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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ul 02. 2018

100일의 기적, 정말 있나요?

#7. 아프지 않고 잘 자라줘서 고마워! 

※ 실로 오래간만에 쓰는 육아일기입니다. 여러 가지로 '바쁘다'는 핑계가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뜨거워질 태양의 기지개를 만나며 출근을 하고, 하늘 위로 붉게 노을이 지면 집으로 들어갑니다. 집에 가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이를 안아주거나 토닥거리며 잠을 재우고 또 어떨 땐 환하게 웃어줄 때까지 놀아주기도 합니다. 회사 일과 육아는 물론이고 이 글과 전혀 다른 성격의 글을 열심히 쓰고 있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를 정도가 되어버렸답니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주 조금씩 아이와 함께 (내적으로) 자라고 있답니다. ^^


2017년의 따스한 봄날! 

언젠가부터 봄이라는 계절은 우리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벚꽃이 피어나던 순간과 계절적 시간을 살짝 터치하며 여름과 그 시기와 온도를 바꾸고 있다. 봄과 여름의 사이 그 어디쯤일 뿐인데 햇살의 온도가 뜨겁게 느껴진다. 

아이와 아내를 처갓집으로 두고 올라오는 길은 귓가에 음악이 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적막하고 고요하다. 길고 긴 도로와 정체구간을 뚫고 나니 어느새 늦은 저녁. 아기 울음소리와 기저귀가 나뒹굴었던 거실이 빈 공간으로 인해 휑하다.  

냉장고에 가득 찬 음식들에게 차가운 공기를 뿜어주며 윙윙거리는 소리와 가끔 주변에서 들리는 차량의 붕붕거리는 소음만 겨우 들리는 일요일 저녁. 

나는 혼자다.

밤새 투정 부리던 아이가 잠시나마 멀리 떨어져 있어 여유공간이 생긴 저 침대에서 편한 잠을 이룰 수 있을까?

사실 그냥 뭔가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만 남는다.  

아이가 없을 땐 와이프라도 함께 있었으니 이 정도의 느낌은 아니었는데... 아이가 태어난 이후 요 며칠을 내내 함께 한 덕분인지 늘 좁았던 집이 넓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리 아이가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약 20일이 되었다. 

출생 이후 1개월 이내에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출생 등록을 마치면 비로소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 된다.

기간 내에 신고를 완료하지 않게 되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으니 꼭 주의하기 바란다.

출생신고를 위한 준비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병원에서 발급한 출생증명서와 신분증, 통장사본만 있으면 가능하다. 

통장사본의 경우, 나라에서 지원하는 양육수당과 출산지원금을 받기 위한 용도다. 

양육 수당의 경우는 12개월 미만이라 월 20만 원씩 꼬박꼬박 받게 된다. 12개월 이상 24개월 미만은 15만 원. 24개월 이상 취학 전까지는 10만 원이라고 한다. 그 밖에 1년 미만 영아가 1인 이상 포함된 경우에는 전기세 역시 감면받을 수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2017년 기준이니 참고 바랍니다)

아이가 태어난 것도, 출생증명서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 사실만으로 신기했는데 막상 출생신고서를 하나씩 기입하고 있으니 비로소 부모가 된 기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부(父)"라는 자리에 늘 내 아버지의 이름을 써왔는데 이제 제가 감히 그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와이프와 함께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정한 아기의 이름을 신고서에 또박또박 적어나갔다. 행여나 틀리지는 않았을까 몇 번씩이나 확인하고, 서류를 제출하고는.

"아, 근데 전 통장사본이 없는데요."

"이메일로 보내시면 돼요."

사실 필자는 통장사본은커녕 통장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 은행에서 재발급까지 받았다. 발급받은 따끈따끈한 통장을 스캔해 사본을 첨부한 이메일을 주민센터 담당자에게 보내 정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공돈'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역시나 많은 준비가 되지 않은, 그저 초보 아빠에 불과했다. 어쨌든 그렇게 출생신고를 마무리했다. 

심쿵이라는 태명에 이어 진짜 이름이 생겼고 주민등록번호도 발급되었다. 비로소 우리 아이도 이 나라의 어엿한 국민이 되었다.


심쿵아, 아빠 왔다!

평일 내내 집과 직장을 오가며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퇴근 후 집 문을 열면 여전히 컴컴하고 고요하지만 정신도 없이 지나갔다.

통신의 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영상통화를 하며, 오늘도 조금씩 자란 아이의 모습을 확인하곤 한다. 영상 통화만으로 어찌 그 기분을 100% 만족하랴. 

유난히도 화창한 토요일을 맞아 대전행 KTX에 몸을 실었다. 불과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시간 동안 창밖을 바라보니 여유마저 느껴졌다. 대전 역시 서울과 다를 바 없지만 사무실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이렇게 편안함을 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스트레스와 매너리즘 속에서 허우적거렸던 육체가 봄 햇살에 광합성을 하듯 잠시나마 힐링할 수 있었다.

대전 유등천 앞에서.  photo by Pen 잡은 루이스, iPhone5

"저 왔어요!" (그리곤 아내에게) "잘 있었지? 심쿵이는 자?"

작디작은 아기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행여나 깰까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아빠 왔다. 심쿵아! 아이고 오래간만이네!"

