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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Dec 18. 2023

감정도 기억상실을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

넷플릭스, 디즈니, 유튜브, 각종 동영상 플랫폼을 온탕냉탕 왔다 갔다 하듯 컴퓨터 마우스만 괴롭히다가 다시 한참 허공을 응시한다. 간식을 달라 졸라대며 '야옹'거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잠시 정막이 깨지면  어두운 동굴만은 피해야 하기에 모니터 빛이라도 쫓아 여기저기 어슬렁댄다. 검색창에 몰입감 높은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나 웃긴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노력도 해보지만 눈은 화면에, 정신은 지구 밖 별나라로 여행 중이다.


몸이 불편한 곳도 없고 잘 먹고, 잘 자고 평온한 듯 보이는 일상 같지만 무언가 결핍은 있다. 피가 모자라면 수혈이라도 받으면 되지만 정체 모를 이 공허함은 무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불치병이다. 기쁨이라는 감정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혹시 그게 이유일까?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거라고, 그게 기쁨이라고 위로라도 해야 하는 걸까.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해서 당장 살만해지지는 않는다. 단지 여기저기 방황하는 병든 내 영혼을 어떻게든 붙들고 살리고 싶어 매달리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매일 글 한 편을 써보자는 시도는 깊은 산속 절에 들어가 소원성취를 위한 100일 기도를 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라도 나를 지키고 싶어서.


이제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슬퍼하지 않기로 의지를 내는 나를 응원해 보기로 했다. 슬픔도 언젠가는 고갈되겠지. 자주 오락가락하는 약간의 의욕이나 기분 저하는 어느 정도 적응은 되었다. 그런 나를 예민해하지 않기로 했다.  


근래 들어 내 상태를 많이 걱정하는 친구가 책 한 권을 보내왔다. 제목은 '노인과 바다 따라 쓰기'라고 표지에 적혀있다.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글조차 쓰기 힘들 때는 필사를 해보라는 메시지와 함께 보내왔다.

어떤 방법이든 어떤 시도든 무얼 해서라도 나를 되돌려 놓고 싶다. 무엇보다 나를 염려하며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는 그들에게 어느 날 환하게 웃는 내 얼굴을 꼭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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