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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Apr 01. 2020

이게 누구의 뒷모습이더냐!

간헐적 단식과 하루 만보 걷기에 대한 다짐

 지난 주말, 남편이랑 아파트 단지 주위를 두어 바퀴 돌며 가벼운 벚꽃 놀이를 즐겼다. 파란 하늘 아래 하얗게 핀 벚꽃이 어김없이 너무 예뻐서 휴대폰 카메라로 이런저런 흔적을 남겼다. 집에 도착해서 서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주며 공유하는데 헉! 벚꽃은 내가 본 그 벚꽃이 맞건만 그 밑에 서있는 이 사람은 누구냐? 이게 도대체 누구의 뒷모습이더냐! 눈이 휘둥그레져서 사진을 확대해봤다. 

 

 "자기는 사진을 좀 잘 찍으라니까요."

 "00야, 원래 생긴 대로 나오는 거야."


 연애 때부터 남편이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했던 말을 이번에도 반복했지만 이전의 장난스러운 마음과는 무게감이 달랐다. 눈을 비비고 내 뒷모습을 다시 봤다. 남색 코트를 입은 내 뒷모습이 기억 속의 그것보다 많이 커져있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큰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 몸무게는 안 재어본 지 오래됐다. 필라테스를 안 간 지 두 달이 넘어간다. 재택근무를 한답시고 매일 추리닝만 입고, 다용도실 손잡이에 큰 쇼핑백을 걸어놓고 힘들 때마다 그 안에 달다구리 과자를 꺼내 먹는 걸 소소한 행복이라 여기며 지내왔던 최근의 일상이 떠올랐다. 집에만 있다가 확 찐 자가 된다더니. 




 일요일부터 하루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고무줄 바지를 벗고 작년 가을에 산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편하게 넉넉한 사이즈로 산 바지가 겨우 채워졌다. 왜 내 옷은 다 갈수록 작아지기만 하는 것인가! 습관적으로 천천히 걷다가 숨이 찰 정도로 빨리 걸어야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 속도를 냈다. 힘들지 않게, 돈 들지 않게, 아프지 않게 날씬해지고 싶다. 도둑놈 심보라고 해도. 몸이 가벼워졌다는 그 상쾌함을 언제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이런 바람을 솔직히 말하며 걷고 있는데 남편이 돌직구를 던졌다.(우리는 원래 서로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ㅎㅎ)


 "자기는 아마 살 빼기 힘들 거예요."

 "왜요?" -_-++

 "힘든 운동은 안 하려고 하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남편은 집에서 종종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스쿼트를 한다. 작년 몇 달 동안 꾸준히 하더니 정말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스쿼트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면서 내게도 권하지만, 나에게 스쿼트란 너무나 어려운 것. 다리도 잘 안 굽혀지고 자세도 이상한 것 같아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플랭크 같은 건 정신력의 문제라는데 그것도 오래 못 버티는 걸 보면, 어쩌면 속마음은 다이어트가 그렇게까지 간절하지 않은 걸까. 아니, 여태까지 턱걸이도 1초 이상 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걸 정신력의 문제라고만 보기에는 내 정신 상태에 너무 미안한데. 


 어쨌든 다이어트의 방법 하나로 하루 만보 걷기를 실천해보려고 한다. 걷기가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다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캐시도 쌓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어제저녁, 집 앞에 있는 공원을 혼자 열심히 돌고 있는데 갑자기 서러워졌다. 공원 건너편에 서브웨이가 반짝거린다. 바로 앞에는 아이스크림 할인매장이 있다. 휴, 서브웨이가 목적지이고 공원이 방해 요소가 되는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일까. 피자스쿨을 한 판씩 먹고도 활짝 웃을 수 있었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하루 만보 걷기와 병행하려고 하는 다이어트 방법은 바로 16:8 간헐적 단식. 재택근무를 하는 요 며칠 동안 저녁 5시부터 아침 9시까지 먹지 않는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냈지만, 이제 정상출근을 해야 하는데 시간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8시간을 굶고 16시간을 먹는 일정이라면 어떻게든 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간헐적 단식을 한다는 내 메시지에 엄마는 간헐적 대식을 하는 게 아니냐고 되물으셨다. 간헐적 대식이라니, 이런. 어쨌든 출근 일정에 맞추어 16:8의 시간표를 잘 짜 봐야겠다. 




 20대 시절에 마인드 컨트롤을 성공적으로 해낸 탓일까. 나는 감정에 기복이 크지 않은 편이다. 거기에 나보다 훨씬 더 둥글둥글한 성격을 가진 남편과 살다 보니 감정의 최고점과 최저점의 높이 차이는 점점 더 작아지는 것 같다. 이렇게 변해버린 성격도 티셔츠 위로 스며 나오는 살의 물결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을 거라 생각한다.


 남편은 어제 퇴근길에 라디오에서 들은 커피소년의 '행복의 주문' 가사를 바꿔서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뚱뚱해져라 뚱뚱해져라 뚱뚱해져라 뚱뚱해져라"


 디톡스 차를 마시다가 한바탕 웃어버리고는 이 살의 물결을 만들어낸 범인을 남편으로 정했다. 그렇게 주문을 외워대니 내가 살이 안 찌고 배기겠냐고. 아니,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는데 내가 이렇게 웃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일단 간헐적 단식과 하루 만보 걷기라도 반드시 해보는 걸로 굳게 다짐해본다. 다음 달에는 이게 도대체 누구의 뒷모습인데 이렇게 날씬하지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날씬한 뒷모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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