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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생활자 Sep 28. 2019

[일기] 캠핑클럽 덕에 떠올린

부끄러운 나의 20대에 대하여


요즘 나의 최애 프로그램은 캠핑클럽이다.


그동안 많은 아이돌이 다시 나왔을 때 전혀 아무 느낌 없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좀 달랐다. 네 사람이 어렵게 다시 만났을 때, 효리가 울고, 진이가 울고, 유리가 울고, 주현이가 울고. 나도 또한 비슷한 시기를 살아서 그런가 보다.


네 사람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 20대를 보냈는지 여러 장면에서 느껴졌다. 그래서 서로를 보기만 해도 미안하고 자꾸 눈물이 나고. 아마도 여자들만 이해할 감정이다. 친하고 가까우면서도, 서로 경쟁하고 질투하고, 모든 걸 보여줄 수 없고, 모든 걸 받아줄 수는 없는 아이러니 같은 마음.




대학교 2학년 때 작은 동아리의 대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나는 대학교 1,2학년 때 시간이 많고 전공에는 관심이 없어서 동아리 대표를 해서 그나마 학교를 열심히 갈 수 있었다. 재밌었던 건, 그 동아리에 나를 데려가 주었던 친구가 나를 대신해 과대표를 했다는 사실이다. 서로가 과대표를 미루고 있던 상황에서 누군가 나를 지목했고, 지목했더라도 과대표가 됐을 리는 없는 상황인데, 그 친구가 나는 동아리 대표를 해야 하니, 본인이 과대표를 해야 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아마도 동아리에 데려갔던 책임감이 작용했던 것이리라.


1년의 동아리 대표 생활을 거의 마무리하고 12월, 선배들을 모시는 홈커밍데이를 했는데, 며칠 후 행사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 아팠다. 행사 때 먹었던 음식에 이질 균이 있었다. 나는 경찰서 비슷한 기관에 가서 진술 비슷한 것을 해야 했는데 결론은 그 행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를 말해야 하는 것이었다.


웃기게도 나는 그 명단을 얘기할 수가 없었다. 이질은 법정 전염병이라서, 국가의 관리대상에 들어간다. 나는 그 병의 엄중함을 모른 채 선배들의 명단을 공개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단호박에 고지식했던 내 인생 최악의 순간 중 하나였다. 다행히도 그때 나 대신 과대표가 됐던 친구가 함께 있었다. 그 친구는 나를 어렵게 설득했고, 그 친구 덕에 상황은 더 어려워지지 않고 마무리되었다.


그때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이상한 아이라고 멀리할 만도 한데, 그 친구는 20년째 나의 친구이다. 나의 대학교 생활 동안 그 친구는 나를 그렇게 감싸주기도 하고 지켜주기도 하면서 내 곁에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좋으면서도 가끔 불편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질 사건 이후에 단짝 같았던 그 친구와 나는 조금 거리가 생겼다.


미완성 같았던 20대의 나는 실수투성이였다. 캠핑클럽을 보면서 그 친구 생각이 많이 났다. 내 부끄러운 모습까지 다 알고 있는 고맙지만, 창피한 나의 친구. 그런 나를 감싸주느라 애썼을 생각에 조금은 미안한 그런 친구.



그 시절을 이미 다 아는 그 친구는

삶의 순간순간 그러한 나를 배려하고 지냈을 테다



캠핑클럽을 보면서 그녀들이 울 때마다 나의 20대와 그 20대를 함께 해온 사람들이 생각나서 나도 조금 울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의 우리는 사회에 자리 잡느라 서로 너무 바빠서 근 10년을 경조사 외에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조금은 인생의 여유가 생긴 후부터 다시 얼굴을 본다. 우리는 더 이상 그때의 이질사건을 얘기하지 않지만, 말하지 않아도 그 시절을 이미 다 아는 그 친구는 삶의 순간순간 그러한 나를 배려하고 지냈을 테다.


핑클 네 사람이 모두 다 잘 되어서 참 좋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우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내 곁에 있는 그 친구도 그렇겠지. 그때의 단호박 같던 00 이가 지금 이만큼 성숙해졌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편안하게 나를 바라볼 수 있기를. 긴긴 시간 앞으로도 서로를 바라봐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에 나오는 그 친구도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따뜻한 그 친구의 글을 링크해 둡니다.

https://brunch.co.kr/@mzpaus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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