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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an 09. 2019

난 도망치듯 손을 뿌리쳐야했다

#10.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우리 아이의 일상

완연한 봄이 되었다. 살을 에는듯한 겨울의 칼바람이 사라지고 주변에 꽃이 피면서 따스함이 찾아왔다. 하얀 벚꽃과 노란 개나리가 오롯이 증명해주는 봄의 완벽한 온도와 꽃내음이 작년 그때와 같이 '한결'같다.

긴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들이 이리저리 아파트 주차장을 마구 뛰어다닌다. 초등학교가 아파트 뒷문과 바로 인접해있으니 아침이면 늘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다.

봄에 볼 수 있는 흔한 풍경, 따사로운 햇살

D+366.

1년이 지나 해가 바뀌면서 약 9개월 만에 2살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따스한 봄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대하게(?)' 첫 번째 생일 파티를 했고 그렇게 365일을 넘어서게 되었다(돌잔치에서는 마패를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아이 엄마가 복직을 하게 되면서 아이도 어린이집에 출근(등원)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등원을 시작하면서 받게 된 작고 귀여운 가방과 원아수첩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원아수첩을 한 장씩 채워갈 때마다 아이도 조금씩 자라게 될걸 생각하니 뭔가 뿌듯하기도 했다.

'원아수첩'이란 기본적으로 아이의 상태와 컨디션, 어린이집과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선생님과 부모가 소통하는 창구이기도 하다.


엄마의 복직, 정신없는 하루  

지극히 평범한 평일 아침.

차에 시동을 걸고 출근 준비를 해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와 함께 홀로 출근을 해왔는데 아이를 태우게 되면서 그 풍경이 확 바뀌게 되었다. 조수석 뒷자리에는 운전석에도 볼 수 있도록 아이를 위한 카시트가 있고 그 위에는 아이가 창 밖을 바라보며 얌전하게 앉아있다.

얌전히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아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뭔가 평온해 보이는 느낌이지만 카시트에 앉히기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와 씨름을 해야 한다. 아침마다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주며 기저귀를 새로 갈아입혀야 하고 부스스한 얼굴에 생기가 돌도록 세수를 시킨 후 수분이 가득한 로션도 듬뿍 발라준다. 아빠 손아귀를 벗어나 도망가는 아이를 붙잡아 옷을 챙겨 입힌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면 어지러운 거실을 대충 치운 뒤, 한 손에는 아이의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제법 묵직해진 아이를 안고 주차장까지 내려간다. 다행히 카시트에는 어렵지 않게 앉힌다. 크게 떼를 쓰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아이 역시 어린이집 등원을 '당연시' 여기는 모양이다.

  

어린이집은 그리 멀지 않다. 기본적으로 출근을 하기 위한 동선 위에 있고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금방이라도 집으로 데려올 수 있는 꽤 '적당한' 위치에 있다.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긴 후 늘 그랬던 것처럼 본격적인 출근길에 오른다. 이렇게 출근시간이 조금 늦은 아빠는 아이의 등원을 맡기로 했고 퇴근시간이 빠른 엄마는 하원 이후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믿을만한 베이비시터, 어디 없나요?

아이의 하루 일과 중 절반이 어린이집의 일상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 동안 또래 아이들과 함께 에너지를 발산하는 시간. 물론 밥을 먹고 낮잠을 자는 시간도 있다. 간혹 선생님으로부터 급하게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지금 애가 기침도 많이 하고 열도 많이 나요."

'애가 아프다'는 말 한마디에 마음을 졸인다. 울부짖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가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예요"라는 말을 직접 듣고서야 '많이 심하지 않다는 걸 느끼곤' 겨우 마음 한편이 놓인다.

사실 문제는 그 이후다. 도통 약을 먹지 않아 한동안 애를 먹는다. 어떤 아이들은 쓰디쓴 약에 숨겨진 '단맛'에 쪽쪽 빨아먹는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정말 어렵게 약을 먹었던 기억이 스친다. '날 닮은 거구나.'

도망치는 아이를 붙잡아 입을 벌려 억지로 먹이면 그냥 흘러들어 가는 경우도 있지만 약을 먹기 전까지 겨우겨우 먹였던 음식도 토해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결과적으론 식도를 거치지도 못한 약물도 다시 튀어나온다. 약을 먹이는 것도 일이지만 또 한 가지 문제는 감기를 비롯해 구내염이나 수족구와 같은 질병이 생기면 며칠간 등원도 할 수 없다는 것. 전염성이 있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와 아빠가 마냥 휴가를 낼 수도 없다. 아이를 봐주실 분도 없으니 발만 동동 구르게 된다. (주변에 지인도 친척도 없는) 우리 같은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키우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그렇다고 쉽게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다.

