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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Nov 30. 2018

너와 나, 우리의 1년 365일

#9. 아이가 태어난 지 1년, 아빠가 된 지 12개월!

솔직히 말하면 우리 아이에게 있어 사람들이 흔하게 이야기하는 '100일의 기적' 따위는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냥 지나가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100일의 기적'이 무슨 의미를 가진 말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 기적은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 우리 품에 안긴 것. 그리고 그 아이가 내 눈 앞에 있다는 것! 바로 그 자체가 '기적'이다.


기적 같은 아이, 건강하게 자라주렴

생후 4개월 후부터는 아이도 건강검진을 한다. 이른바 '영유아 건강검진'이라 불리는 건강검진 프로그램은 아이의 키와 몸무게는 기본이고 머리 둘레, 다소 기초적인 신체계측 등으로 발달 평가와 상담이 이루어진다.

보건복지부에서 언급하는 영유아 건강검진 시기는 다음과 같다.
1차 : 생후 4개월~6개월
2차 : 생후 9개월~12개월
3차 : 생후 18개월 ~24개월
4차 : 생후 30개월~36개월
5차 : 생후 42개월~48개월
6차 : 생후 54개월~60개월
7차 : 생후 66개월~71개월

건강검진과 함께 놓쳐서는 안 될 구강검진 시기도 체크해볼 필요가 있겠다.
1차 : 생후 18개월~ 29개월
2차 : 생후 42개월~53개월
3차 : 생후 54개월~65개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2017년 자료 기준>


예방접종을 맞기 위해 몇 차례 병원에 갔을 뿐, 그래도 다행인 건 크게 아프지 않아 병원에 드나드는 경우는 없었다. 더구나 주사를 맞아도 딱 그때만 굵고 짧게 울음을 터뜨릴뿐, '아빠보다 낫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몸무게를 재고 동시에 키를 측정하니 모두 평균 이상이었다. 모유의 영양이 고스란히 아이에게로 흡수된 모양이다.

영유아 건강검진을 전후로 10개가 넘는 예방접종을 수시로 해야 했다.

폴리오부터 B형헤모필루스인플루엔자(Hib), 폐렴구균, B형 간염,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에 이르기까지 발음도 어려운 이름은 물론 아이에겐 꽤 아플만한 주사 바늘이 몇 차례나 꽂혀야 한다. 아이의 건강을 위한 것이니 반드시 맞아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연약한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주사 바늘이 그 날따라 왜 이리도 예리하고 차가운 느낌인지 모르겠다. 엄마 아빠의 걱정과는 달리 주사에도 끄떡없는 아이가 참 기특하기만 했다.

출처 : pixabay

주삿바늘에 들어간 약에도 불구하고 잠시 눈을 붙일 뿐 금방 일어나 보채는 아이. 낮잠도 잠시일 뿐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빌도 흥미가 떨어진 모양이다. 쏘서(아기체육관/Activity Center)에 앉혀 놓고 빨래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하지만 역시 오래 가진 않는다. 그저 안아주는 게 최고인 모양이다.

사실 쏘서라도 있어 다행이긴 했다. 발도 닿지 않아 붕붕 떠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쏘서의 높이를 최대로 올려도 발이 땅에 닿는다.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고 달력의 숫자가 바뀔 때마다 아이도 제법 자랐다.

오동통한 우리 아이의 작은 손

2017년 12월.

아이가 태어난 지 9개월 무렵. 바깥 날씨는 매우 추웠지만 아이가 있는 집은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어느 날 저녁, 한참을 기어 다니던 아이가 소파에 앉아있던 내게 다가오더니 바짓가랑이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마치 일어나 보겠다는 듯 안간힘을 쓰다가 자연스럽게 무릎을 펴기 시작했다. (아빠의 도움이 있기는 했지만) 벌떡 일어나게 된 이 어린 것을 보며 감탄사를 날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아이는 이렇게 '직립보행'의 첫 테이프를 끊게 됐다. 자유롭게 걸어 다니려면 아직 한참 멀긴 했지만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만큼 물렁했던 팔과 다리에 근력이 생긴 모양이다.

"걸어 다니게 되는 순간 정신없을 거다!"라고 말하는 지인들.

언제가는 걷게 될 아이인데 그게 무슨 의미랴. 다 부모가 감내해야 하는 과정이 아니던가.

물론 지금도 거실을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닌다. 모든 물건에 손을 대며 물거나 빨거나 던지거나 하니 지인들이 얘기하던 '정신없다'라는 말은 완벽한 팩트였다!


우리 아이, 어디에 맡겨야 하나?

2018년 새해가 되면서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아이도 한 살씩 나이를 챙겼다.

첫돌도 맞이하기 전 바로 2살이 되어버린 아이. 아침에 일어나 아이의 얼굴을 보고 도망치듯 출근해야 하는 아빠. 그리고 오늘도 하루 온종일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할 엄마.

봄이 왔음을 알리는 개나리 그리고 시선을 떼지 못하는 아이

이제 완연한 봄이 되면 엄마도 복직을 해야 한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시기다.

"우리 아이, 어디에 맡기면 좋을까?"

