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월 어느 날.. 2월 27일로 기억한다. 처음 경마장을 왔을 때 난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추운 겨울 날씨에 어느 모델보다도 멋있는 몸매와 근육을 드러낸 경주마와 그 위의 빛나는 멋진 기수들.. 내 생에 처음 보는 그 광경. 경주로에서 경주마를 타고 질주하는 기수들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지금은 경주마 기수 생활을 은퇴하고 경주마 레이싱팀을 운영하는 경주마 조교사이다. 2년간의 기수 후보생 시절을 보내고 10년간의 기수 생활을 하고 어느덧 조교사 경력도 만 13년이 넘었다. 그동안 어떻게 보내왔을까..? 내가 겪어온 일들 같지 않은 생각이 들 때도 많다.. 내가 경주마를 타고 경주로를 달리는 기수였다고? 나 역시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기수 생활을 하면서 해외 원정 경주도 나가고 큰 대상경주에도 출전을 했다. 우승의 기쁜 순간들도 많았지만 작고 큰 부상 때문에 생사를 오갔던 일, 체중조절로 신경이 날카롭고 예민한 하루하루를 보낸 기억이 우선 떠오른다. 그리고 외로움.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을 해있을 때면 가족들이 멀리 있어서 나를 병간호를 해 줄 수 있는 처지가 못 되는 가족들에게 늘 서운함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몸살이 걸려도 심한 감기를 앓아도 혼자 척척 알아서 셀프간호를 잘한다. 좋았던 기억보다도 아팠던 기억이 많았나 보다.. 그래서 아주 오래된, 어쩌면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그때의 기억을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뒤돌아보면 영광스러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다시 기수를 하라고 한다면 절대 하고 싶지는 않다.
2011년에는 선수 생활은 접고 감독 생활을 하면서 우선 부상과 체중조절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서 마냥 기뻤다. 그리고 경주마 수급을 위해 제주도 목장도 열심히 다니며 수많은 경주마를 만나러 다녔고 마주들에게도 나에 대한 어필을 열심히 했다. 조교사를 시작하고 코로나가 터지기까지는 성적이 늘 중상위권은 유지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잠시 경마가 중단된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의 나의 일탈이 화근이 되었던 걸까. 경마도 멈추고 당시에는 직업에 대한 미래도 불투명하고 불안했다. 그래서 부업을 고민하던 중 친구의 권유로 브런치카페를 시작했다. 카페를 오픈하는 것부터 운영하는 것까지 늘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과 함께여서 든든했고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카페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나의 예민함으로 그 사람은 힘들어했다. 그 기간 동안 지치고 나에 대한 실망이 컸으리라 짐작한다. 지금도 그 시기를 내 인생에서 삭제시키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얻게 된 나의 불안과 우울증. 지난 몇 년간의 일들로 인한 후유증으로 심각한 불안과 우울을 겪고 있다. 감기처럼 약 먹고 며칠 푹 쉬면 낫는 병이면 좋겠지만 내가 앓고 있는 이 병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듯하다. 원래의 활발하고 의욕이 넘치는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의지는 내 보지만 막상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자꾸 주저 않게 된다. 매일매일이 반복이다. 저녁마다 내일은 오늘 같이 보내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잠에 들어보지만 다시 맞이한 새벽은 여전히 캄캄할 뿐 나에게 길을 안내하지 않는다.
내 일을 사랑하고 경주마라는 동물을 사랑하고 조교사라는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던 나를 다시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