"(아파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이가 아파서 집에만 있어야 하는 경우는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52시간 근무제도로 인해 저녁 6시에 퇴근을 하지만 그때까지 아이 홀로 어린이집에 있어야 할걸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늦게까지(저녁 7시~8시) 아이를 맡아 돌봐주기는 하지만 오후 3시나 4시가 되면 다른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하원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북적거리던 어린이집이 조용해지는 순간 일터. 아이들이 없으니 주변의 모든 장난감을 모두 독차지하는 셈이지만 '흥미'가 있을 리 없다. 아이 입장이라면 하나 둘 떠나가는 아이들을 보고 "우리 엄마 아빠는 언제 오시려나?" 하는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


아이 엄마가 업무를 일찍 마친 어느 날.

다른 부모들과 함께 아이들 하원을 위해 어린이집을 '깜짝' 방문했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혼자겠지"라고 생각했던 우리 아이는 엄마를 본 순간 깜짝 놀라며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을 게다. 그 얘기를 들으니 뭉클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거실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를 다시 한번 쳐다봤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린 아이의 하원을 맡아줄 '하원 도우미'이자 '베이티 시터'를 구하기로 했다.  

출처 : pixabay

사실 아이 엄마가 복직하기 전, 몇 차례 하원 도우미와 면접을 봤다고 했는데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었기에 쉽게 채용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사실 너무 당연하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손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맡겨야 한다는 것은 온갖 의심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도우미를 찾는 사람, 도우미를 지원하는 사람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존재하지만 리뷰나 후기를 꼼꼼하게 본다한들 쉽게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채용한다고 해도 낯을 가리는 아이와 친해지기 위한 '시간'을 고려하면 오랫동안 봐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겨우 친해졌는데 금방이라고 그만두게 된다면 또다시 '신뢰를 쌓아야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필요하다고 알린 이후 몇 명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 엄마는 '면접관'이 되어야 했다. 대부분 문자나 카카오톡, 몇 번의 전화통화가 전부였다. 실제로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환갑을 맞이한 어느 도우미가 몇 차례 아이를 돌본 경험과 경력 그리고 노하우가 있다며 찾아왔다고 했다. 말이 '면접'이지 아이와의 첫 만남을 통해 사람을 '스캔'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아이에게는 혼낼 때 작은 목소리로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시고 아이가 울면 꼭 안아주세요"

첫날 오시자마자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경계심이라고는 없었다. 그런데 뭔가 '벽'이 놓여 있는 듯했다. 그 사람이 말한 '경험'은 대부분 '진짜'처럼 느껴졌고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기에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다음 날 오후 4시.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앞에서 엄마와 도우미가 서로 만나 아이를 하원 시키고 집에서 아이와 노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서로 간의 신뢰를 쌓는 시간은 매우 어색하고 차가운 공기마저 느껴졌지만 그 얼음을 깨는 역할은 온전히 아이였다. 자신의 장난감이고 엄마의 화장품이고 아빠의 물건 등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썰렁했던 집안 공기를 바꿔놓았다. 하루하루 도우미와 친해진 아이 덕분에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졌다.

엄마나 아빠 모두 도우미에게 아이를 맡기고 편하게 출퇴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우미 역시 '사람'이 아니던가. 아이가 고열로 시달리고 감기로 인해 고생하던 그 기간 동안 도우미 아줌마까지 독감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고 출근을 하긴 했지만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도우미 아줌마에게 '육아'는 너무도 고된 일이었던 모양이다. "오늘 출근하셔서 아무것도 하시지 마시고 푹 쉬세요. 아이도 약 먹으면 그냥 잘 거예요."

아이와 도우미 아줌마 모두 그 날 오후는 말 그대로 '녹다운'이 되었다고 했다.


도우미 아줌마가 오후에만 출근하시니 아이가 등원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상당히 난처하다. 구내염 확진을 받고 그 날 저녁 KTX 기차에 올라타 대전에 있는 처갓집에 맡겨야 했던 경우도 있긴 했다. 1년간 10일 남짓 정해진 휴가를 아이를 위해서야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저녁 늦게 아이와 함께 찾아간 처갓집. 오래간만에 마주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낯설어하면서 피하긴 했지만 금방 장난을 칠 정도로 친숙해졌다. 아마도 어렸을 때의 그 기억을 되살린 모양이다. 저녁 9시가 되어서야 토닥토닥 거리며 잠을 재우고 우린 새벽 기차를 위해 짧은 시간 눈을 붙였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며칠간 부탁드려요. 주말에 다시 데리러 올게요."

