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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Oct 19. 2020

나의 주말은 어디로 흘러간 걸까

오늘은 월요일 

 휴, 이제 겨우 월요일 지났다!


 퇴근길 교문을 나서자마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오늘 올해 처음으로 전교생이 등교했다. 10월 중순에서야 이런 역사적인 날을 마주하다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다. 몇 개 학년이 등교하든 내가 들어가는 반의 개수는 차이가 없는데 왠지 모르게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 겨우 월요일 지났다. 안타깝지만 화수목금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날이 서늘해지면서 아침에 몸을 일으키기 점점 더 힘들어진다. 정신이 들자마자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생각해본다. 체감 요일은 늘 목금인데 실상은 월화수이다. 10대 시절엔 잠이 정말 많아서 지각하기 직전에 아빠가 찬물을 얼굴에 부을 정도였는데 요즘은 남편이 한 번만 부르면 깨어난다.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서, 또 알게 모르게 학생으로서의 책임감보다는 지금의 어깨가 훨씬 더 무겁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이유를 찾아본다. 


 주 5일 근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주말을 기다릴 수 있는 이 상황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마음을 다잡는다. 실제로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땐 격주로 토요일 등교였는데 아이들에게 안내를 해줘야 하는 입장에서도 굉장히 헷갈렸다. 놀토인 줄 알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도 간간이 있었다.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엔 토요일에도 당연히 학교에 가야 했으니 그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일주일에 자그마치 이틀을 쉴 수 있단 말이다.




 월화수목금을 지나며 주말 동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먹고 싶은 것들을 떠올려본다. 늦잠 자기, 낮잠 자기, 산책 가기 정도가 하고 싶은 일이었고 마트 가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다음 주 수업 준비, 스터디 과제, 대학원 과제가 해야 할 일이었다. 습관적으로 틈틈이 맛집을 검색해 보지만 몇 달째 외식을 가지 못하고 있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전면 등교 중지'가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실내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편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토요일이 되었고 알람 없이 8시쯤 잠에서 깼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먹으며 점심으로는 무엇을 먹을지 생각했다. 소파에 앉아 '사랑과 전쟁'(나의 주말을 함께하는 첫 번째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며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평가한다. 텔레비전 옆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 사랑과 전쟁 주인공과 대조되는 나의 장점을 장난스럽게 몇 마디 늘어놓는다. 그 후,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두 시가 넘으면 생체시계가 꿈의 세계로 나를 이끈다. 컴퓨터 켜서 수업 준비도 하고 과제도 해야 하는데... 머릿속에 맴도는 걱정스러운 말들도 눈꺼풀과 함께 감겨버린다. 느지막이 일어나 마트에 다녀와서 저녁을 차려먹고 뉴스를 보다 보니 밤이다. 이런, 얼른 씻고 '그것이 알고 싶다'(나의 주말을 함께하는 두 번째 프로그램)를 봐야 할 시간이다. 창밖에 가득해진 어둠을 보니 오늘도 이렇게 지나갔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아쉽다. 


 오늘은 어제처럼 보내지 않을 거란 다짐을 하며 침대에서 나온다. 집안일을 얼른 끝내고 산책도 가고 과제도 해야겠다며 아침을 먹자마자 서둘러본다. 빨래 바구니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내 모습에 남편도 덩달아 청소를 서둘렀다. 남편이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분리수거를 할 동안, 나는 화장실 청소와 설거지를 한다. 잠깐 쉬어볼까 하고 소파에 앉았을 뿐인데 몇 시간이 또 기억에서 사라졌다. 토요일과 같은 시간에 낮잠을 자버렸다. 뜻하지 않게 참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내가.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나니 밖이 어둑해진다. 이럴 순 없어, 산책도 못하고 과제도 하나도 못했는데. 


 넘어가는 일요일 밤을 잡고 해야 하는 일들에 급히 우선순위를 매겨본다. 마감이 가까운 것부터, 그리고 가장 책임이 큰 것부터, 당연히 내일 수업 준비가 최우선이다. 주제선택 수업의 이번 주 주제를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쓰레기 없애기'로 정했다. 나도 잘 모르는 주제라 여기저기 검색하며 자료를 정리했다. 얼른 하고 시간이 남으면 대학원 과제를 조금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역시 내 이럴 줄 알았다. 




 주말이 지나고 나니 '나의 주말은 어디로 흘러간 걸까' 싶은 생각만 든다. 두 손으로 머리 양옆을 잡고 마구 비비고 싶다. 에휴, 정말, 나의 주말은 어디로 흘러간 걸까, 어디로 가버린 걸까. 


 오늘은 월요일. 내일부터 다시 화수목금, 그리고 다음 주말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머릿속에 목록을 정리해본다. 하고 싶은 일 옆으로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반갑지 않게 정리된다. 다음 주 이 시간에도 아마 나는 '나의 주말은 어디로 흘러간 걸까'라며 안타까워하겠지? 그래도 또 다음 주말을 기다리며,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 이 시간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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