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한밤중의 N잡선언

by 김과장

"아 미치겠네, 열받아서 잠이 안 와."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2시,

올해로 8년 차 직장인이 되는 김 과장은

오늘의 컨디션을 위해 얼른 잠들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최근 새로 부임한 박 부장과의 끔찍한 여러 에피소드로 인해 오랜만에 아드레날린 풀충전,

망가진 직장생활을 복기하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중이다.


"월급 루팡하려고 대놓고 업무 떠넘기는 것도, 책임 안 지려고 이 악물고 외면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팀장이 출장 가라고 오더까지 했는데 뒤로 불러내서 집에서 멀어서 못 가겠다고 나보고 가라는 게 말이나 돼?

의사 결정도 내가 해, 온갖 관계자 대응도 내가 해, 실무도 내가 해, 물어보면 아는 것도 없어.

그럴 거면 대리 월급 받던가 대체 부장 직함은 왜 달고 있어?

그래놓고 막상 부장이랍시고 나랑 연봉이 몇 천씩이나 차이 나는 게 말이나 돼?

그럴 거면 여기 오면서 연봉 테이블 엄청 뛰었다고 자랑이나 하질 말던가, 진짜 제정신이야?"


바야흐로 오밤중에 '을지로 민희진'의 탄생이었다.


민희진의 행보가 이해되진 않지만

적어도 그녀가 기자회견에서 털어놓았던 직장 내 에피소드에 대해선

아마 월급 받는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공감 가는 바가 있을 것이다.

대체 그 누가 기업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곳이라 했는가.

조직의 생태란 언제나 그렇듯 99%의 비이성과 무논리를

1%의 조악한 반쪽짜리 명분으로 가려놓은 것뿐이다.


안 그래도 최근 이직을 하고자 지원한 회사들에게서

무려 '서류 탈락'을 연속으로 통보받아 우울의 극치를 달리고 있던 와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대급 월급 루팡 박 부장까지 만나버린 김 과장은

한참 속 끓어오르는 생각 끝에 결국 잠들기를 포기하고

이불 매트 바로 옆 간이책상에 몇 년 전 스타벅스 프리퀀시로 받은 캠핑 랜턴을 딸깍 킨 다음

이윽고 홀린 듯이 평생 쓰지도 않던 당근 어플을 깔고 동네 인근 알바 공고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금 회상해 보면 그 당시 왜 갑자기 당근을 다운로드하였는지 이상하긴 한데,

평소 N잡, 파이프라인 만들겠단 얘기를

직장인 3대 허언(퇴사/유튜브/카페 창업)과 더불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변 사람들에게 읊조리기도 했고

회사에서 벗어나 겨우 숨 돌릴 수 있는 주말이 돼서도 상사스트레스에 잠 못 들고 있는 이 상황이 갑갑해서

홧김에 실행에 옮긴 게 아닐까 싶다.


[필터 걸기]

-금, 토 마감 알바

-서빙 / 카페


위와 같이 필터를 걸고 나니 몇 개 뜨진 않았다.

주로 선술집 서빙 알바, BAR(유흥주점 말고) 파트타임, 카페 마감 등이 검색됐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근무 시간이 새벽에 끝나는 곳들이 많고,

집에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 이격된 곳들이 많아

교통비를 아끼면서 집으로 오자니 여러모로 애매한 곳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중 눈에 띈 단 한 곳,

집에서 5분 거리 캐주얼 다이닝 마감 알바가 있어 럭키를 외치며

공고를 보는 그 즉시 바로 지원 신청을 했다.


「당근에서 알바 공고 보고 금토 마감 알바 지원드립니다.

현재 직장인이지만 성실하게 근무할 수 있습니다.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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