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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Sep 27. 2017

산후조리원 그 후 그리고 작은 변화

#6 생후 17일차, 그의 짧은 여행

퇴근길.

회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인데 병목현상으로 차가 몰려 옴짝달싹 하지 않는다. 신호등의 녹색 불빛 아래로 수많은 차량들의 빨간등이 아이러니한 조화를 이루는 퇴근 러시. 산후조리원으로 가는 이 길도 이제 얼마 후면 끝이다. 조리원에서 보낸 14일이 그렇게 빨리 지나갈 줄은 몰랐다.


저녁 7시만 되면 신생아실에 모여있던 아기들이 해산이라도 하듯 잠시나마 엄마 품으로 돌아오는 소중한 시간.

오늘은 얼마나 자랐을까? 오늘은 날 알아볼까?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제일 먼저 보게 된다. 오늘 하루 몸을 짓눌렀던 일과의 무게감이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새근새근 평온하게 입을 오물거리며 오늘도 꿈을 꾸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아니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만큼의 아주 작은 미세함이지만 오늘도 조금씩 자란다.


우리 아이에게 배꼽이 생겼어요!

분만실의 고요한 정적을 깨우던 우리 아이의 힘찬 울음소리가 떠오른다.

간호사가 큼지막한 의료용 가위를 쥐어주며 탯줄을 자르라고 한다.

"이 정도면 되나요? 여기 맞죠?"

정신없던 와중에 자르는 위치를 물어보고는 조심스럽게 가위질을 했다. 엄마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아 노폐물을 배설하던 통로가 지금 이 시간부터 그 역할을 마친다. 신생아의 배꼽은 아빠가 탯줄을 자르는 그 순간으로부터 약 10일에서 20일 정도가 돼야 비로소 굳게 닫힌다. 남아있는 탯줄은 집게로 어느 정도 유지되다가 약 10일이 지나면 딱딱하게 변하면서 떨어진다. 그게 바로 '제대 탈락'이다.

우리 아이는 13일이 지나 남아있던 탯줄이 떨어졌다.

조리원에서 받은 제대탈락 축하메시지! 감사합니다! 기특하다, 심쿵아!  by Pen잡은루이스

탯줄이 떨어진 이후 며칠간 그리고 집게가 탯줄을 유지하고 있는 기간 동안 철저하게 관리해줘야 염증이 생기지 않는다. 알콜로 소독을 해주는 경우가 가장 흔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스럽게 말리는 것이 방법이라고 하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배꼽에 물기가 없도록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만일 생후 3~4주가 지나도 제대 탈락이 없거나 진물이나 피가 나오는 경우엔 소아과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심쿵아, 목욕하자!

생후 11일차.

산후조리원 직원분이 신생아 목욕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아이를 안고 들어왔다.

아기용 오일과 샴푸, 목욕을 위한 욕조, 수건 2개를 준비한 후 아이를 어떻게 씻기는지 일대일 강의가 시작됐다. 난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러나 실제 그렇게 따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전문가다운 능수능란한 손놀림에 아기의 모습은 그저 평온했다. 물론 울기도 했지만.

제대 탈락 이전에는 통목욕보다 수건에 물을 묻혀 얼굴을 닦거나 몸을 닦아주기도 한다. 신생아라면 1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약 2~3회 목욕을 시킨다. 피부가 건조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자주 하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가 조금 묻어있다고 해서 박박 문지르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잘 닦아주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때가 있어 금방이라도 떼어주고 싶기는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신생아의 경우는 이른바 태지(胎脂)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는 태아의 표면을 덮고 있는 일종의 보호물질로 이해하면 좋다. 태지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니 지저분해 보인다고 해서 억지로 뜯어내면 좋지 않다. 그저 기다릴 뿐.

"그래 없어지겠지!"