마치 '야반도주'하듯 아이를 뒤로 한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곳을 떠나야 했다.

7월의 여름 공기가 가득한 대전역 풍경

7월의 여름 공기에서 시원함이 느껴졌다. 새벽시간의 출근길은 미세먼지로 가득한 서울과 달리 맑은 느낌이었다. KTX로 고작 1시간 남짓이지만 왠지 멀게 느껴졌다. 눈을 감아보지만 잠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씩 걱정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 아빠가 없을 텐데... 괜찮을까?"

하지만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일어났고 하루하루 나아져갔다. 우리도 아이도 현실에 적응해갔다.


난 도망치듯 손을 뿌리쳐야 했다

여름이 되기 전, 아이와 함께 제주 여행을 했고 본격적인 여름이 되어서야 어린이집 휴가기간에 맞춰 일본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도우미 아줌마 역시 온전하게 쉴 수 있는 휴가기간이 되었다.

아이와 함께한 후쿠오카 여행

미안한 마음과 감사함을 하얀 봉투에 담아 전달하고자 했지만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셨다. 휴가를 다녀온 후 다시금 아이와 함께 하루 반나절을 보내신 아줌마. 환갑이 되고 나니 허리가 아프시다며 '고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고 일하신 지 6~7개월이 지나 "미안해요. 허리가 너무 아파서 아이를 볼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라며 그만두신다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셨다. 막막했다. 다시 사람을 뽑아야 하나? 처갓집에 말씀을 드려야 하나? 이미 조카아이 둘을 봐주시는 우리 부모님에게 여력은 있으신 걸까?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결국 가을이 되어서야 아이 엄마가 처갓집에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 좀 봐 달라고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쩌겠니. 당분간 서울 올라가서 봐줄게."

너무도 감사했다. 더구나 아무것도 없는 서울에 올라와 열일 제쳐두고 오셔야 하는데, 더구나 더욱 힘이 세지고 무거워지는 아이를 감당하기엔 연세도 있으신데 괜찮으실지 걱정이 앞섰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은 없었다.

장모님이 올라오신 지 그렇게 두 달째가 되어간다. 전과 동일하게 아빠는 여전히 아이의 등원을 위해 아침마다 전쟁이다. '뽀로로'와 친해진 아이는 TV 앞을 떠날 줄 모른다. 잠에서 깬 아이는 아직도 더 자고 싶은 건지 출근 준비하는 엄마와 아빠에게 매달려 떨어질 줄을 모른다.

"엄마 갈게. 이따 보자!"

부랴부랴 엄마는 출근길에 오른다. 아이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의 팔을 들어 윗옷을 입히고 은근슬쩍 눕혀 기저귀를 새로 갈고 그 위에 바지를 입힌다. 아이 역시 등원 준비를 마치면 난 또다시 출근하기 위해 마무리 준비를 한다. 나가자고 해도 온전히 '뽀로로 세상'에서 나올 줄 모르는 아이. TV를 끄면 다시 떼를 쓴다. 어쩔 수 없다. 어린이집에는 늦어도 아빠는 9시에 맞춰가야 하니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간다. 카시트에 앉혀 어제 그랬던 것처럼 어린이집으로 달려간다.

'똑똑똑'

어린이집 문을 두드리자 선생님이 나와 아이를 반기며 안아주신다.

"아빠한테 안녕해"

난 도망이라도 치듯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손을 뿌리치며 다시금 출근길에 오른다.  


"심쿵아! 오늘도 다른 아이들하고 잘 놀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너 썸 타는 여자 친구가 있다던데? 아빠랑 엄마는 온통 우리 아이 생각뿐이란다. 아프지 말고 씩씩하게 잘 자라주렴!!"


※ 아이를 키우고 계시는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고모, 도우미 아줌마들까지 모두 고생이 많으십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환경에도 잘 자라 주는 아이에게 감사할 뿐이네요! 부디 모두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바랍니다!


아이와 함께 처음 타본 제주행 비행기

https://brunch.co.kr/@louis1st/214

아이와 함께한 후쿠오카 여행기

https://brunch.co.kr/@louis1st/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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