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나의 정원
올해 품은 정원의 꿈은 원대했다. 자꾸 좁게만 느껴지는 집을 넓히고 싶어 1층 방과 이어지는 데크 위에 대형 썬룸을 올리고 싶었다. 적게 잡아도 천만 원 이상이 드는 규모가 큰 공사였다. 몇 달에 걸쳐 이어진 나의 썬룸 타령에 남편의 결제도 거의 떨어질 듯했다.
시기를 놓쳐 나무 한그루 없이 빈 마당으로 났던 2019년을 위로하듯, 돌무더기가 쌓인 그곳에 보란 듯이 큰 겹벚꽃나무를 사다 심고자 했다. 4월 말 풍성한 꽃 무더기가 흐드러지게 날리길 기대했다. 마당 한구석에는 텃밭을 만들고, 비를 맞아 푹 꺼진 마당 여기저기의 구배도 맞추고 정원석도 더 멋들어지게 깔고 싶었다.
3월이 되기만 기다렸다. 날이 따듯해지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줄 알았다. 그리고 코로나 19가 터졌다.
대한민국이, 전 세계가 올스톱인데 우리 회사라고 다를 리 없었다. 남편과 내가 운영하는 작은 회사는 무려 여행업이었고 장기화되는 코로나 19는 그 작은 회사를 무력화했다. 수입은 제로는커녕 마이너스. 직원 세 명의 월급과 사무실의 월세를 주려면 대출은 필수적이었다. 계획했던 모든 것을 멈추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버텨야 하는 기간이 3개월이 될지, 6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알 수 없었다.
덕분에 나의 작은 정원도 올스톱이 되어야 하는 듯했다. 썬룸은 내년에도 어려운 숙원사업으로 굳어졌다. 대형 겹벚꽃나무는 구매를 보류했다. 대형 나무의 식재에는 중장비 또는 그에 상응하는 노동료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일이 없는 덕분에 시간이 많았다. 저렴하지만 후기가 좋은 온라인 농원에서 딱 10만 원어치 작은 나무들을 구매했다. 1.5m의 단풍나무, 60cm의 미스김 라일락, 아이가 키우고 싶어 했던 1m가량의 앵두나무. 그리고 나무도 아닌 묘목 세 그루, 매실나무, 배롱나무, 꿈에 그리던 겹벚꽃나무.
전지가위로 잔디 뿌리를 제거하고 작은 묘목과 나무들을 심었다. 물을 흠뻑 주고 잘 자라라고 응원했다. 이제 나의 몫은 끝이다. 햇살과 흙, 그리고 나무의 힘과 시간,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나의 지인은 빈 마당을 보고 허탈해하는 나에게 얘기했다.
“나무는 생각보다 빨리 커.”
이 말이 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컸다.
텃밭 자리에 작년에 대문을 만들고 남은 방부목으로 궤짝은 짜 넣었다. 반년 넘게 바짝 마른나무는 못이 잘 박히지 않았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못을 박았다. 남은 건 나의 수고뿐. 나무 심기와 달리 넓은 땅의 잔디 제거는 쉽지 않았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끙끙대며 끝까지 잘라냈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손바닥 사이사이가 시큰거렸다.
보기 싫었던 마당 한구석의 돌밭에서 자갈을 제거하고 남은 흙으로 궤짝을 채웠다. 작은 삽으로 자갈을 제거하며 작은 통으로 스무 번쯤 흙을 갖다 채우니 제법 텃밭 느낌이 났다. 부족한 흙은 상토와 비료를 사다 섞었다. 가볍게 올라오는 비료 냄새에 기분이 이상했다. 좋은 냄새가 아닌데 흐뭇했다.
해가 잘 들지 않는 음지에서는 사람 얼굴보다 큰 잡초가 무더기로 자라고 있었다. 그날의 작업이 모든 일 중에 가장 고됐다. 잡초와 뒤섞인 잔디를 몽땅 제거했다. 경사지고 울퉁불퉁한 땅의 구배를 잡았다. 그날 밤은 양팔에 파스를 2장씩 붙이고 잠에 들었다. 내 작업을 지켜보던 옆집 사장님은 공사 후 남은 벽돌 200여 장을 기부해주셨다. 남편과 사장님이 그 벽돌을 나르고, 나는 벽돌을 음지 밭에 차곡차곡 깔았다.
내 몸은 해보지 않았던 노동에 절었지만, 실상은 모두 티 나지 않는 사소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정원에는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났다. 겨우내 우거진 뒷마당의 수풀, 화단의 성장을 방해하는 돌멩이들, 바람이 불면 회오리치는 마른 잔디들. 거리두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여러 작업들이 쌓이고 쌓여 마당의 모습은 조금씩 변해갔다.
계획했던 것들은 아니었지만, 나의 마당은 제법 근사해지고 있다. 내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만들어갔기에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다. 무척이나 소박하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이 작은 정원의 변화가 기대된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원은 멈추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