec 04. 2019

나는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 있고 싶었다

출산의 기록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처음 생각했던 건, 친구의 SNS 속 초음파 사진 때문이었다. 내 또래의 여자들이 올리는 만삭 사진과 잠을 자고 있는 아기들의 사진은 나에게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만 같았다. 신랑과 나는 결혼 전부터 비출산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그 사진들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그곳에선 언제나 희미하게 젖 냄새가 감돌았다. 세수도 하지 않고 흐트러진 머리를 질끈 동여맨 민낯의 산모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오늘은 유축을 몇 미리 했다는 게 자랑이 되는 곳이었다.


2시간에 한번 30분씩 유축기를 가슴에 대며 농장에 갇혀 있는 젖소를 떠올리곤 했다. 내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혐오스러운 조리원의 일상이었다.


어느 날은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가슴이 너무 아파서, 며느리를 보러 온 시어머니를 얼굴도 보지 않고 보낸 적도 있다. 대못이 박힌 듯 느껴지는 통증에 응어리를 풀면 정작 아기는 원치도 않는 가슴속에 맺혀 있는 모유가 앉아있는 의자 아래로, 반사되는 거울로, 입고 있는 옷으로 맺히곤 했다.  그리고 그것을 수치스러워하는 나, 내가 있었다.


나를 위한 시간은 30분도 존재하지 않았다. 수유를 하라는 전화가 와도 나가고 싶지 않아서 수유를 거부했던 날도 있었다. 나는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 있고 싶었다.


주인만 바라보는 충성스러운 개가 원래 싫었다. 하루 종일 나만 바라보고 있으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존재가 내 옆에 있었다. 아이는 나에게 아무런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이유도 알 수 없이 계속해서 울었다. 1시간이 넘게 잠들지 못하고 우는 아이를 안고 어르며 나도 같이 울었던 날들이 며칠이나 되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마크 트웨인은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언젠가는 아이가 자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버텼던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위협이 되기도 하는 나날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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