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도쿄여행 1일 차
in 도쿄 긴자
친한 언니의 제안으로 4월쯤 갑자기 도쿄 여행 일정을 잡았다. 그 사이 나는 퇴사를 당했고, 백수가 되고, 수영을 시작했다. 시간이 참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부지런한 시간은 나를 인천공항에 떨어트리고, 나리타 공항에 내려주었다. 인천공항에 내리면서부터 공황증세가 시작되어서, 안정제부터 찾아먹었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 공황장애는 어느 날 이렇게 불쑥 나를 찾아온다. 부디 비행기에서 공황발작이 일어나지만 않길. 그렇게 바랐고 다행스럽게도 발작 없이 착륙했다. 웰컴 투 재팬. 이 글자를 보고 입국 수속을 밟았음에도 일본에 왔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일본에 왔음을 실감한 건 전철 티켓을 끊을 때부터였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일본은 철도 민영화의 여파로 교통비가 굉장히 비싸다……한국에서도 비싸네 마네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정말, 정말 비싸다. 마음속으로 민영화 결사반대! 를 외치게 되는 순간이었다. 50여 분을 전철을 타고 달려 도쿄역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여러 언어가 섞여 들렸다.
일본에서 먹은 첫끼는 붓카게 우동이었다. 귀여운 사이즈의 김치……(조각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를 서비스로 주었다. 기무치,라는 발음을 그때 처음 들었다. 우동이 제법 느끼해서 나는 그 김치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한국의 김치보다 달았다. 김치는 한국게 맞구나. 나는 한국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김치를 서비스로 주지 않는다. 밥상의 김치는 그냥 당연한 거다. 우린 김치볶음밥에 김치를 얹어먹는다고! 이상한 말을 속으로 지껄였다.
나는 일본어를 읽고 쓸 줄, 그리고 말할 줄 모르는데 듣기만 어느 정도 할 줄 안다. 애니메이션 독학의 여파다. 오늘 하루종일 들리는데 말하지 못하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슬펐다. 대답하고도 불안한 감각이 싫었다. 같이 간 언니에게 재차 확인하고서야 안심했다. 역시 외국어는 할 줄 알고 봐야 한다니까. 한국에 돌아가면 깡그리 잊어버릴 결심을 또다시 한다.
우측통행이 아닌 좌측통행이라 움찔하고, 신호등 신호 바뀌는 속도가 느려서 놀라고, 아직 일본에 온 걸 실감할 수 없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지만 나는 누구보다 일본에 온 걸 실감하고 있었다.
도착한 호텔은 웰컴드링크를 주는 곳이었고, 나는 하이볼을 시켰다. 한 입 마시고 버렸다. 저녁식사를 한 곳에서도 하이볼을 시켰다 두 입 마시고 버렸다. 내 혀는 뿌리까지 토닉워터에 절었다. 하이볼은 내가 더 맛있게 마는군. 일본에 와서 처음 찾은 장점.
나와 여행을 같이 온 언니는 작년 오사카 여행을 함께해 준 언니다. 사실상 내 첫 해외여행을 같이한 사람이라고 보면 되겠다. 우리는 비슷한 생활리듬을 갖고 있다. 비슷하게 깨고, 배고프고, 먹고, 잔다. 식성도 비슷하다. 고기를 좋아하고, 매운 걸 못 먹는다. 대한민국에서 매운걸 못 먹는 사람 찾기 어렵다는 건 대한민국에 산다면 다 알 것이다. 비슷하단 말을 많이 썼지만 또 써야겠다. 이렇게 비슷한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것을 좋아해 만났다는 게, 그리고 그 인연이 지금 도쿄까지 이어졌다는 게 그야말로 기적 같으니, 비슷하단 말을 많이 쓴다고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저녁은 말고기였다. 일본에 왔으니 말고기를 먹어보고 싶었다. 가게 점원은 친절했고 음식도 맛있었다(하이볼이 맛없었다). 소보다 덜 느끼하고 기름진 게 오히려 소보다 더 취향이었다. 한국에 가면 먹기 힘들겠지.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비건 지향적인 삶을 살아야겠지.라고 생각하며 고기를 꼭꼭 씹어 삼켰다. 그런데 마지막 후식으로 나온 차가 정말 취향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마시려면 보성에나 가야 할 법한, 녹차 아이스크림에서나 날 법한 향기가 녹차에서 났다. 아, 이게 녹차구나. 내가 지금까지 먹은 녹차들은 다 가짜였구나. 어째 말고기 집에 가서 차에 대한 인상만 남아버렸다. 찻집에 들릴 셋째 날이 기대된다.
숙소에 돌아와 그냥 자려고 하는 나를 언니가 두드려가며 욕실로 보냈다. 우리 방은 샤워부스였고, 코브라와 해바라기 형 샤워기가 있었다. 해바라기 샤워기를 틀자……와, 여긴 천국인가 보다. 좁은 원룸 화장실에선 코브라를 쓸 수밖에 없고, 서서 물을 맞는 일 따윈 꿈꿀 수 없다. 수영장 샤워실은 따뜻한 물이 잘 안 나오는 데다 오래 자리할 수 없다. 그런 와중에 만난 호텔 샤워부스란……. 욕조가 아니라 아쉽다는 마음이 싹 씻겨 내려갔다. 평소보다 몸을 꼼꼼히 닦고, 머리도 박박 감았다.
오늘, 여행 첫날을 마치며 이 글을 쓴다. 여행은 어떻게든 끝나게 돼있고, 나는 오늘을 사진으로나마 추억하게 되겠지. 벌써부터 오늘 한 사소한 대화들은 기억나지 않으니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들이 즐거웠다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담아 꾹꾹 쓸 수는 있다. 그렇게 추억할 수 있는 여행, 그런 여행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