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는 아무나 한다
나이부터 시작해서 직업, 집안을 따져보다가 직접 만나면 얼굴이랑 몸매,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 다 점수 매기는 것 같아 불편하고 불쾌해. 그 왜 평가하고 있는 듯한 눈빛 있잖아. 항목별로 열심히 점수를 입력하고 있겠지.
목적이 분명하다고는 하지만 이젠 그런 자리 정말 지친다. 애프터가 없으면 내가 점수를 부족하게 받은 거니까 자격 미달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30대의 연애라는 걸 따로 해본 적은 없지만 여러 지인들의 말로부터 그 느낌이 분명히 전해졌다. 생물학적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사람들의 인위적인 만남, 내 주위에는 상대방의 평가 태도에 불쾌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가라는 단어를 이런 데 사용해도 되나도 싶지만 그 단어가 포함된 문맥 자체가 너무 자연스러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지, 우리가 학생도 아니고 그 사람이 무슨 선생님도 아닌데 감히 누가 누구를 평가해! 그러고 이어지는 대화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평가 기준이 한 가지씩 언급되며 평가자라는 이유로 불쾌함을 선사했던 그 상대가 대상자로 도마 위에 오른다. 총점은 이미 마음속에 정해져 있는데 세부 항목별 점수를 더해보며 검토해보는 것 같기도 하고, 세부 기준에 따른 점수를 되짚어보며 총점을 계산해 보는 과정 같기도 하다. 으음? 평가는 우리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평가 3 (評價)
[명사]
1. 물건값을 헤아려 매김. 또는 그 값.
2. 사물의 가치나 수준 따위를 평함. 또는 그 가치나 수준.
최근에 외부 글짓기 대회 심사위원 일을 하게 되어 며칠 동안 머리를 쥐어뜯었다. 사실 글짓기 대회 심사는 그동안 여러 번 해봤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내용이 진솔하게 담긴 글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너무 어려웠다. 생각보다 아이들의 글은 매우 훌륭했다. 이렇게 열심히 참여한 아이들에게 모두 작은 상이라도 하나씩 쥐어주며 격려해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수상 인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 그 안에서도 글의 무게를 재어 등수를 매겨야만 한다니. 글의 무게를 재는 일, 내가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해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직업은 이런 일을 하는 데 공인된 자격이 된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내 글도 한 편 제대로 써내지 못하는데, 그런 내가 평가는 무슨 개뿔.
열심히 써낸 글이 상을 받으면 자신감도 얻고 글쓰기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엔. 학창 시절부터,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는 늘 후자였기에 또박또박한 글씨가 빽빽한 원고를 기준에 따라 감점하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크게 뜨고 객관적 근거를 찾아 점수를 매기는 일뿐이었다. 동점자가 나오지 않도록 아이들이 쓴 글을 줄 세웠다. 내가 세운 줄에 따라 어떤 아이는 웃고 어떤 아이는 실망할 것이다. 내가 제시한 객관적 근거가 진정한 객관성을 가지기는 하는 걸까. 이러니까 국어가 어렵다.
내 이름 옆에 숱하게 입력되었던 지필평가, 수행평가 점수가 이제 더 이상은 추가되지 않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수만 가지 평가 항목의 점수가 여전히 따라다닌다. 이 점수는 앞에서 혹은 뒤에서 전해 지거나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꼬리표처럼 붙어있기도 한다. 이렇게 점수 매기지 말고 좀 따뜻한 시선으로만 바라봐주면 안 되겠니 하는 바람은 사실 나부터도 실행하기 어렵다. 언제나 평가하는 일은 어렵고 평가받는 일은 불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