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야기
작년 2월 시골생활을 시작했지만, 집에 대한 여러 공사가 지연되어 텃밭은 올해 처음 꾸려보았다. 코로나 때문에 집밖으로 나갈 수 없던 3월, 마당 한 구석의 잔디를 끙끙대며 제거하고, 대문을 만들고 남은 방부목으로 텃밭 테두리를 짜 넣은 뒤 상토와 비료를 사다 섞었다. 잔디제거도 테두리 짜기도 초보 주택러에겐 제법 힘들었지만, 소원하던 텃밭이 생겼다는 만족은 그 어려움을 상쇄했다.
초록이 움트는 3월 말, 모종 가게에서 상추씨와 꽃씨를 구입했다. 부드럽게 먹기 좋은 청상추와 로메인이었다. 씨앗이 얼마나 날지 알 수 없어서 봉투의 1/3 정도를 텃밭에 흩뿌리고 살짝 덮었다. 대부분은 씨앗의 두 배 정도로 흙을 덮으라고 하는데, 상추씨는 흩날릴 정도로 작고 가늘어서 덮은 듯 만 듯 흙을 올렸다.
3-4일이면 싹이 난다고 했는데, 꼬박 일주일을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결국 ‘이번 상추농사는 망했다.’할 때 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새싹들이 흙을 밀고 올라왔다. 초록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해서 그 작은 새싹을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 어떤 위로와도 같이 느껴졌다.
4월이 되어도 양평의 아침, 저녁은 춥다. 날씨 때문인지 씨앗의 자라는 속도가 더뎠다. 몇몇 사람은 ‘씨를 뿌리면 상추가 크게 자라지 못한다. 샐러드 몇 번 해 먹을 정도 밖엔 안 자랄거다.’라며 나의 기대를 줄였다. 조급한 마음에 결국 모종 가게에 다시 방문했다. 양상추 모종과 토마토, 방울토마토, 호박과 참외 모종까지 작은 모종들을 마당 구석에 추가해 심었다. 아쉽게도 상토가 아닌, 마당의 일반 흙에 심었던 참외와 호박 모종 일부는 금새 시들고 말았다. 모두 시들기 전에 남은 모종들을 텃밭의 상토로 옮겨 심었고, 다행히 양상추와 토마토는 모두 잘 자라고 있으며, 호박도 하나 살아 남았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5월이 되자 모종과 더불어 상추 씨앗은 미친듯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바람이 많은 동네의 특성상, 타 지역보다 씨앗이 자라는 시기가 늦기도 했고, 때마침 내려준 비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아쉬웠던 마음이 못 미더울만큼 수북이 자라난 상추들은 다 거둬들일 수 없을만큼 무성히 자라났다. 좋은 흙과 넉넉한 햇빛이 있다면, 씨앗만으로도 건강한 상추를 거둘 수 있다. 물론 제법 긴 시간을 기다려주어야 한다.
상추는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어서 지역에 따라 4월말부터 7월초까지 곁잎을 떼어가며 넉넉히 먹을 수 있다. 집에서 자란 상추는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단 맛이 난다. 맨 밥에 비빔장과 상추만 북북 찢어 넣어 먹더라도 제대로 된 한철 밥상이 될 수 있다. 미친 듯이 자란 상추 탓에 일주일에 3, 4끼는 상추가 있는 밥상을 차려야 했다. 이렇게 인심 좋은 상추도 7월 장마 또는 무더위 철이 되면 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시들기 시작한다. 그 때가 되면 상추를 모두 뽑아내고 다른 작물을 심어주면 된다. 여름이 되면 가지와 고추, 오이 등을 가장 많이 심는 것 같다.
나의 조그만 텃밭에는 여름엔 가지와 오이가, 가을엔 무와 배추가 심겨질 예정이다. 지금 자라는 호박, 감자와 토마토도 한달 후에는 수확의 기쁨을 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밖에서는 사 먹을 수 없다는 달디 단 토마토를 먹으며, 나는 또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