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여행
일 년이면 두어 달을 바깥으로 돌았다. 나의 동거인은 일 년에 네 달을 집 밖에서 잤다. 우리는 작은 여행사를 함께 꾸려가는 부부다.
그랬던 우리가 올해는 여행 계획이 없다. 역시 코로나19 때문이다. 4월 말에 계획했던 독일 여행은 진작 취소했다. 5월에 동남아라도 가려고 했는데 외국의 사정이 우리나라보다 더 열악해질 줄이야!
국내 여행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해서 강조되는 시점에 아무리 시간이 많다한들 맘 편히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숨 쉬듯이 여행을 갔는데, 숨을 못 쉬는 시대가 되었다.
매일매일 시골에서 산과 강을 바라보는 나와 달리, 취소되는 예약에 시달리며 코로나19 이후의 신사업을 구상하는 신랑은 어느 날 갑자기 땅을 보자고 했다.
“이사 가자고?”
“아니, 그냥 땅 좀 보자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요즘 땅 보러 다녀요.
어디에 어떤 땅을 보자는 건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일 년 동안 제법 사람을 사귄 건 잘한 짓이다. 지인의 소개로 보게 된 땅은 정말 근사했다. 저 멀리 강이 내려다보였다. 산의 능선도 예술이었다. 정지용의 시 ‘향수’를 저절로 읊게 만드는 최고의 시골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주말마다, 평일 저녁에도 계속해서 이 곳을 갔다. 시간마다 다른 모습의 풍경을 맞이했다. 주변의 다른 땅들도 아쉽지 않게 모두 둘러보았다. 동네 이장님을 통해 땅값도 확인했다. 하지만, 이 땅의 뒤로는 아주 근접하게 송전탑이 있다. 송전탑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 분명 불안한 요소는 갖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우리는 이 땅을 포기했다.
신랑은 최종적으로 이 땅을 포기하고 근처의 위성사진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는 근처의 모든 언덕을 모두 올랐다. 자동차가 올라갈 수 없는 산길까지 겁도 없이 오르던 어느 날은 공사현장을 드나들다 타이어에 못이 박혀 펑크가 나기도 했다.
한 번은 부동산의 도움을 받아 보기도 했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땅은 그들이 팔고자 하는 땅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미 눈 뜨고 코 베인 경험이 있는터라 그들에게 휩쓸려 다니고 싶지 않았다. 결국은 발품을 파는 게 정답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찾았다. 최고의 전망을 가진 그곳을 말이다.
송전탑도 없고 전망을 가리는 건물도 없는, 바람도 많이 불지 않는 포근한 그곳. 마음이 한순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아, 이 느낌 뭔지 알아. 여행 가서 엄청 좋은 데 갔을 때 이런 느낌 들어.”
“입장료 내고 와야겠네.”
당연히 우리는 이 땅을 사지 않았다. 사실은 돈이 없어서 못 산다. 그래도 계속해서 간다. 날씨가 좋은 날도 가고, 바람이 부는 날도 가고, 흐린 날도 간다. 아직 빈 땅으로 있는 이 곳에서 끝내주는 전망을 마음껏 누린다. 내 것이 아니지만, 이미 내 것이다.
그 땅이 우리 땅이 될지 아닐지를 따진다면, 지금은 ‘아니다’에 가깝다. 뭐 어떠랴. 코로나 시대의 여행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족하다. 그렇게 내 것이 아닌 것에 계속해서 침을 바르며 땅을 보러 다니고 있다. 계속해서 바르다 보면 내 것이 될 날도 오겠거니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