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디킨스의 <위대한유산>을 읽고
<위대한유산>은 소년 핍이 아름다운 부잣집 양녀 에스텔라를 만나며 사랑에 빠지고, 그와 함께 자신의 삶을 인식하는 것을 그려낸 소설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인 신분상승,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찰나의 사랑과 자기인식이 만들어 내는 주인공 핍의 감정은 우리와 닮아 있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과 아련한 기대감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 그리고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되는 모습을 말이다.
고아에 대장장이 자형 밑에 얹혀 살아가는 어린 꼬마 ‘핍’은 사랑스러운 여인 ‘에스텔라’를 만난 순간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의 매혹적인 아름다움과 거만함이 자신의 더렵혀진 장화와 굳은살이 가득 배인 손을 바라보게 한다. 그녀는 핍의 가난함을 모욕했고, 자신을 우러러보는 핍의 어린 눈망울을 처절히 무시한다. 어린 사춘기 소년 핍은 그녀 앞에 자신이 너무나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비참하고 환경이 원망스러웠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당당하지 못한 자신의 배경과 초라한 행색에 그는 신분상승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무릇 신사란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가 바른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이름 모를 사람에 의해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게 된 핍은 자신의 생활을 내버려 두고 영국의 런던으로 향한다. 그 생활의 변화가 자신을 가치있고 격조있는 신사로 만들어 줄 거란 막연한 희망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런던에서의 생활은 그를 신사로 만들지 못했다. 그는 막대한 용돈 탓에 사교계에 빠져 돈을 빚지기에 이르렀고, 하루아침 벼락을 맞은 것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신분에 굽실거리는 사람들을 만나며 변해간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이루었던 대장장이로서의 삶을 잊고 그가 가진 재산에 의해 명명된 ‘신사’의 이름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을 신사로 만들어 준 이가 자신이 구했던 죄수 ‘프로비스’라는 것을 안 순간 그는 절망한다.
그는 어린 날 자신을 짓눌렀던 죄수가 자신의 증여인 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자신의 허울 된 신사로서의 삶을 깨닫는다. 즉, 노력 없이 얻는 재산으로 이룬 삶의 결과는 핍을 다시 옥죄는 자물쇠가 되어 돌아온다. 자신이 욕망을 쫓아 선택한 삶의 끝이 만들어준 허망함을 체험한 핍은 자신이 외면해온 과거를 떠올린다.
때로 사람들은 대가없는 선물에 좋아하고 그가 가져올 결과에 무심하다. 순간의 감정과 욕망이 원하는 대로 나아간 선택의 결과가 이르기 전 까지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싼 세상에 무심하기도 하다. 핍이 선택한 삶의 향로는 그를 진정한 신사로 만들어 주지도 그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도 않았다. 그저 주어진 돈으로 자신의 향락을 누리는 오만한 신사가 되는 길을 인도했다. 진정한 대가 없이 주어진 그 어떤 것도 인생의 참다움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핍은 헛된 욕망을 쫓아 막연한 기대감으로 살아온 끝에 이르러 그 기대에 실망했고, 오히려 버려왔던 자신의 삶에 대한 미련이 생겼다.
대장장이 조는 유일하게 어린 꼬마 핍을 언제나 친구로 대하는 어른이다. 그가 핍을 부를 때면, 그는 항상 “나의 최고의 친구, 핍!”이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그의 몸짓이나 나이가 자신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생각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어린 핍을 언제나 친구로 소중히 대했다. 그러나 핍은 조를 품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정직하고 건강한 대장장이이지만 신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초라하고 볼품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핍은 그런 그가 때론 부끄러웠고, 그가 지식인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핍이 가장 힘든 순간, 그의 곁을 지켜준 은인은 다름 아닌 조였다. 그는 누구보다 핍을 마음 깊이 응원했고, 그의 선택을 지지했다. 거리와 함께 멀어져가는 그들의 인연의 깊이에 연연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핍이 행복하길 바라는 삶의 동반자로서 머물렀다. 그는 언변이 훌륭하지도 행동이 신사답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일에 소명을 느끼고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제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함을 느꼈다. 그는 어떠한 세속적 위치에 대한 욕심이 없었고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누구와의 비교대상에 놓지 않는 겸허한 사람이었다.
진정한 신사는 물질적 가치와 세상적 지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며 올바른 가치관에서 나온다. 신사는 화려한 명성이나 권력으로는 살 수 없다. 지성을 겸비한 품위 있는 신사가 요즘의 시대에도 통할까?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신사답게 격조있게’를 외치지만 그 이면에는 경제적 지위와 엄청난 자산을 가진 사람들 앞에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진 않은가. 진정한 신사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