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inking cloud Oct 23. 2021
[사찰에 도착한 뒤 휴대전화와 개인물품을 반납하고 입방 하면, 승려가 밖에서 자물쇠로 덜컥 문을 걸어 잠근다. 식사는 작은 문으로 넣어주는 것만 먹는다. 짜인 일정도 없고, 예불 시간도 따로 없다. 그야말로 독방에서 스스로 면벽 수행을 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스마트폰 중독에서 헤어나야 하고 외로움 하고도 싸워야 한다. 그렇게 며칠 세상과 단절했다가 방에서 나오면 다들 “진짜 나를 만났다”라고 고백한다.]
<중앙일보 기사 인용>
-
원룸 독거 생활을 하면 1박에 5만 원이나 하는 템플 스테이를 이용하지 않고도 독방 수행이 가능하다. 자발적 독수공방이다. 방 안에 앉아서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거나 허벅지를 찌르지 않는다. 대화를 할 사람이 없으니 저절로 묵언수행이 되고, 멍하게 면벽수행을 한다.
희망동 원룸촌에 처음 들어왔을 때, 친구한테 오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서 수다를 떠는 장면을 상상했다. 실제로 옆방의 학생들은 그렇게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 상상을 실행할 마음을 먹지 않았다. 방이 좁기 때문이다.
혼자 있어도 답답한데 무슨 두 사람씩이나. 좁은 곳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친구에게 그런 불상사를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게도 원룸은 오로지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공간이다.
원룸이라도 문은 많다. 창문, 화장실 문, 화장실 창문, 부엌으로 가는 중문, 현관 중문, 현관문까지 방하나에 그렇게 많은 문이 딸려있다. 문은 많은데 드나드는 사람은 나뿐이다. 출근한다고 현관문을 열면서, 나는 방에 대고 말한다. ‘다녀오겠습니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신발을 벗어던지며 말한다. ‘아 오늘도 xx 힘들었네’.
가끔 그래 다녀오라거나, 오늘도 수고했다는 말이 들려오는 듯할 때가 있다. 방이 대답해 준 것이면 좋겠지만 내 마음이 우려낸 말이다. 나는 방에게 말을 걸지만 방은 메아리가 없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말이 있는데 원룸은 특성상 그 정도가 더 적나라하다. 숨길 데 없이 한눈에 다 들어오니까. 지저분하면 지저분한 대로 깨끗하면 깨끗한 대로 그 사람이 보인다. 이부자리는 깨끗한데 반대편 책상은 난장판이라거나, 욕실은 깨끗한데 씽크대는 더러운 경우도 있다. 같은 원룸이어도 빈틈없이 꽉 찬 사람이 있고, 비교적 여유 공간이 있는 사람이 있다. 내 방에 사람을 데려오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다.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는 내가 편안하지 않다.
뭐해? 그냥. 집에 있어.라는 말을 전화통화상 할 때가 많다. 그냥 집에 있다는 건 일단 혼자 있다는 뜻이다.
좀비처럼,
혹은 시체처럼,
아니면 식물처럼.
대부분 이런 식이다.
그 사람이 부지런한가 아닌가는 혼자 있을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통해 조금 추측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사람이면 스스로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묵언수행인가. 그저 푹 퍼진 상태인가. 원룸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