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는 전세 만기로 인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결정이었다. 물이 안 나와서 입주청소도 거의 하지 못한 채로 들어간 우리는, 물이 나오자마자 7살 아이를 옆에 두고 모든 창틀의 비닐을 벗기고 흙 묻은 벽지를 닦았다. 임시전기를 쓰고 있어서 밤에는 종종 전기가 차단되는 일도 생겼다. 혼자 집 밖으로 나가 임시전기의 버튼을 올리며 '언제든 힘들면 나가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붙박이 장이 들어오고, 신발장이 생기고, 다용도실 문과 중문이 생기고, 손잡이가 없던 방문에 손잡이가 달리면서 조금씩 집은 안정되어 갔다. 제대로 된 전기가 연결되던 날과 인터넷이 개통되던 날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신랑과 나, 둘 중에 한 명은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이 모든 과정을 건설사에 조르고, 싸우고, 타협하고, 설득하며 하나씩 천천히 진행해나갔다. 감정적이지 않게 모든 것을 대화로 풀어나가는 남편을 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1년이 넘게 계속된 타운하우스 건설사와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절대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와 계약한 건설사는 악의가 있어 공사를 지연시킨 것은 절대 아니었고, 작은 규모의 타운하우스 사업 외에도 큰 사업들을 몇 개 진행하고 있는 규모 있는 회사였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긴 하더라도, 공사를 진행할 의사는 충분했다. 회사의 규모는 계약 전에 충분히 사전조사를 거쳤다. 그들이 자금을 준비할 동안 우리는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그들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자주 전화를 했다. 최대한 호의적으로 전화를 끊으며, 에어컨과 인터폰, CCTV도 설치되지 않아서 구멍이 숭숭 뚫린 집을 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남편과 내가 이 시간을 잘 보냈기에 지금의 우리 집이 있다.
실제로 감정적으로 대처했던 몇몇 집들의 경우, 건설사와의 관계가 틀어져 그 이후의 대화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물론 언성을 높이는 일이 생길 수 있겠지만, 마무리는 항상 웃으며 끝나는 게 좋다. 더불어 현장에 있는 현장 실무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추가 비용이 드는 옵션들을 제안하는데, 적당히 옵션을 거절하면서도 인간적으로 그들을 배려해야만 했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현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 리라.
대부분의 공사가 마무리되어있던 집의 내부와는 달리, 외부는 진전이 더뎠다. 3월에 울타리를 두르고, 4월에 외벽을 마감하고, 5월에 잔디가 깔리고, 6월 말 계단석 공사가 끝났다. 누군가에게 집을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은 7월쯤이었다. 8월에 대문이 달리자, 드디어 집다운 집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 집이 실제로 준공이 난 시기는 2019년 12월이었다. 준공을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공사가 마무리된 후에도 서류적인 업무에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집이 내 집이 될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몇몇 운이 좋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크고 작은 마음고생을 하며 주택살이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조금 더 스마트한 주택러가 되고 싶다면, 주택을 구입(또는 계약)하기 전에 주택 박람회에 자주 가서 다양한 업자들과 자재들을 경험해보길 권하며, 집을 지어본 주변인들의 조언을 아낌없이 수용하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주택 관련 잡지에 다양한 건축사무소의 사례가 나오고 있으니, 책자에 나오는 업체 중 오랜 기간 꾸준히 좋은 집을 짓고 있는 곳이 있다면 눈여겨 봐두길 바란다.
우리 집의 공사를 봐주셨던 현장 업자 중의 한 분은 건설사 중에서도 '계약이행 보증보험'을 가입할 수 있는 곳들이 있다며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건설공제조합'에 가입한 업체와 계약할 것을 권유했다. 계약금의 10%에 해당하는 '계약보증서'를 발급받고 문제가 생길 경우, 건설공제조합에서 해결 받는 안전장치가 마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건설공제조합 가입 업체들은 대부분이 큰 규모의 건설사로 건축비를 평당 800만 원 이상으로 책정한다며 부담이 있을 것이란 얘기도 함께 해주셨다. 물론, 이 것이 모든 대안이 되지는 않겠지만, 가이드라인 중 하나는 될 수는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