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inking cloud Oct 23. 2021
희망동 원룸촌에도 작은 가게들이 제법 들어온다. 피부관리실이 바로 생각나는 것만 세 군데가 있다. 네일샵도 그만큼 있고, 미용실은 더 많아서 포화상태다. 미용실 앞집이 미용실인 적도 있었다. 창문 너머 서로의 가게를 보며 그들은 얼마나 기(氣)를 소모했을까. 그래서인지 두 미용실 중 한 곳은 이년 만에 이사를 갔다.
내가 가는 미용실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첫 원룸이었던 발렌타인 1층이 미용실이었으니까. 발렌타인 미용실 사장님은 짧은 컷트머리의 포스가 뿜뿜하는 아주머니였다. 직원을 한 명 데리고 열정적으로 미용실을 하셨다. 두어 번 갔더니 내 스타일을 파악하시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가 되었다. 직원 분은 천상 여자 스타일로 긴 머리에 눈웃음이 매력 있는 분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장님과 정반대라 오래 일 하실까 했는데 내가 발렌타인을 지나 즐거운 하루를 넘어 르네상스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근무했다.
그런데 한동안 그 미용실이 문을 닫은 적이 있었다. 석 달이 넘었는데도 문을 열지 않길래 가게를 내놓은 건가 하던 중 다시 문을 열었다. 머리 할 때가 아직 안되었지만 잽싸게 들어갔다. 직원분이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단 카리스마 사장님이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의 안부를 묻자 그간 몰랐던 이야기가 쏟아졌다.
사장과 직원이라 생각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사실 모녀지간이었다. 사장님은 건강해 보이던 모습과는 다르게 중대한 기저질환을 갖고 있었고 최근 몇 달간 상태가 악화되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일로 가게 문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딸이 이제 가게를 넘겨받아 이 자리에서 앞으로도 미용실을 계속할 거라 했다.
머리 하면서 이렇게 만감이 교차한 적이 있었던가. 두 사람이 모녀지간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 그걸 그때까지도 모른 내 둔한 눈치에 대한 한심함, 늘 계시던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당혹스러움, 뒤따라오는 슬픔, 남겨진 사람을 보는 안타까움, 계속 가게가 이어진다는 안도감, 고마움. 그 외 설명하지 못할 감정까지 뒤섞여 머리 하는 내내 명치가 뜨거웠다.
계산하면서 소파에 앉아 계시던 사장님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좋은 분이셨는데 돌아가셨다고 하니 마음이 안 좋습니다. 오면 항상 이 소파에 앉아 계셨는데... 겨우 이 한마디밖에 못했다. 그래도 마음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원룸촌 특성상 이사가 많고 사람들이 자꾸 바뀌는 터라 나처럼 오래 다닌 손님은 드물고, 따라서 이전 사장님의 모습을 오래 본 사람도 드문데, 엄마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새로운 사장님의 건투하길 바라며 나는 아직도 그 미용실에서만 머리를 한다.
가끔 사치를 부려보고 싶을 때는 피부관리를 예약한다. 마흔이 넘은 사람은 자신의 외모에 책임을 져야 된다는 말을 십 대 때 들었다. 그때는 저세상 얘기였지만 지금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컨디션만 좀 안 좋아도 얼굴이 검었다 노랬다 한다. 상태가 괜찮을 때도 소싯적 복숭아 빛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일인 줄 알면서도 아직 안 돼. 세월을 미는 마음으로 피부관리실 문을 밀어 연다.
큰길을 건너가면 시내이고 좋은 샵은 시내에 밀집되어 있지만, 굳이 원룸촌 안의 피부관리샵을 선택한다. 개인적으로 원룸촌 상권이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 보다는 같은 동네라 만만하니까 간다. 시내보다 저렴하다는 경제적 문제도 끼어있기는 하지만, 남의 동네에서는 못 누리는 편안함이 있다 (우습게 보는 것과 혼동 주의).
관리를 받는 동안 원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오늘의 날씨부터 내일의 운세 까지. 피부관리샵 원장님은 어떤 주제의 이야기도 능수능란하게 받아주신다. 샵을 운영하다 보면 피부관리 능력만큼 대화 능력도 중요하다고 한다. 말을 할 타이밍, 끊을 타이밍의 구별부터 대화 주제도 손님마다 다르다고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동네 돌아가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손님이었다.
한 번은 원장님에게 이 샵에 찾아오는 손님이 어떤 사람들인지 물어보았다. 원룸촌 안에 가게가 있다 보니 동네 밖에서 손님이 찾아오기는 쉽지 않을 테고, 원룸에 살면서 피부관리실에 다닐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원장님은 자신도 점포를 얻을 때 학생이 많은 동네라 고민했다는데, 막상 와보니 학생 손님도 있지만 집주인들이 그렇게 오더라고 한다. 그렇겠구나. 빌라가 많은 만큼 빌라 주인도 많겠구나. 그들 말고는 근처 가게 사장님들이 많다고 한다. 나 같은 직장인도 있냐고 물었는데 비율상으로 적다고 하길래 직장인이 가장 여유가 없는 건지 이 원룸촌에 직장인이 없는 건지 아리송했다.
시간이 쌓이면서 하나씩 아는 가게가 늘기는 하지만 원룸촌 내에서 못가 본 가게가 아직도 많다. 여기 사장님은 어떠신지 저기 식당은 맛있는지. 내가 이 동네에 있는 동안 다 갈 수 있을까? 나는 아직 희망동 원룸촌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