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초점을 맞춘 하이엔드 오디오, 뱅앤올룹슨 이야기
가격표부터 살펴보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도 드실 것입니다. 하지만 기어코 ‘그 값을 한다’는 평을 얻어 내고 그것을 장만하는 꿈을 끄게 만드는 까닭은 ‘인간을 먼저 생각하고 인간의 감성에 다가설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디자인 철학과 ‘좋은 가전기기는 오래 사용해도 처음처럼 작동되어야 한다’고 믿는 품질에 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어디에도 없는 세계 최고의 오디오를 만들어내기 때문이겠죠. 세계적인 프리미엄 오디오의 대명사, 뱅앤올룹슨(Bang & Olufsen)을 소개합니다.
덴마크의 성공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피터 뱅(Peter Bang, 1900~1957)은 어린 시절부터 라디오에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관심은 소년 피터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 대학을 졸업한 1924년에는 엔지니어가 되어 6개월 동안 미국으로 건너가 라디오 공장에서 일을 했어요. 이후 덴마크로 돌아와서는 세 살 위의 친한 형인 스벤드 올룹슨(Svend Olufsen, 1897~1949)과 팀을 만들어 사업을 시작해보기로 하죠. 미국에서의 제조 경험이 있는 피터가 제품 개발을 주도하고 스벤드가 사업을 키우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둘의 패기에 피터의 부모님께선 다락방을 제품 개발과 실험에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해주셨죠. 마침내 배터리 방식으로 작동되던 라디오가 일반적이던 그 시대에 교류 전원으로 작동하는 라디오를 만드는데 성공, 1925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합니다.
▲ 피터 뱅과 스벤드 올룹슨의 모습
이후 사업은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뱅과 올룹슨의 회사는 영화 촬영 현장의 음향 녹음 시스템이나 서커스나 군용 차량의 지붕에 장착되는 확성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바클라이트라(Bakelite)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캐비닛을 갖춘 ‘베오릿39(Beolit39)’ 라디오도 이 시기에 선보였습니다.
▲ 뱅앤올룹슨의 첫 번째 라디오 베오릿(Beolit)
하지만 그들의 사업이 수익을 거두기까지는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엔 독일에 협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친 나치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아 모든 것이 불타버리는 크나큰 좌절도 맛보게 되죠. 그렇지만 뱅앤올룹슨이라는 이름은 굴하지 않고 1955년까지 전기면도기를 만들었고, 이후 1957년부터는 디자이너 이브 파비안센(Ib Fabiansen)의 영향으로 다양한 라디오와 텔레비전 세트 등을 개발했습니다.
‘뱅앤올룹슨’과 ‘프리미엄’이라는 표현 사이에 등호가 놓이는 까닭 중 하나는 브랜드의 오디오가 최고의 품질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죠. 물론 이처럼 후한 평가가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뱅앤올룹슨의 제품 개발실에는 ‘고문실’이라고 불리는 테스트실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된 프로토타입 제품을 대상으로, 표현 그대로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해요. 오븐에 넣어 구워보기도 하고, 육중한 납 덩어리로 제품이 깨지는지도 확인합니다. 리모컨이 있다면 20년 동안 각 버튼이 눌리는 횟수를 가정하여 그만큼 눌러보기도 하고요. 여기에 모의 운송 테스트와 진동 테스트까지 모두 거치며 합격점을 받아야 비로소 소비자 앞에 내놓는다고 하죠. 예쁜 무언가는 수많은 잔고장을 동반한다고 배워온 이들에게 뱅앤올룹슨은 언제나 ‘예외사항’이 됩니다.
뱅앤올룹슨의 제품은 미학적인 관점에서도 호평을 받아왔습니다. 일례로 1978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는 ‘뱅앤올룹슨 디자인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어요. 또 애플이 아이팟을 처음으로 공개했을 때에는 뱅앤올룹슨이 과거에 만들었던 무선전화기 ‘베어컴 6000(BeoCom 6000)’의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뱅앤올룹슨 특유의 디자인은 ‘정직한 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고민의 끝에 나온 기술적 결론이기도 합니다. 특유의 청량하게 뻗어나가는 소리를 구현하고자 노력한 끝에 알루미늄 소재의 가공에 있어서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게 된 회사도 뱅앤올룹슨이죠.
조직적으로는 디자이너들에게 독립적인 지위 부여를 통해 최신 산업디자인 경향을 잘 반영하는 특성도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다 창의적인 디자인을 위해 사내 디자이너를 고용하지 않고 외부의 디자이너에게 모든 의사결정권을 위임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연들이 모여 오늘날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부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이 뱅앤올룹슨의 오디오 제품이기도 합니다.
품질에 있어 뱅앤올룹슨은 필요 이상이라 할 정도로 깐깐한 태도를 견지했습니다만 사업의 전략만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비싼 가격으로 부유층 ‘어르신’들이 집안에 들이는 오디오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스마트폰을 갖게 된 사람들이 더 이상 MP3와 같은 포터블 오디오를 원하지 않게 되자 가정용 오디오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사업의 영역을 확장하게 됩니다.
그 첫 번째가 차량용 오디오 시스템입니다. 2003년 아우디(Audi)와 협정을 맺고 2005년부터 1000와트 증폭기인 베오랩5(Beolab5)를 기반으로 한 사운드 시스템을 아우디의 기함인 A8에 탑재했죠. 시스템을 켤 때 대시보드 위로 올라오는 모터 구동식 트위터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후 아우디는 물론 애스턴마틴이나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의 프리미엄 차량에 사운드 시스템을 공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 제조사인 HP와도 손을 잡았습니다. 앞서 파트너십 관계에 있던 비츠 일렉트로닉스가 애플에 인수되며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했던 HP가 뱅앤올룹슨과 손을 잡은 사건으로, 2015년의 일이었습니다. 그 덕에 현재 에디터가 애정 하며 사용 중인 노트북에는 뱅앤올룹슨의 브랜딩도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유튜브로 공연 실황을 볼 때마다 감탄하는 중입니다.
또 다른 신 사업영역이 바로 포터블 스피커와 헤드폰입니다. ‘베오플레이(B&O Play)’라는 세컨드 브랜드를 내고 그리 부유하지 않은 젊은 층들도 충분히 수용 가능한 가격대의 휴대용 스피커와 헤드폰, 그리고 이어폰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감각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선보이기도 해 새로운 고객층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무선 이어폰이 유행하기 전 뱅앤올룹슨의 이어폰 A8이 크게 히트하기도 했죠.
보통 브랜드가 대중화 전략을 시작하면 브랜드 네이밍의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고들 하죠. 하지만 뱅앤올룹슨은 폭넓은 대중을 향한 제품들을 선보임에도 변함없이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고집스러운 품질과 센세이셔널한 디자인 기조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요?
▲ 한국 진출 20주년을 기념 뱅앤올룹슨의 스피커
이처럼 인간을 향해 최고의 소리를 선사하는, ‘프리미엄’이라는 표현이 오롯이 어울리는 뱅앤올룹슨의 제품을 롯데 프리미엄에서 만나보세요. 아래의 링크가 당신을 전율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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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류한우
포토그래퍼 : 민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