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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Jul 03. 2023

나는 걷고 읽고 쓰면서 다시 태어났다

나는 술에 의존하며 20년을 넘게 살았다. 성인이 되고서부터 술을 더욱 즐겨 마시게 되었다.  

어릴 적 기억 속의 아버지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시고 밤늦게 들어오셨다. 난 그런 아버지 모습이 싫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난 후 아버지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는 나를 발견했다.      

기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체중조절이었다. 사실 내 체격 조건은 기수를 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다른 기수들에 비해 체중이 좀 많이 나가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기수의 생명에 있어 체중조절은 1순위로 중요하다. 그러나 난 항상 기준치에서 오버되었다. 그래서 늘 식단 조절을 해야 했고 하루 세 끼는커녕 하루 한 끼조차 먹지 않은 채 한여름에 땀복을 몇 겹 껴입고 뜨거운 모래경주로를 매일 달려야 했다. 20대 초반이면 얼마나 먹고 싶은 게 많은 때인가. 나는 하루하루 체중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럴수록 먹는 것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체중 조절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보니, 선배의 위험한 조언에 솔깃해지기도 했다.

“빈속에 소주 반 병 먹고 자면 아침에 체중이 빠져.”

원래 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습관처럼 매일 술을 마셨다. 빠르고 쉬운 방법으로 고통을 잊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주위 동료들과 함께 저녁식사 약속을 잡는 일도 내게는 연중행사 같이 느껴졌다. 적게 먹고 날씨와 상관없이 땀복을 겹겹이 입고 거기다 두꺼운 파카까지 껴입고 2시간가량 뛰어야 하는 것이 매일 지옥 같은 숙제였다. 뛰는 것은 운동이 아니라 그저 수분을 빼기 위한 행위일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은 기수로서의 생존을 위해서였다. 체중을 줄이고도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어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다. 핑계 아닌 핑계로 그저 술기운에 기절이라도 해서 잠이 드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술은 달콤한 마약 같았다. 체중조절로 힘든 나를 금방 잠으로 빠져들게도 만들고, 그날 일어난 나쁜 일들도 모두 잊게 만들어 주었다.     

기수생활을 하면서 체중조절도 힘들고 잦은 부상 때문에 빨리 조교사가 되고 싶은 바람이 간절했다. 조교사가 되면 체중 걱정은 안 해도 되고, 부상의 위험도 덜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반드시 조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서른이라는 이른 나이에, 운 좋게도 나는 조교사가 되었다.

조교사가 되기만 하면, 10년을 넘게 먹어오던 술도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오랜 습관이 되어버린 ‘매일 먹는 술’은 쉽게 조절되지 않았다. 오히려 조교사 생활을 하면서 체중 걱정도 덜하게 되고 편하게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다 보니 술자리도 더 잦아지고 먹는 양도 점점 더 늘어만 갔다.  

기수와는 다르게 조교사가 되고 나니 감독으로서 책임을 져야 할 범위가 넓어지고, 감내하고 감수해야 할 일 역시 점점 늘어났다. 평소 성격이 내성적이라 티를 내지 않지만 술을 먹으면 쌓였던 감정이나 평소 불만들이 폭발해 사소한 사고부터 큰 사고에 이르는 위험한 순간들도 많이 발생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우려했다. 심지어 나와 관계를 끊는 것이 서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인간관계에서마저 위기가 찾아왔다. 맞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돌이켜보니 10년이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신 것 같다. 중간중간 술을 끊어 보겠다는 다짐도 여러 번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스스로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는 술을 끊는 일을 포함해 다른 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본인을 믿지 못한다는 것.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기 확신 없이 어떻게 리더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난 어느 순간부터 술 보다는 나를 믿지 못하는 내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정말 술을 과감하게 끊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물리적인 힘을 빌어서라도.

예를 들면, 술자리에 사람들을 직접 태우고 약속 장소에 갔다가 술자리가 끝나면 그들을 목적지까지 바래다주고 귀가해야겠다는 방법으로 첫 시도를 해봤다. 성공적이었다. 식당에 있는 냉장고 속 시원한 소주와 맥주가 나를 미치게 유혹하는데도 그 유혹을 뿌리치고 첫 성공을 한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했다.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아 감정이 벅차올랐다. 그 이후에도 일부러라도 그런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매번 성공적이었다. 나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의 성공 경험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계속 노력하고 싶어졌다.

