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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Dec 05. 2020

그 시절, 우리가 숨쉬었던 그때

결국 다 그렇게 되리라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려고 교과서 한구석에 쓰여있는 작가 소개를 같이 볼 때였다. 1909년 생인 작가의 생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유발하고 싶어 '09년 생'이라는 말로 운을 떼었다.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이 2007년생이니 작가와 아이들은 얼추 100년 차이. 본인들이 공칠 년 생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아이들은 공구 년 생이라는 말을 친근하게 듣는 듯하더니 백 년 차이라는 말에 눈이 띠용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어쩌다 영화 속에서, 역사책에서만 들어봤던 1909년 즈음에도 태어난 사람이 있다는 게 안 믿어지는 것 같았다. 대놓고 물어보는 아이는 없었지만 '그 시대에도 사람이 태어났나요?' 이런 눈치였다.


  태어나보니 일제강점기, 험난한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6.25 전쟁이란 또 웬 말이냐. 휴전 이후에도 혼란스럽고 배고프던 시절을 살아야만 했을 작가, 그가 남긴 소설이 출생 10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교과서에 남아 있다. 아이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다는 이유로 약간의 시대 상황을 설명해 보지만 나라고 그 시절을 살아본 것도 아니다. 그 시대 사람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여러 번 만나봤기에 놀라지 않을 뿐, 아이들의 생각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일생일대의 시험을 마스크를 쓰고 봐야 했던 올해 고3이 2002년 생이다. 우리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들이 태어난 2002년을 떠올리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까! 학원의 커다란 강의실에 수학 수업을 들으러 갔던 우리는 한마음으로 축구 경기를 응원했다. 내가 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손에는 왜 그렇게도 땀이 났는지, 별로 애국심도 없으면서 사복을 입을 때면 왜 그렇게 빨간색을 찾았는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데 몇몇 차들이 빰빠빠빰빠 경적 소리를 울려댔다. 그 소음에도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그런 중에도 사람은 태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수능을 봤다. 인터넷 여기저기에 2002년생이 불쌍하다는 말이 올라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신종플루, 중학교 1학년 땐 메르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 코로나, 게다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첫 수학여행을 떠날 즈음엔 세월호 사고로 체험학습까지 취소되었을 테니. 어느 글에는 이들이 자유학기제를 초기에 경험한 것마저 불쌍하다는 말도 있었다. 


 댓글 중에 시선이 가는 내용이 있었는데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시대를 살았던 건 다름 아닌 1592년 생이라는 거였다. 태어나 보니 임진왜란, 1597년 정유재란,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 전사하지 않았다 해도 아마 평생 배고픔과 주위 사람들의 죽음 속에서 살았을 거라고. 그렇게, 역사 교과서에 몇 글자로 남아 있는 그 시대에도 사람은 태어났을 거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힘들다는 생각은 수도 없이 많이 해봤어도 다른 시대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도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최근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공통된 인식을 하나 발견했다. 다들 자신의 세대가 낀 세대라고 생각한다는 것. 50년대 생도, 60년대 생도, 70년대 생도, 80년대 생도, 다들 저마다 그럴듯한 이유로 자신들이 낀 세대라 양쪽 세대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시대는 점차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누구나 윗세대가 있고 아랫세대가 있을 테니 그 어디에 서있어도 낀 세대가 맞을 것이다. 90년대 생이 나타나니 나도 직장에서 사회에서 자연스레 낀 세대가 되었다. 가끔은 동년배 선생님들과 우스개 반, 걱정 반으로 우리 세대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런 대화를 공유할 수 있는 동년배가 있다는 건 정말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모두의 인생이 힘들고 모두의 시대가 어렵듯이 나 또한 그러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태어난 시대가 좋다. 뭐 언제인들 역사적인 순간이 아니겠냐마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올림픽이 열렸고(어려서 기억은 없지만) 사람들 옷이 온통 빨개졌던(정말 엄청났던!) 대국민 축제 월드컵도 경험할 수 있었으며 어린 시절 내 마음에 불을 지펴준 에초티 오빠들도 만났다.(ㅎㅎ) 삐삐라는 물건도 짧게나마 사용해봤고 무기 같았던 휴대폰이 날렵한 스마트폰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수도 있었다. 누구나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길어지는 역사의 산증인이 된다. 


 1909년에도 사람이 태어났다는 게 안 믿어진다는 듯 눈이 띠용 튀어나오던 아이들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먼 훗날의 누군가는 우리 세대의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헐, 그때 그, 서울에서 올림픽하고 민주화 운동하던 때도 사람이 태어났던 거야? 백 년 차이라니, 대박. 그 시절 우리가 숨쉬었던 그때를 먼 훗날의 누군가가 신기하게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듯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럴 땐 시간이 흐른다는 게 왠지 모르게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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