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단식과 하루 만보 걷기에 대한 다짐
지난 주말, 남편이랑 아파트 단지 주위를 두어 바퀴 돌며 가벼운 벚꽃 놀이를 즐겼다. 파란 하늘 아래 하얗게 핀 벚꽃이 어김없이 너무 예뻐서 휴대폰 카메라로 이런저런 흔적을 남겼다. 집에 도착해서 서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주며 공유하는데 헉! 벚꽃은 내가 본 그 벚꽃이 맞건만 그 밑에 서있는 이 사람은 누구냐? 이게 도대체 누구의 뒷모습이더냐! 눈이 휘둥그레져서 사진을 확대해봤다.
"자기는 사진을 좀 잘 찍으라니까요."
"00야, 원래 생긴 대로 나오는 거야."
연애 때부터 남편이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했던 말을 이번에도 반복했지만 이전의 장난스러운 마음과는 무게감이 달랐다. 눈을 비비고 내 뒷모습을 다시 봤다. 남색 코트를 입은 내 뒷모습이 기억 속의 그것보다 많이 커져있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큰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 몸무게는 안 재어본 지 오래됐다. 필라테스를 안 간 지 두 달이 넘어간다. 재택근무를 한답시고 매일 추리닝만 입고, 다용도실 손잡이에 큰 쇼핑백을 걸어놓고 힘들 때마다 그 안에 달다구리 과자를 꺼내 먹는 걸 소소한 행복이라 여기며 지내왔던 최근의 일상이 떠올랐다. 집에만 있다가 확 찐 자가 된다더니.
일요일부터 하루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고무줄 바지를 벗고 작년 가을에 산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편하게 넉넉한 사이즈로 산 바지가 겨우 채워졌다. 왜 내 옷은 다 갈수록 작아지기만 하는 것인가! 습관적으로 천천히 걷다가 숨이 찰 정도로 빨리 걸어야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 속도를 냈다. 힘들지 않게, 돈 들지 않게, 아프지 않게 날씬해지고 싶다. 도둑놈 심보라고 해도. 몸이 가벼워졌다는 그 상쾌함을 언제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이런 바람을 솔직히 말하며 걷고 있는데 남편이 돌직구를 던졌다.(우리는 원래 서로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ㅎㅎ)
"자기는 아마 살 빼기 힘들 거예요."
"왜요?" -_-++
"힘든 운동은 안 하려고 하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남편은 집에서 종종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스쿼트를 한다. 작년 몇 달 동안 꾸준히 하더니 정말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스쿼트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면서 내게도 권하지만, 나에게 스쿼트란 너무나 어려운 것. 다리도 잘 안 굽혀지고 자세도 이상한 것 같아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플랭크 같은 건 정신력의 문제라는데 그것도 오래 못 버티는 걸 보면, 어쩌면 속마음은 다이어트가 그렇게까지 간절하지 않은 걸까. 아니, 여태까지 턱걸이도 1초 이상 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걸 정신력의 문제라고만 보기에는 내 정신 상태에 너무 미안한데.
어쨌든 다이어트의 방법 하나로 하루 만보 걷기를 실천해보려고 한다. 걷기가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다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캐시도 쌓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어제저녁, 집 앞에 있는 공원을 혼자 열심히 돌고 있는데 갑자기 서러워졌다. 공원 건너편에 서브웨이가 반짝거린다. 바로 앞에는 아이스크림 할인매장이 있다. 휴, 서브웨이가 목적지이고 공원이 방해 요소가 되는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일까. 피자스쿨을 한 판씩 먹고도 활짝 웃을 수 있었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하루 만보 걷기와 병행하려고 하는 다이어트 방법은 바로 16:8 간헐적 단식. 재택근무를 하는 요 며칠 동안 저녁 5시부터 아침 9시까지 먹지 않는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냈지만, 이제 정상출근을 해야 하는데 시간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8시간을 굶고 16시간을 먹는 일정이라면 어떻게든 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간헐적 단식을 한다는 내 메시지에 엄마는 간헐적 대식을 하는 게 아니냐고 되물으셨다. 간헐적 대식이라니, 이런. 어쨌든 출근 일정에 맞추어 16:8의 시간표를 잘 짜 봐야겠다.
20대 시절에 마인드 컨트롤을 성공적으로 해낸 탓일까. 나는 감정에 기복이 크지 않은 편이다. 거기에 나보다 훨씬 더 둥글둥글한 성격을 가진 남편과 살다 보니 감정의 최고점과 최저점의 높이 차이는 점점 더 작아지는 것 같다. 이렇게 변해버린 성격도 티셔츠 위로 스며 나오는 살의 물결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을 거라 생각한다.
남편은 어제 퇴근길에 라디오에서 들은 커피소년의 '행복의 주문' 가사를 바꿔서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디톡스 차를 마시다가 한바탕 웃어버리고는 이 살의 물결을 만들어낸 범인을 남편으로 정했다. 그렇게 주문을 외워대니 내가 살이 안 찌고 배기겠냐고. 아니,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는데 내가 이렇게 웃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일단 간헐적 단식과 하루 만보 걷기라도 반드시 해보는 걸로 굳게 다짐해본다. 다음 달에는 이게 도대체 누구의 뒷모습인데 이렇게 날씬하지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