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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Jan 13. 2024

누구나 가슴에 작은 구멍 하나쯤은 있다.

나의 주중 감정 사이클을 살펴보니 대부분 롤러코스트를 타듯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주말에 증상이 뚜렷하게 더 나쁨을 확인했다. 아마도 주말에 나의 업무 즉, 경기 결과에 대한 평가를 받다 보니 내면의 우울감에 외적인 요인들이 더해져 감정이 증폭되는 듯하다.


오늘 준비한 경주가 세 개가 있었다. 두 개의 경주는 나름 좋은 성적을 기대할 만한 말이었다. 우승은 못하더라도 2등, 3등 정도는 해주길 바랐는데 하위권 성적을 기록했다. 경주 결과를 보고는 대포알이 가슴을 관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커다랗게 뚫린 구멍에는 통증보다 차디찬 온갖 불쾌한 감정들이 순식간에 들어앉아구멍을 메웠다. 그리고는 그들이 좋아하는 동굴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캔들워머를 켰다. 희미한 불빛만 남겨놓고 눈을 감았다. 침묵 속에서 울리는 카톡 알림. 스마트폰은 직업 특성상 내 몸의 일부 같은 것이기에 특히나 주말에 주 업무를 하는 나는 전화나 메시지는 바로바로 확인하는 강박이 있다. 다행히 클라이언트들의 컴플레인이 아니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카톡프로필에 직장동료 생일표시가 떠 있었다. 오전에 온라인 선물하기 서비스로 선물을 보냈는데 안부인사와 감사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제 내 방을 방문 한 동료는 2년간 지방 근무를 하고 돌아와서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재회를 한 케이스라면 이 분은 그 반대였다. 12월 말 즈음에도 본인이 지방 발령을 받을 거라고는 1%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12월 마지막 날에 통보를 받고 지방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따로 연락을 먼저 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분도 워낙 섬세하고 역시 나와 같은 질병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을 알기에 더더욱 망설여졌다. 오늘 그분의 생일 알림 표시를 확인 못했더라면 아마도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캔들과 캔들워머를 선물로 보냈다. 짧은 메시지와 함께.

"피디님 마음 제가 진심 공감해요.

저도 동굴 속을 나가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쉽지 않네요. 그렇지만 의지라도 있으니 다행인 거죠. 한 때는 다 놔버리고 싶은 시기도 있었는데 그런 단계는 넘겼으니까요.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하는데 꼭 시간만은 답이 아닌 것 같아요. 어쩌면 이미 답을 아는데도 그 답이 틀렸을까 봐, 혹은 시도하기가 아직은 두려운 것 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맞는 길인지 아닌지는 가 봐야 아는 거니까요.

요즘은 그냥 딴 세상에 잠깐 나와있다 생각하고 쉬고는 있는데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는 것 또한 감수해야 하니.. 늘 불편한 화살이 가슴에 박혀 있는 듯해요.

아시다시피 저도 지난해 생일이 참 많이 힘들었어요. 생일이 기뻐야 하는데 아픈 기억이 있네요. 많이 힘드시죠?

누군가에게 축하와 함께 선물을 받았을 때만큼은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잠깐 1초의 미소는 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단한 선물은 아니지만 당신에게 1초의 미소와 행복을 선물합니다."


여전히 힘들고 동굴 속에서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메시지가 진심 위로가 된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진심으로 위로가 된다는 그 답이 감사했다.


'내 주변에는 왜 이리 우울한 사람들이 많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나 가슴에 작든 크든 구멍하나쯤은 있다고 생각한다. 드러내지 않거나 보이지 않을 뿐. 내 주변에 유독 우울한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픈 구석을 드러내도 진심으로 위로받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이라는 믿음이 있어서가 아닐까..


난 오늘도 역시 글을 쓰면서 충분히 위로받았다. 그리고 누군가 전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가 뻥 뚫린 차디찬 구멍에 작지만 따뜻한 한숨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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