술을 끊는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역사적인 터닝포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을 먹지 않는 이 시간들은, 내가 바르게 맨 정신으로 일어설 수 있는 또 한 번의 인생의 기회와도 같다. 이 기회를 꼭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조교사라는 직업은 자주 내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최근에는 ‘조교사’라는 내 직업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조교사라는 직업의 본질은 좋다.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을 돌보고, 훈련하고 말과 사람이 함께 팀을 이뤄 희노애락을 같이 할 수 있는, 너무나 매력적인 직업이다. 그러나 성격상 사람을 대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나는 그동안 술로 도피 생활을 해왔다. 힘든 일이 있으면 그냥 술에 의존하고 다 잊고 싶어 했다. 만나기는 싫어도 사업적으로 만나야 하는 불편한 사람들은 술의 힘을 빌려 용기를 얻고 만난 적도 많았다.

더 이상은 이렇게 조교사 생활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떡해…. 지금 당장 조교사가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걸. 대안이 없으니 지금 이 현실에서 방법을 찾을 수밖에. 무엇보다 내가 아는 이신영은 적어도 일에 있어서 타협이 없고 할 수 있든 없든 맡은 건 끝까지 해보고야 마는 사람이다. 중도 포기란 그런 내 인생에선 없는 단어다.

그러다 보니 일로 인해 전화기를 한 순간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마방이 됐든 마주가 됐든, 늘 어떤 상황에든 대비할 준비가 된 사람이어야 했다. 이런 나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직업을 바꿀 수도 없었다. 대신, 더는 술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걱정과 불안 속에서 유독 스트레스를 잘 받는 나. 그런 유리멘탈을 가진 나에게 더 이상 술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변화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다시 한 번 괜찮은 이신우로, 더 나아가 조교사 이신우로 멋지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땀복이나 두꺼운 옷을 입고 체중 빼기 위한 고문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장 편안한 옷차림에 편안한 신발을 신고 뜨거운 모래 주로가 아닌 그냥 어디든 걸었다. 자유란 게 이런 것일까. 순간 자유를 만끽했다. 나에게 운동이란, 두껍게 옷을 입고 나가 땀을 비오듯 흘리지 않으면 문밖을 나가는 의미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이 틀렸다. 진정한 운동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 챙길 줄 아는 것이었다.

‘그동안 수 없이 뛰었으니 이제는 천천히 주위도 둘러보며 걸어도 돼.’

나 자신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신체활동이 아니었다.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걷다 보니 답답하고 복잡했던 마음과 머릿속의 생각들이 정리되면서 비울 것과 채울 것이 분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시간에 정리된 생각들을 잊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록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의 나는 기록을 하거나 메모, 글쓰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순간순간 메모나 기록은 했지만, 그것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꺼내 볼 수 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제대로 기록하고 잘 정리해두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걷기를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머리와 가슴 속에는 쓰고 싶은 이야기들로 가득한데 막상 글로 표현하려니 쉽지 않았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롯이 나를 위한 글쓰기이니 잘쓰든 못쓰든 일단 쓰고 정리해서 잘 저장해두기로 했다.      

그리고 책을 집어 들었다.

그전에도 책은 자주 읽었지만, 독서량을 더 늘렸다. 독서는 내가 직접 만날 수 없는 수많은 선 경험자나 스승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이나 경험담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독서는 나에게 지식과 지혜, 경험을 안겨주는 가장 가성비 좋은 행위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본업 이외의 시간에는 멍 때리거나 술을 마시거나 의미 없는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지루하게 보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술을 안 먹은 지도 3주가 지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남들은 고작 한 달 술 안 먹은 걸로 술을 끊었다고 하냐며 비웃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한 달은 1년, 아니, 그 이상과도 같은 시간이다. 20년 만에 처음 찾아온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 몸에게 술 대신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고 스트레스나 치솟는 화로 복잡해진 머릿속은 글로 다 옮겨 놓는다. 그렇게 편안하게 깨끗이 비워진 머리와 마음은 좋은 명상음악으로 채우고 깊은 숙면과 함께 건강한 내일을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나는 걷고, 읽고, 쓰면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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