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의 어려움
연애를 시작하고 3~6개월을 콩깍지가 씌었다고들 한다. 집이랑 연애하던 나도 콩깍지가 씌어있었나 보다.
이사 후 6개월이 지나고 대부분의 공사가 마무리되던 8월, 조금의 시간적 여유가 생겨 영어학원을 알아보게 되었다. 예전에 다니던 서울의 학원은 자차로 50분이 소요됐다. 학원 수업시간을 고려하면 합산 4시간이었다. 말이 4시간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낮시간에 온전히 쉬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뿐인데, 그 시간을 거의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근거리에 영어학원이 있을 줄 알았다
조금 더 근거리에 있는 영어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는 하남 스타필드도 30분이 걸리지 않고, 양평 시내도 30분이면 이동이 가능하니 하나 정도는 있겠지. 겨우겨우 남양주 쪽에 영어학원을 하나 찾아냈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지불하고 주차비까지 추가되는 형태였지만, 학원이 있다는 데에 안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업의 질은 보장할 수 없었다. 어렵게 찾은 영어학원은 1회 수업으로 만족하고 남은 비용을 환불받았다. 그리고 결국은 영어학원 다니기를 포기했다. 지금은 지역에서 운영하는 저가의 영어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가을, 아이의 영유아 검진을 앞두고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 평소에 가는 동네의원에서는 국가에서 실시하는 영유아 검진이 불가능했다. 양평군의 모든 지정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그들은 모두 한 달 이상 일찍 예약하지 않는다면 영유아 검진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이래저래 한 이유로 아이의 영유아 검진은 받지 못했다.
‘편의시설’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편리한 시설’이었다. 언제든 예약이 가능하고, 언제든 방문과 등록이 가능한 그런 곳들이 내 주변엔 없었다. 차로 30분 정도면 다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집 정도의 풍경을 누리려면 30분으로 택도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깨달은 순간 내 눈에서 콩깍지가 싸악 벗겨졌다. 현실이 보였다. 시골로 이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불편을 감당한다는 의미인지, 나는 얼마나 준비 없이 이 곳에 온 것인지, 앞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란 것을.
시골에서의 삶은 원래 이런 것이었다
있던 영어학원이 없어진 게 아니었다. 있던 병원이 이사를 간 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깝던 병원과 학원, 각종 시설을 놔두고 그것들이 싫다며 시골로 온 것이었다. 그때 나는 잠깐 다시 도시로 이사하고 싶어 몸부림을 쳤다. 왜 신혼을 보낸, 그립고 친구도 많은 일산의 새 아파트로 들어가자고 남편을 설득하지 않았는지 후회도 많이 했다. 갑작스레 현실을 마주하고 혼란스러웠던 시간이 얼추 지나고 나니, 타협안을 찾아가고 있는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