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 꿰기의 비애

#규칙찾기 #초등2학년 #구슬팔찌 만들기

by 스텔라박

구슬꿰기의 비애

초등학교 2학년 수학 교과서에는 규칙 찾기 단원이 있다. 그리고 단원 마무리 활동으로 규칙을 이용하여 구슬 팔찌 만들기가 나온다. 아이들이 실생활과 연결하여 규칙을 찾을 수 있게끔 하는 활동이어서 매번 구슬 만들기 키트를 사서 아이들과 구슬 팔찌 만들기 활동을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란 점이다. 아직 손이 야무지지 않은 시기다. 1학년보다야 낫지만 그래도 미숙한 아이들이다. 구슬 팔찌 만들기는 투명한 얇은 고무줄(낚싯줄인데 탄성이 있다.)에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구슬을 꿰어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색깔과 모양으로 구슬을 꿰면 교사가 한 명씩 줄을 묶어준다. 작년까지 4년 동안 구슬 팔찌 만들기를 하면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할 때마다 시행착오가 있었다.


첫 해에는 2학년을 처음 하게 되어서 그들의 발달 수준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키트를 나눠주고 ‘자기가 원하는 규칙으로 구슬을 꿰어보세요.’ 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구슬을 한 쪽에 꿰면 다른 쪽으로 또르르 떨어지고, 또 꿰면 다른 쪽으로 또다시 또르르 떨어지고, 무슨 바보훈련 하는 것 마냥 꿰고 떨어지고 반복해서 복장이 터졌다.


그 다음 해, 동 학년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단단히 준비를 했다. 팁을 얻어서 테이프로 한쪽 끝을 책상에 다 붙여주고 아이들에게 구슬을 꿰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 실수가 있었다.

“다 구슬 꿴 사람 앞으로 가져오세요. 선생님이 묶어줄게요.”

라고 했다. 그리고 곧 대참사가 벌어졌다.


아이들이 그 구슬 꿴 줄을 앞으로 들고 가져오다가 아차, 한 줄을 놓쳤다. 온 사방에 구슬이 또르르 또르르 굴러갔다. 한 명이 놓치자 전염되듯이 다른 한 명, 두 명이 줄을 놓치고 놓쳤다. 아이들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마냥 허리를 굽히고 구슬 줍느라 한 시간이 지나갔다.


세 번째 해, 이번에는 아이들보고 다 꿰면 앉아있으라고 하고 내가 자리마다 찾아가서 묶어주는 것 까지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역시, 경험이 중요하구나, 이번엔 성공인가! 하며 뿌듯해했는데 웬걸.. 내가 잘 묶어준다고 단단히 묶어줬는데 아이들에 팔에 끼우느라 늘리는 순간 줄이 풀어지며 여기저기 구슬이 흩어졌다. 다시 아이들은 이삭 줍는 여인들이 되어 구슬을 줍기 바빴다.


네 번째 해, 이번에는 안 되겠다 싶어 지역사회에서 강사를 지원해주는 토탈공예로 비즈팔찌 만들기를 신청했다. 아로마 테라피 비즈팔찌 만들기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을 보니 비즈팔찌를 만들고 거기에 천으로 된 조그만 꽃 모양을 꿰고 거기에 아로마 향을 톡톡 떨어뜨려 향기가 나는 결과물이었다. 규칙 찾기는 이걸로 해결하자! 예쁜 팔찌에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아로마 향기까지 나게 한다니! 큰 기대를 안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구슬이 너무 작았다. 좀 심하게 작았다. 노안인 사람들은 도저히 구슬을 꿸 수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 아이들의 시력은 괜찮았고 손이 작았기 때문에 무사히 끼우는 듯 했다. 그런데 이게 단순하게 구슬을 꿰는게 아니라 열매 모양으로 만들어 포인트를 주는 과정이 있어서 실을 이리저리 바꿔 끼는 큰 산이 있었다. 결국 우리 반에서 손이 제일 크고 곰손인 H가 훌쩍훌쩍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H를 달래주고 내가 거의 다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4년을 거치며 구슬 팔찌 만들기를 겪다 보니 나는 구슬 꿰기의 달인이 되었다. 안되는 아이들 하나하나 만들어주며 내 구슬꿰기 스킬만 늘어갔다. 교구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자들이 이 고충을 알고 2학년 수준에 맞는! 딱 쉽게 꿰고 딱 쉽고 단단하게 매듭 지을 수 있는 구슬 팔찌 키트를 제발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구슬 팔찌를 만든 후 대략 한달 간(비즈 팔찌는 거의 두 달 동안) 나는 교실 청소할 때마다 어디선가 또르르 또르르 굴러오는 구슬을 만나야 했다.


하지만 구슬 꿰기의 슬픈 과거를 되돌아보며 나 스스로 반성한다. 어떤 수업을 할 때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하건만, 내가 너무 안일했다. 특히 저학년은 그렇다. 2학년 아이들의 수준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에이, 잘 하겠지. 설마 이 정도를?’ 라고 생각하며 애써 무시한 결과였다. 덕분에 우리 반 아이들도 나도 고생하는 흑역사가 생겼다. 덕분에 올해 1학년과 어떤 활동을 할 때는 동 학년 선생님들과 시뮬레이션을 서너 번 돌려보고 아이들에게 설명을 다섯 번 정도 반복한 후 시작한다. 물론 알아서 잘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가르칠 때는 항상 가장 따라오기 어려운 학생도 잘 해낼 수 있을 정도의 기준으로 설명해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예쁜 구슬이라도 잘 꿰어야 가치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좋은 수업의 재료가 있더라도 이를 잘 엮어야 좋은 수업을 할 수 있다. 수업 뿐 아니라 사는 게 그렇다. 하지만 내 구슬꿰기의 역사처럼 실패이건 성공이건 경험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달인이 되어있지 않겠는가? 실패건 성공이건 배우는 게 있다면 인생의 구슬 하나를 성공적으로 꿴 셈이다. 경험 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평범한 사람으로서 거기까지 기대하지는 않기로 한다. 종종 내 인생의 구슬 팔찌가 풀어져 땅바닥에 구슬이 와르르 쏟아져도 허리를 굽혀 하나하나 주워 다시 꿰면 그만이다. 허리여, 영원히 튼튼하거라. 구슬을 주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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