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촌의 소음은 다양하다

by thinking cloud

살인도 부른다는 층간소음. 아파트에서만 문제가 아니다. 원룸을 옮겨 다니면서 내가 층간소음 피해자가 된 적도 있고 가해자가 된 적도 있었다. 두 경우 다 힘들었다. 피해를 입을 때는 위층의 미친X 때문에 인격의 손상을 경험하고, 가해자가 되었을 때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라도 떨어뜨렸다 치면 아래층에서 들었을까 봐 순간적인 스트레스가 심했다. 안 그래도 기름손인데 땀이 나서 더 미끄러워졌다. 그래도 층간소음을 피해 아파트 1층과 탑층중에 고르라면 탑층을 고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역시 층간소음은 아래층이 더 괴로움에 틀림없다.


소음 불편이 있을 때 아파트에서는 대개 경비실에 전화한다. 아주 고상하고 단호하게 층간소음을 불평한다. 근데 아파트 거주자는 대부분 자가 주택이거나 매매금액과 얼마 차이 안 나는 전세금을 지불하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내 집에서 내가 뛰어다니는데 어쩌고 라며 당당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경비실에서도 곤란할 수 있다.



원룸은 그렇지 않다. 부동산 관리인이 있거나, 주인세대에 건물주가 산다. 시끄러우면 건물주한테 간단히 문자 한 통 보내면 된다. 다만 문자를 보낼 때는 정중체를 유지해야 한다.

<000호 어제 새벽 한 시쯤부터 계속 쿵쾅거리던데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저만 시끄러웠던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도 그럴까 싶어 걱정입니다.>

이 방법은 내가 본의 아니게 층간소음 가해 쪽이었을 때 경험했다. 조물주보다 한 길 위라는 건물주의 전화를 받은 날이었다. 아래층 거주자가 예민한 거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해봤지만, 나는 그날 포스트잇에 미안하다 조심할게라는 취지의 메모를 적어 아래층 문에 붙였다. 나에게 들었던 약발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잘 들었다.




원룸은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가 많기 때문에 위아래도 그렇지만 옆이 더 가깝다. 원룸에 살면서 층간소음만큼 벽간 소음이 만만찮음을 알았다. 벽이 가로막아서 그렇지 옆방 사는 학생과 내 거리가 불과 3미터도 안 떨어져 있을지 모른다.


친구들과 전화할 때 내 직장 생활이 어떻고 연애 상황이 어떻고 하는 개인 신상을 옆방과 공유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 곤란하다. 그런 얘기가 들린다면 옆방에는 얼마나 민폐이며 본의 아니게 공개된 내 개인정보는 얼마나 부끄러운가. 그런 이유로 완전개방 목청으로 통화하기 위해 차 까지 갈 때도 있다.

희망동 원룸촌은 주변에 대학교가 있어서 비교적 대학생 거주자가 많다. 혈기왕성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살다 보니 사소하게 놀랄만한 소음을 듣기도 한다.

일단 고성방가. 혈기왕성한 만큼 목소리들이 크다. 낮에 크면 나은데 밤에 크다. 안그래도 밤에는 비닐봉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고층이 없고, 창문이 골목에 접해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단지 내에 동 간 거리가 확보되어있고, 딱히 그 아파트 입주민이 아니면 지나다닐 사람이 없으니 원룸촌보다는 고성방가를 경험할 일이 적다.

고성방가의 대부분은 술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주사를 고성방가로 알게 된다. 술 마시면 웃는 사람, 술 마시면 우는 사람. 꼭 술을 마셨기 때문에 고성방가를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 게 가끔은 너무 발음이 또렷해서 저 사람 맨 정신인데? 싶을 때도 있다.


'나도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차 빼, 차 빼라고,'

'내가 말하는데 왜 막아? 왜 막냐고!'

'(뜬금없이) 아아아악!'


뭐가 그리 처절한지 모르겠다. 방 안에서 듣다 보면, 오늘은 어떤 청춘이 술을 마셨나 귀 기울일 때도 있다. 이런 고성방가를 불편하게만 여길 원룸러도 있겠지만, 원룸에 처박혀 하루 종일 혼자 있다 보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사람의 생소리가 반가울 때마저 있어 헛웃음이 나오는 경험을 한다.

고성방가가 있은 다음날 아침, 집 앞 전봇대 앞에 예쁜 리본이 달린 슬리퍼가 한 짝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하다. 신발을 보며 묻는다. 너였니?

이 신발의 주인은 발을 안 다치고 무사히 집에 들어갔을까.




골목 가수들도 밤에 활동을 시작하는데, 원룸촌 처음에 들어왔을 때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곡이 많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밥만 잘 먹더라’를 누가 그렇게 불러 댔었는데 이제는 들어도 모르는 노래를 부른다. 나도 한 때는 투데이 인기곡 100곡을 몇 번씩 반복해 들으며 가요를 섭렵하던 때가 있었는데. 역시 원룸촌에도 세월은 똑같이 흐른다.

위에도 말했지만 원룸에서는 벽 너머 바로 옆방의 침대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기가 어렵다. 스피커도 볼륨을 올리면 피해를 줄 수 있어 볼륨을 줄이거나 이어폰으로 듣는다. 근데 또 그렇게 조심하면서 듣기가 번거로워서 급기야 잘 듣지 않게 된다. 노래를 듣거나 부르지 않게 된 것도 원룸 살면서 바뀐 생활이라면 생활이겠다. 그래서인가. 이제는 딱히 부르고 싶다거나 퍼뜩 생각나는 노래도 없다.


노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취미생활에 원룸 시스템을 기똥차게 적용한 사례를 발견했다. 동전 노래방이다. 늘 조용해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쌓여 소리를 꽥꽥 지르고 싶을 때 동전 노래방이 최고다. 원룸러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원룸 시스템을 도입했거나 도입할 수 있는 다른 취미생활공간이 희망동 원룸촌에 많아졌으면 한다.



위에 열거한 다양한 소음이 있지만 원룸촌 소음의 끝판왕은 역시 공사 소음이다. 희망동 원룸촌내 늘 어느 집인가는 공사 중이다. 그 어느 집인가가 내가 사는 빌라와 가깝다면 그 시기는 번뇌의 시기다. 토요일. 아침에 늘어지게 잘 수 있는 날을 일주일 만에 어렵게 맞이했는데 그놈의 공사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아침잠을 소음에 방해받으면 온 몸에 날이 서고 만다. 미리 공지된 공사 건이라 층간소음 때처럼 건물주 문자 찬스를 사용하지도 못한다. 그냥 사정거리 밖에서 공사가 있기를 바랄 밖에.



방콕 하기로 정한 날이면 나는 나무늘보가 된다. 1인용 소파에 파묻혀서 휴대폰만 들여다본다. 수다도 귀찮아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있다. 저절로 묵언수행이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을까. 위에 열거한 경우들을 제외하면, 희망동 원룸촌은 대체로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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