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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May 13. 2019

짜증내서 미안해 그리고 축하해

#11. [아이의 생일] 미안하고 고마웠던 지난 시간들

아이가 태어난지 1년이 지나고 2살이 되었다.

아장아장 그리고 뒤뚱뒤뚱 어설프게 걸어 다녔던 아이는 이제 제법 자신의 몸을 다룰 줄 안다. 넘어지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수도 없이 주저앉았지만 그것은 단지 두 발로 일어서기 위한 과정이고 절차였을 뿐. 

"그래, 아빠도 그랬단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는 좁은 집에서도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닌다. 장난감도 많은데 굳이 엄마, 아빠의 물건을 집어 도망치듯 뛰어다닌다. 그럴 때마다 아파트 고층에 사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창 에너지가 넘쳐날 때라 그런지 하루 종일 바깥에 나가 뛰어놀아도 지치는 법이 없다. 

햇살 가득한 주말, 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중얼중얼 옹알이를 하며 놀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제법 컸다'라고 몇 번이나 되뇌기도 한다. 


아가야, 왜 이렇게 잠을 못 자니?

아이는 유독 풀잎을 좋아했다. 파릇하게 돋아난 나뭇잎을 뜯어 신기한지 손에서 놓질 않았다. 여름 내내 무더웠던 기억이 매미 소리가 잦아들어 사라지듯 또 한 편의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낙엽이 떨어지며 거리를 가득 메우는 계절이 되었다. 바스락 거리며 휘날리는 낙엽들의 파릇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싹 말라 가루가 되어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계절의 변화,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함께 아이 역시 무럭무럭 자랐다. 10kg도 되지 않아 한 손으로 들어도 무리 없이 가볍게만 느껴졌는데 이제 두 팔이 느끼는 아이의 무게감이 내 어깨에 올라온 '아빠'라는 책임감과 비슷해져 간다. '초보 아빠'라는 노란색 스티커가 아직까지 떼어지지도 않았는데 난 과연, '아빠'로서 잘하고 있는 걸까?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 이젠 충분히 익숙해졌어요.

아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등 센서'는 아이의 여섯 번째 감각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빠나 엄마 품에 안겨 잘만 자던 아이가 등만 닿게 되면 울거나 잠에서 깬다는 의미다. 물론 아빠인 나도 그러한 시기가 있었을 터, 우리 아이 역시 '등 센서'의 감각은 매우 예민했기에 잠을 재울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아이를 토닥토닥 거리며 트림을 하게 만들고 이내 잠이 들면 한참 동안 안고 있어야 했다. 소화가 충분히 됐을 법 하지만 눕힌 후에도 토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로 인해 부모의 품이 더욱 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 아이는 정해진 시간마다 잠에서 깼다. 어두운 밤이 되고 차가운 새벽이 오면 모두가 잠이 들기 마련이지만 아이는 달랐다. 모유 수유가 끝난 이후에도 적당한 온도의 물을 분유가 채워진 젖병에 붓고 잘 섞은 후 물려줘야 했다. 미처 닦지 못한 젖병은 쌓여갔다. 하루 종일 몇 번이나 젖병을 닦고 열탕 소독을 한뒤 그것도 모자라 소독기에 넣고 마르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다시 분유를 채워 먹이는 일들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아이가 잘 자라면서 분유를 먹는 주기가 점차 벌어지긴 했지만 새벽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출근을 해야 하는 아빠도, 하루 종일 아이를 보고 집안 정리를 해야 하는 엄마도 피곤함과 초췌함이 매일 반복되기 시작했다. 


하루는 새벽에 우는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왔다. 모두가 잠을 자는 새벽3시. 똑같이 젖병을 물리면 금방 울음을 멈추지만 금방 잠에 들지 않아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휴, 너 진짜 왜 이렇게 잠을 못 자니?"

