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생각

연공(蓮空)

by 이신우

연공(蓮空)


어릴 때 나는 절에서 수계를 받았다. 그때 받은 법명이 연공이었다. 연꽃 연(蓮), 빌 공(空).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 건 한참이 지난 뒤의 일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꽃을 피운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서 깨달음을 말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버텨낸 자리에서도 맑음을 잃지 않는 태도로 읽힌다.


공(空)은 비어 있음이다.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붙잡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줄 아는 마음이다. 성과와 평가, 비교,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과한 기대까지도.


나는 늘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왔다. 승부의 세계에 있었고, 매주 결과로 평가받는 자리에서 사람과 말, 그리고 나 자신을 동시에 관리하며 지내왔다. 비워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삶은 늘 채우기보다 덜어내는 쪽에 가까웠다. 더 빨리 가기보다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멈추는 법을 배웠고, 무언가를 증명하기보다는 오늘을 무사히 지나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연공이라는 법명은 나에게 어떤 목표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방향을 건넨다. 진흙 같은 현실을 피하지 말 것, 그러나 그 안에 머무르지 말 것. 꽃을 피우되, 그 꽃에 스스로 묶이지 말 것.


아마 나는 평생 완전히 비워지지는 못할 것이다. 욕심도 있고 흔들림도 있고, 때로는 마음이 먼저 앞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오는 자리, 다시 붙잡는 태도는 분명하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되 세상에 잠식되지 않는 마음. 무언가를 이뤄도 그것이 나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균형. 연공이라는 법명은 나를 설명하기보다,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의 방향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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