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에 갑자기 시야가 흐려진다.
눈물이 많은 것이 나는 참 싫다. 어느 날 내가 왜 이럴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늘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이 삶 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잣말로 조용히 부르기만 해도 울컥하는 이름 하나. 소리 내어 차마 부르지 못하는 그 이름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만 반복한다. 애써 떨리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써본다. 스카이베이…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을, 그리움을 이제는 꺼내 보려 한다.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봄 경주마 세일이 열리는 미국 플로리다주 오칼라의 4월은 한국의 6월만큼 덥다. 스카이베이와 나는 2017년 무더운 4월의 미국,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가 두 살이 되던 해이다. 스카이베이는 미국 출생이다.
두 살의 스카이베이는 사람으로 치면 여자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예쁜 암말 경주마였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에 새침하게 꼭 다문 입술. (얼굴은 살짝 깍쟁이 같은 느낌도) 달콤한 초콜릿과 고소한 향이 날 것만 같은 카페모카 색깔의 마체. 거기에다 쭉쭉 뻗은 근육질 네 다리와 빵빵한 사과 같은 엉덩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흑인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가 암말로 환생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눈에 반한 나는 스카이베이를 경매에서 낙찰받고 한국으로 먼저 돌아와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약 한 달 후 생애 첫 비행길에 올라 한국이라는 나라에 도착했고, 곧이어 서울경마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2018년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였다. 3세 어린 암말 스카이베이가 부산경마장에서 개최된 경남도지사배 대상경주에서 우승의 기쁨을 안겨줬다. 대상경주에서의 첫 우승이었다. 후속마와 5마신이라는 큰 차이로 여유 있게 우승을 했다. 그 순간, 이수홍 마주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스카이베이 마주인 그는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 마주님이다. 그는 만화 <슬램덩크> 속 키 큰 안 감독님을 연상시킨다. 180은 훌쩍 넘는 큰 키에 우람한 체구, 한 가닥 흐트러짐 없이 하얀 구름 같은 백발은 늘 올백으로 단정하셨다. 자신이 소유한 말이 경주를 뛰는 날이면 어김없이 경마장을 방문하셨다. 하지만 스카이베이가 출전하는 경남도지사배 경주는 직관하지 못하셨다. 몸이 편치 않으셔서 멀리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시기가 힘드셨으리라 짐작한다.
가장 먼저 마주님께 전화를 걸어 스카이베이의 우승 소식을 전해 드렸다. 전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마주님의 감정은 뚜렷하게 묘사할 만한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을 만큼 벅찬 것이었다. 기쁨, 감격, 감동, 감사, 행복… 이런 단어들을 다 합쳐 놓은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2018년 대상 경주 이후 2019년도에 스카이베이는 다섯 번의 경주를 더 뛰었다.
그러나 네 번째 경주부터 스카이베이는 이수홍 마주님이 아닌 그의 아내 황영금 마주님의 소유마로 경주를 뛰어야 했다. 2019년 9월. 이수홍 마주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셨기 때문이다. 이수홍 마주님은 스카이베이의 경상남도지사배 대상경주 우승이라는 벅찬 기억을 안고 그렇게 떠나셨다.
그 이후… 대견하게도 스카이베이는 꿋꿋하게 이수홍 마주님의 미망인 황영금 마주님 곁을 지켜주었고, 2019년과 2020년에 걸쳐 두 번의 우승을 더 안겨 드렸다. 그리고 겨울이 채 떠나기 싫은 듯 조금은 쌀쌀한 2021년 3월 봄날. 5세가 된 스카이베이는 잦은 운동기 질환으로 다리를 아파했다. 그동안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던 스카이베이에게 보답을 해야겠다는 한마음으로 마주님과 나는 그녀의 은퇴와 행복한 여생을 고민했다. 그렇게 스카이베이는 제주도의 한 목장에 엄마말로 제2의 마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6세였다.