피곤한 나머지 화가 치밀어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짜증을 내곤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웃고만 있었다. 아빠는 아이를 향해 그만 짜증을 냈던 것인데 아이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도 그냥 웃을 뿐이다. 어두운 거실에서도 그 웃음이 보였다. 그 환한 미소에 화를 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직은 너무도 어린 아이 그리고 매우 자연스러울 수 있는 잠투정이었을텐데. 그리곤 다시 아이를 안아 한참동안 거실에 서있었다. 창 밖은 아직도 어두웠다. 아침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햇살 가득한 주말, 곤히 낮잠을 자는 아이.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에게 다시는 짜증 부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봤다. 본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거늘. "오냐오냐" 키워도 문제라지만 모든 걸 받아주는 것과 아이를 향해 화를 내고 때리는 것, 엄하게 다스릴 줄 아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닐까?



3살이 되어 맞이하는 두번째 생일

아빠가 아이를 바라보며 그 모습과 일상을 매일 같이 쓰고자 했던 '일기장' 같은 이 공간. 

하얗게 비어있는 이 페이지를 빌어 어제 그리고 오늘 아침에 출근하며 보았던 아이의 모습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며 하루하루의 기록을 써보고 싶었지만 마음은 굴뚝 같고 의지는 박약하며 행동은 더디었다. 글자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한 페이지를 완성할 때쯤이면 이미 멀리 지나가버린 시간들.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인 시간들을 하나 둘씩 끄집어내 기록으로 남기고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소복하게 쌓인 눈처럼 하얗게 자라다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우리의 삶은 너무도 크게 변했다. 쉽게 잡을 수 없는 저녁 약속, 일주일에 한번씩은 찾아갔던 영화관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어디론가 달려가는 자동차 안에서는 아이의 장난스러운 발길질이 이어진다. 조금 오래 지나면 옆에 앉아있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릴 때도 있다. 최근에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아무런 투정없이 얌전하게 앉아있는 편이다. 

Happy Birthday to my son!

하루에도 여러 번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더구나 '아빠'가 된 입장에서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그래 나도 아빠였구나"하는 느낌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3살이 되었고 두번째 생일을 맞았다. 작은 케이크 위에 촛불들이 어둠을 밝힌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건강하게 자라달라고, 두번째 생일을 축하한다고 서로에게 박수를 보낸다. 

2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길게 잠을 자지 못한다. 엄마, 아빠가 하는 이야기를 분명히 알아듣고 있지만 아직 옹알이 수준이다. 투정도 꽤 늘었다. 잘 걸을 수 있음에도 낯선 공간이면 늘 안아주는 아빠의 바지를 끌어당기며 안아달라고 떼를 쓴다. 매일 같이 어린이집에 가지만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신나게 논다고 한다. 주말이 되면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나가려고 하는 편이다. 아직 아이가 보지 못한 세상이 너무도 많다. 아이가 경험하게 될 그 세상, 그리고 그 시간에 아빠가 늘 옆에 있어주려고 한다. 

누군가의 결혼식장, 품에 안긴 아이

어제도 아이는 온갖 떼를 부렸다. 엄마, 아빠가 밥을 먹는 시간동안 아이는 TV를 보거나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혼자' 놀았다. 밥을 떠먹여주긴 했지만 한두번 먹더니 그마저도 먹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투정을 부린다. 혼자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제법 컸다'라는 생각과 함께, 때론 같이 놀아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 글과 사진 : pen잡은루이스


심쿵아, 24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잘 자라줘서 고마워. 아빠가 가끔 너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낼 때가 있긴 하지만 '모두가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란다. 사실 아빠도 부모님에게 같은 소리를 듣고 자라긴 했지만 그건 정말 '나를 위한 '것이었단다. 앞으로 우리가 지내야 할 시간들이 더 많단다. 그리고 너가 경험하게 될 이 세상의 수만가지를 우리가 함께 부딪혀보자! 지금도 그래왔듯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라다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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