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예전부터 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신혼 초 용인에 지은 외삼촌의 전원주택을 보며, 우리도 언젠가는 이런 집을 짓자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집을 지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막연하게 그러자 했다.
신혼시절 3년을 살았던 14평의 오피스텔을 제외하고 우리는 계속 전셋집을 전전했다. 드디어 12년 만의 제대로 된 내 집 마련이었다. 그동안의 집이 전셋집이라서 제대로 인테리어도 해 본 적이 없던 우리는, 타운하우스를 계약한 후에 집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하늘에 솟구쳤다. 좋다는 것은 다 할 참이었다. 하지만, 현실과 기대 속에 항상 타협안을 찾는 게 인생 아니던가.
남편이 원하던 집은 원래 목조주택이었다. 그때만 해도 타운하우스 중에 목조주택이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딱 한 군데 목조주택이 있었지만, 서울과의 거리가 워낙 멀었다. 목조주택은 콘크리트 주택보다 지진에 강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목조 주택 전문가가 많지 않아서인지 콘크리트 주택보다 단가가 높고, 시공한다는 건축업자도 찾기 어려운 편이다. 결국 우리는 목조주택의 기대를 접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단열'이었다. 창호와 단열재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건설사에서 정한 창호가 이미 있었지만, 고집부려서 건축 당시 가장 우수했던 제품인 이건창호의 3중 진공유리 제품을 별도로 주문했다. 일반 창호보다 전체 견적이 천만 원 가까이 더 높은 상품이었다. 단열재 또한 우리가 요구한 모델이 있었으나, 이미 건설사에서 단열재의 발주가 끝난 상황이라 기존 단열재를 안팎으로 2겹 두르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덕분에 우리 집은 창호에서 오는 외풍이 전혀 없고, 단열만큼은 어느 집 부럽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큰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창호만큼은 후회 없이 지르라고 말하고 싶다.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면서, 계약한 건설사와의 대화가 더디게 진행되었다. 15명의 입주자들이 서로 다른 인테리어로 공사를 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동일한 옵션과 자재로 만들어야 조금이라도 공사비가 절감되는 것이 기본, 건설사는 입주자들을 설득했지만 인테리어의 눈높이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일 리 만무했다. 결국 화장실과 조명, 중문, 싱크대 등의 굵직한 공사들이 집집마다 개별적으로 진행되었다. 고급 자재를 사용하고 싶다면, 추가비를 내고 주문하는 형태였다.
어마어마한 추가 비용은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나의 남편이 어이없게도 화장실 인테리어에 엄청난 기대와 관심을 품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인테리어의 o자도 모르는 남편은, 무언가에 꽂히면 끝까지 후벼 파는 성격이다. 공사 기한을 넘는 여러 달의 연구와 공부 끝에, 결국은 28평이라는 소형 평수에 들이기 어려운 고급스러운 이동식 욕조와 포쉐린 타일이 깔렸는데, 나름 분위기는 좋아서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추가 비용은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 내심 안타깝다.
나는 조명, 싱크대, 그밖에 부분을 맡았는데, 그중에도 조명에 가장 신경을 썼다. 공사 초반에는 북유럽의 전문 디자인 제품들을 눈여겨보다가 한 달이 넘는 배송의 압박에 결국 국내 제품으로 마음을 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조명이 인테리어의 꽃이라고 하는데, 욕심부리면 화장실과 같은 견적이 나올 것이기에 살면서 지루할 때 조금씩 바꾸기로 했다. 화장실이나 문, 벽지나 바닥과 달리 조명은 교체가 간단한 편이라 마음 편히 결정할 수 있었다.
싱크대는 과거 디자인 회사에서 잠깐 일했던 경험을 되살려 정성껏 도면을 그려서 넘겼는데, 다행스럽게도 도면과 동일하게 결과물이 나왔다. 원목을 좋아하는 내가 원했던 단단한 멀바우 상판이 올라간 멋진 싱크대였다. 물론 싱크대의 추가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후회 없는 결정이었다. 아쉽게도 요리를 많이 하지 않아서 싱크대 내부는 거의 계획을 하지 않았는데, 서랍이나 레일, 거치대 등이 전혀 없는 문만 달리 싱크대가 되어 버렸다. 불편한대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싱크대 안까지 조금 더 신경 썼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