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과 인터폰, CCTV, 도어록도 설치되지 않아서, 구멍이 숭숭 뚫린 타운하우스에서 몇 달을 지냈지만, 6개월에 가까운 과정이 이제 짧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힘들었던 시간보다 풍경이 주는 위로가 컸기 때문이다. 힘들 때마다 바라보는 집 앞의 풍경은 온갖 시름을 잊게 했다. 지나고 보니, 나름대로 잘 버텼다는 자부심도 있다.
그 해 여름은 행복했다. 아이의 친구들을 불러 마당 있는 집의 혜택을 실컷 누렸다. 지인이 선물해준 튜브 수영장에 몇 차례씩 물을 채웠다. 잔디밭 한 구석에 아이가 좋아하는 모래를 여러 포대 구매해서 모래놀이터를 만들었다. 개구리를 보고, 방아깨비를 보고, 밤이면 별을 보았다. 주말마다 손님 접대로 바빴다.
요리 솜씨가 없는 나도 요리할 맛이 났다. 우리 집에만 오면 모두가 연신 '맛있다'를 외쳤다. 강원도 어디에 있는, 서해안 어디에 있는 '풍경 맛집'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간단한 된장찌개에도 힐링이 되는 맛이 있었다. 몇 달 동안 원 없이 손님을 부르며,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을 풀어냈다.
펜션 같은 집이라는 장점 외에도, 이사 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꿀잠'이었다. 그렇게 잠이 잘 올 수가 없었다. 시골은 낮에도 그렇지만, 밤에는 정말 조용하다. 문득 들리는 자동차 소리 외에는 사방이 정적이었다. 창문의 약한 불빛들 외에는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그렇게 매일 선잠을 자던 내가 이사 후에는 꿀잠을 잤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기가 막히게 보이는 밤하늘의 별은 마치 선물 같았다.
주말이 달라졌다. 남편은 매주 '진짜 쉬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매일 겪어야 했던 층간소음은 잊은 지 오래였다. 아이는 주말이면 온 동네를 제 집처럼 누볐다. 같이 입주한 타운하우스 단지의 모두가 삼촌이고 이모가 되는 곳이었다. 다행히 주말에 오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어서 서로의 집을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오고 갔다. 밥시간이 되면 눈치 보지 않고 서로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다. 밤이면 마음 맞는 이웃끼리 술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우리 부부도 옆집 부부의 술자리에 덤으로 얹어져 함께 불멍을 때리며 앉아있곤 했다.
큰 변화를 겪어야 했던 우리의 7세 아이는 더욱 자유로워졌다. 끌려가듯 사교육에 발을 담가야 했던 도시와는 달리 시골 어린이집에서는 강요되는 것이 없었다. 간단한 누리과정 수업 외에 대부분의 시간은 자유놀이로 채워졌다. 생일이 느려 자유놀이 시간에도 누리과정의 보충을 하곤 했던 아이는 시골에 와서 원 없이 친구들과 놀았다. 하원 때마다 지쳐있던 표정이, 활기차게 변했다. 사실 여러 가지 자잘한 장점보다는 아이의 변화에 우리 부부는 가장 옳은 결정을 했다고 믿는다.
그렇게 첫 시골살이의 6개월이 지나갔다.
그렇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