아이의 숨소리와 풋내를 맡으며 잠시 토닥거린 후 방에서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깨운 건가? 사실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략 1~2시간에 한 번씩은 밥을 달라고 온 동네 떠나갈 듯 운다. 먹고 자는 싸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린 아이와 함께,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몫 역시 엄마의 하루가 되어 매일을 반복한다. 

어버이날이 되면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랫말이 문득 생각났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우리를 지금까지 길러주시고 키워주셨던 부모님 세대는 지금보다 더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으리라. 아내 역시 엄마가 되어 여러모로 아이를 챙기고 모유수유를 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나 행복해했다.  

수유가 끝난 뒤 아이를 소화시키기 위해 아주 오래간만에 아이를 품에 안았다. 병원에서 그리고 조리원에서 느꼈던 아이의 몸이 얼마나 늘었을까 온 몸의 감각을 총동원해 그 느낌을 곱씹었지만 여전히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몇 번을 토닥토닥 거리니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아이는 다시 잠을 청한다. 커튼 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매우 산뜻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마저도 낮잠이 생각나는 오후였다. 

커튼 뒤로 조금씩 불어오는 봄바람이 낮잠을 생각나게 하네요. photo by pen잡은루이스, iPhone5

사실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아이들은 몸속의 장기가 완성되지 않은 탓에 만족스러울 만큼 수유를 했다 해도 금방 엄마를 찾곤 한다. 더구나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않으면 연약한 피부가 짓무를 수도 있다. 특히나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더욱 그러하다. 낮이고 밤이고 정해진 시간이 없으니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건 고사하고 중간중간 정신 차리고 일어나야만 했다. 

약 한 달간 처갓집에 머물렀던 아내는 아이를 돌보느라 연일 고생이었던 게 사실이다. 옆에서 챙겨주셨던 장인어른과 장모님 역시 우는 아이를 봐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으리라. 


한 달 뒤,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왔다. 태어나면서 다리 쪽 뼈에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울대학교 병원 어린이병동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수많은 아이들이 뛰거나 장난을 치고 또 어떤 아이들은 울부짖으며 엄마, 아빠를 찾는다. 발 디딜 틈 없는 아이들의 세상. 정신없는 와중에 우리 아이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곤히 잠을 자고 있다. 시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X 레이를 찍고 이리저리 검사를 하는데도 크게 울지 않았다. 단지 의사 선생님 앞에서 시원하게 실례를 하고 말았지만. 

아이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점차 자라면서 올곧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빠져나와 다시 봄햇살을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날이 점차 더워진다. 봄이라는 계절적 변화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마치 통장을 스쳐 지나간 월급처럼 봄의 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건조대에 걸려있는 아이의 수많은 옷가지들이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점점 뽀송뽀송해진다. 비로소 아이를 키우는 집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아기 옷을 이렇게 걸어두니 실감나네요. photo by pen잡은루이스, EOS 60D. 50mm F 1.4
바운서에 누워 모빌을 바라보는 아이. photo by pen잡은루이스, EOS 60D. 50mm F 1.4

아이 눈 앞에 펼쳐진 모빌의 인형들이 빙글빙글 정해진 속도에 맞춰 열심히 돌고 있다. 아이의 시선 역시 인형들과 함께 조금씩 움직인다. 누워만 지내는 신생아에게 모빌만큼 훌륭한 것도 없다. 모빌을 보다가 잠드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손에 꼽았다. 선물 받은 바운서는 우리의 높은 기대만큼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지인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100일의 기적은 있는 걸까요?

사람들이 말하는 '100일의 기적'이란 무엇일까?

아이가 태어난 후 100일째 되는 날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어느 정도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이고 나름 면역력도 갖췄다는 시기다. 아이가 태어난 후 삼칠일(三七日)이라고 해서 21일까지는 외부인 방문이나 출입 자체를 엄격히 지양했다고 하는데 삼칠일이 지나면 이를 축하하는 잔치도 있었다고 한다. 

100일이라면 가족들과 함께 백일상을 차려두고 더욱 무탈하게 자라 달라고 기원하는 자리이기도 하나, 부모들은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는 '기적'을 더욱 기원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뚜렷한 100일의 기적은 없었다. 밤에도 수차례 울면서 깨기를 반복했고 밤중 수유도 지나갈 수 없었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라고 아이 귓가에 속삭였음에도 새벽에 아이가 깨면 '왜 이렇게 잠을 못 자니'라며 짜증을 내려고 했던걸 생각하면 참으로 민망하고 미안하다. 

잠투정이 심하고 잠이 들어도 금방 깨버리는 경우도 다반사, 아빠 엄마가 안아줘야 잠이 드는 것 모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재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엄청나다고 하는데 '100일의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단지 일어나지 않았을 뿐. 

우린 그렇게 우리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을 맞아 '기적'이 일어 나주길, 그리고 하루하루 보다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를 기원하고 기도했다. 

 

스와들업의 기적을 바라며...ㅋ

심쿵아! 

오늘도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 '100일의 기적'보다는 그냥 너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다!! 

그걸 알면서도... 새벽에 깰때마다 울컥 짜증을 내려고 했는데 방긋 웃는 너의 모습을 보고 그런 마음이 사라지더라. 사람들이 '미안하고 고맙다'라는 말들을 하는데 지금 아빠 마음이 딱 그렇다. 미안하고 또 고마워! 

아빠는 너의 손 놓지 않을께! 꽉 붙잡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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