경주마 은퇴 이후 경마장을 떠난 스카이베이는 제주도에 있는 한 경주마 목장으로 갔다. 목장 이름은 천지목장이다. 천지목장의 목장주는 나와 오랜 친분이 있는 남동생 같은 사람이다. 나에게 스카이베이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그 친구에게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스카이베이는 결혼을 했고 바로 이어서 임신 소식을 전해주었다. 지금도 여전히 핫한 머스킷맨이 바로 스카이베이 뱃속에 있던 새끼의 아빠 말이다. 스카이베이의 임신은 많은 경마 관계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스카이베이는 한국에서 아주 잘 뛰었던 경주마이고 또 태어날 망아지의 부마가 능력이 검증된 머스킷맨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자마가 잘 뛸 경주마가 될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마침내 스카이베이 옆에 작은 스카이베이가 나타났다. 엄마를 그대로 복사 붙이기라도 해 놓은 듯. 똑같았다. 게다가 수망아지였다. 그러나 기쁨과 벅찬 감동의 순간은 잠시였다. 스카이베이는 심하게 하혈을 하고 있었다. 말은 사람보다 한 달 더 태아를 품고 있다. 다시 말해 11개월이 평균 임신 기간이다. 그런데 스카이베이의 첫 망아지는 거의 12개월이 임박해서 태어났다. 이미 훌쩍 커버린 채 태어난 것이다. 그 결과 너무 큰 상처가 생겼고 수의사와 목장주는 최선을 다해 스카이베이를 치료하고 간호 했다. 다행히 응급상황은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상처가 다 아물기까지는 완벽한 치료와 시간이 필요했다. 목장주는 매일같이 스카이베이의 상처 부위를 소독해주고 정성을 다해서 돌봤다.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 가는 듯했다. 주니어 스카이베이는 엄마와 함께 초지로 나가 함께 뛰기도, 뒹굴기도 하고 배가 고플 때는 있는 힘껏 어미의 젖도 빨았다.
멀리 제주도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천지목장. 그곳의 푸른 초지는 제주도 앞바다 수평선과 맞닿은 듯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신나게 달리는 스카이베이 모자.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모든 이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모두가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행복했던 3개월이 쏜살같이 지나던 어느 날. 스카이베이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 채 밤새 끙끙 앓고 있었다. 온몸이 불덩이었다. 완벽히 아물지 못한 상처에 감염이 되었다고 했다. 강한 항생제를 견디지 못하고 더 큰 부작용이 오고야 말았다. 제엽염이었다. 말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이 끔찍한 소식은 전화를 통해 처음 전해 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스카이베이가 아프다는 소식은 그 어떤 소식보다 나를 무섭게 만들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밤새 두려움에 떨며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2023년 이후부터… 나와 스카이베이의 추억은 없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아픈 그녀의 곁을 지켜주지도, 마지막 그녀의 길을 함께하지도 못했다. 나는 겁쟁이였고, 지금도 여전히 말들을 보내주는 일이 서툴고 힘겹다.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친구였지만, 바보처럼 그저 소식을 전화 너머로 전해 듣고 며칠 동안 울기만 했다. 스카이베이의 자마를 보고 싶었지만, 스케이베이가 너무 보고싶을 것만 같아서 그 발걸음을 뗄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얼마 전인 2023년 4월, 천지목장에 다녀왔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드넓은 푸른 초지에는 1세 수망아지들이 여럿이 어우러져 뛰어놀고 있었다. 그중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스카이베이의 첫 아기이자 마지막 아기. 여전히 말 이력 사이트에는 ‘스카이베이자마’로 표기되어 있는 그녀의 둘도 없는 분신.
나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그 아이와 오랜만에 마주했다. 차마 “안녕? 잘 지냈어?” 이렇게 소리내어 인사는 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흐르는 눈물은 선글라스가 감추어 주었다. 들키지 않았다. 유별나게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는 그녀의 아들, 스카이베이자마. 목장주 얘기에 의하면 엄마와 너무 일찍 헤어져 어미의 정이 그리웠는지 사람을 엄마라 생각한다고 했다. 꼭 껴안아 주었다. 그 아이도 나만큼 스카이베이가 보고 싶을 것이다.
내년이면 이 아이도 2세가 된다. 서울경마장이 될지 부산경마장이 될지 모르지만, 어디가 됐든 경주마가 되어 나와 마주할 날이 오겠지. 어떤 새로운 마명을 갖게 될까? 또 그의 새 주인은 어떤 마주님일까? 그리고 경주마가 되어서는 어떻게 뛸까…. 그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신경이 쓰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어디 있든 전적으로 응원할 것이다. 그것은 스카이베이를 응원하는 것일 테니까. 또한 그녀의 바람이기도 할 테니까.
나는 이제 좀 더 용기를 내어 스카이베이를 다시 마주해보려고 한다.
“스카이베이! 이제는 너를 내 맘속에서 꺼낼게. 사진 속 너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는 글로 너에게 얘기할게. 너의 얘기는 귀대신 내 마음으로 더 잘 들을게.”
누군가를 만나고 정성을 쏟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아무리 반복해도 이 과정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더라. 아마도 영원히 익숙해지진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교사라는 직업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전히 나와 함께 교감하는 많은 말들이 있고, 또 내가 사랑했던 수많은 말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설사 그들이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없다 할지라도, 그들과의 소중한 추억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