복직하기 전, 가장 큰 고민이 되어버렸다.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에게 부탁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결국엔 어린이집과 등하원 도우미뿐이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 보건복지부와 사회보장정보원이 운영하는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에서 어린이집 입소대기 신청이 가능하다. 링크 : http://www.childcare.go.kr/

임신육아종합포털이라는 사이트가 있었고 수많은 메뉴 사이에 어린이집 입소대기 신청 버튼이 있었다. 복잡한 로그인 절차를 밟아 겨우 아이의 정보를 입력하고 입소대기 신청 버튼을 누르면 대기 순번이 나오는데 신청한 어린이집 모두 대기 순번 (적게는) 100번대~ (많게는) 300번대를 넘어섰다. '저출산'이라 불리는 이 시대에 아이들이 많다기보다 어린이집의 공급 자체가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회사에서도 어린이집 개설이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대기'를 감수해야만 했다.

"아, 이게 현실인가?" 

탄식이 흘러나왔다.

우리 부부에게 있어 복직과 맞벌이는 필수였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입소대기 신청을 한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니 정보가 소멸되었다고 한다. 그 후 정보를 다시 입력하고 연락이 오기만을 마냥 기다릴 뿐이었다. 복직을 앞두고 어느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운이 좋았던 건지, 순위가 앞당겨진 건지, 아니면 그냥 자리가 생긴 건지 알 수 없지만 집과 가까운 곳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복직을 한 달 정도 앞둔 상태였다.

어린이집은 아이에게 있어 사실상 공동체 생활이자 '사회생활'과도 같았다. 엄마 아빠와 (어쩌면 불가피하게) 오랜 시간 떨어져야 하고 같은 또래 아이들이 담당 선생님과 함께 하루를 보내야 하는 시기다.

돌이 될 무렵부터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린이집으로 등원하는 아이.

낯설지만 곧 친해지게 될 선생님을 매일 보며 알아가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당연히 첫 만남 이후 며칠간은 엄마가 없다고 어마어마한 울음소리를 냈을 터. 또래 아이들이 있다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했다. 밥을 먹어도 함께 먹어야 하고 잠을 잘 때도 옆에 같이 누워야 하니 아직은 너무도 어린 아기이지만 '경쟁심리'라는 것이 선천적으로 혹은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로 작용한 것인지 곧잘 따라하며 익숙해져 갔다고 한다. 역시 시간이 해결해준 덕분이고 아이가 잘 버텨준 덕분이리라.


태어난 지 어느새 1년 365일.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다.

1년이라는 시간이 아이와 부모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 이야기하는데 아이에게는 애착형성을 통해 '신뢰감'을 쌓아가는 시기라고 말한다. 결국에 신뢰감은 아이와 부모에게 모두 중요한 문제다. 심리학자들은 1년 동안의 애착형성이 신뢰감으로, 이후 다시 자존감으로 나아가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출처 : pixabay

사실 아이들이 '낯을 가리며' 모르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펑펑 울어대는 것은 그에 대한 신뢰감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안겨도 되는 사람인지 나를 잘 대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외부 대상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긴밀한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애착 관계의 기본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배고플 때 분유를 주고 졸릴 때 토닥토닥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역할이 반드시 '엄마'일 필요가 없다. 물론 휴직을 하고 가장 오랜 시간 붙어있게 되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신뢰감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높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아빠라는 입장에서 아이 키우기에 아주 세심하고 깊게 참여했다고 자부하기엔 (살짝) 어려움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육아'라는 의미엔 엄마를 ‘돕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참여한다’는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주말이다. 커튼 하나 없는 우리 집 거실을 따사로운 햇살이 환하게 밝혀준다.

아이가 낑낑 거린다. 정해진 온도에 맞춰 분유가 담긴 젖병에 물을 붓는다. 200ml가 넘는 분유를 순식간에 해치워버린 아이를 가슴에 품는다. 토닥토닥, 소화를 시켜주니 속이 편안해졌는지 스르르 감기는 눈. 아이가 잠들자 우리도 그렇게 아주 잠시 눈을 붙인다. 모처럼 평화로운 시간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어두컴컴한 새벽의 고요함을 깨우는 아이. 실컷 울어대는 아이를 비몽사몽으로 달래주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정해진 시간 없이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기용품을 팔팔 끓는 물에 소독을 시키며 하루 24시간이 반복적인 일들로 지나가버린다.  

돌을 맞이해 사진을 찍을 때도 쉽게 웃지 않는 아이 덕분에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연신 딸랑이를 흔들어대는 촬영기사님의 옷은 땀으로 흠뻑이다. 아이를 안고 있는 양복차림의 아빠 역시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정신없었던 아이의 첫 생일 잔치로 그렇게 만 1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너와 나, 그렇게 우리 1년 365일을 보냈다.


심쿵아, 우리 가족 너가 온 이후 1년이 지났구나!

무엇보다 그동안 아프지 않고 잘 자라줘서 고맙고 엄마와 아빠라는 거창한 자격을 받았지만 정말 너를 위해 온전히 이 한 몸 불태웠는지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이 든단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펑펑 울어대는 널 선생님에게 억지로 맡겨놓고 뒤돌아설 때면 마음이 아프지만 잘 견뎌내주길 바란다! 그만큼 더욱 잘 보살펴줄께!

사랑하고 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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