겹겹으로 싸여있는 포대기와 배냇저고리, 기저귀를 벗겨내니 불편함을 감지하고는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따뜻한 물로 발을 먼저 적시고 어느 정도 지나니 그 따스함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곧 평온해지면서 온전히 몸을 맡기는 아이. 10분 남짓 뽀송뽀송하게 씻겨낸 아이를 다시 멍하니 바라만 봤다.

우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하품입니다. 목욕 후 더욱 나른해진 심쿵이의 하품. Canon F1.4 by Pen잡은루이스

목욕을 하고 나면 사람들 누구나 그러하듯 이 녀석도 나른해진 모양이다. 떼를 부리며 울다가 다시 이렇게 잠을 청한다. 연신 크게 하품을 하더니 달콤한 잠에 빠졌다.


아기 건강에 있어 모유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심쿵아, 밥은 먹고 자야지"

실제 분유통을 보게 되니 영양성분에는 뭐가 있는지, 어떤 브랜드가 좋은 건지 꾸준히 구글링을 했다. 부모의 마음이란 것이 이런건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의 부모 역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물해준 것처럼 우리의 아이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 부모라는 이름표를 달고 이제 막 출발선을 떠났을 뿐이지만 신생아들에게 있어 먹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그런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내 아이니까!


수많은 브랜드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분유가 최고!', '가장 모유와 유사한 분유!'라고 떠들고 있으니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조리원에서 주는 분유를 따뜻한 온도의 물로 잘 섞은 후 아이에게 먹였다. 분유의 분말이 잘 녹을 수 있도록 흔들어줘야 하며 거품이 없도록 가라앉혀야 한다. 거품이 있는 경우 공기를 함께 흡입하게 되어 소화 불량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위 아래로 마구 흔드는 것 보다 두 손바닥을 모아 좌우로 빙글빙글 돌려주는 것이 좋다.

심쿵이는 대략 1회 80cc에서 100cc를 먹었다. 수유 후에는 아이를 안고 잘 소화될 수 있도록 등을 두드리며 트림을 시켰다. 트림을 하기도 전에 잠에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이긴 했으나 한번 트림을 하면 어른인 나보다 더 거창한 소리를 냈다. 오늘 윗사람들과 함께 했던 점심의 부담감과 체기(滯氣)가 싹 내려가는 느낌. 나까지 소화되는 기분이다.

분유 먹는 심쿵이. Canon F1.4 by Pen잡은루이스..

신생아들은 위(胃)나 장(腸) 등 신체 장기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 있어 소화도 중요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수유를 해야 한다. 반복적인 수유는 평일과 주말, 밤낮 가리지 않는다. 결국엔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할만큼 울어댄다. 하루에 10번 내외로 수유를 해야 하고 자다가도 일어나서 수유를 해야 하므로 엄마의 역할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아내는 새벽에도 신생아실로 불려갔다.

잘 자라, 우리 아가. by Pen잡은루이스

엄마의 모유가 가장 좋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출산 직후부터 모유가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젖을 빠는 것 역시 본능이긴 하지만 처음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듯 했다. 아빠인 내가 눈으로 봤을 때도 그러한데 어떻게든 먹여보려 애쓰는 엄마와 본능과 달리 아등바등하는 아기는 오죽하랴.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도 아이도 그 상황에 익숙해지고 비로소 가까워진다. 능숙해진 엄마와 함께 아이 역시 자연스럽게 모유에 적응해간다. 엄마의 위대함과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수유라 하면 기본적으로 아기가 배가 고팠을 때 먹어야 하는 것이며 한번 수유할 때 충분히 먹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분유 수유의 경우, 한가지 브랜드로 꾸준히 먹이는 것이 바람직하고 엄마의 체온과 가장 가까운 온도의 '맹물'로 잘 녹여서 먹여야한다. 산양분유나 두유가 좋다는 말도 있지만 오히려 일반 분유를 권장하고 있다. 물론 모유보다 좋은 것은 없다.

생후 17일차, 짧은 여행

조리원에서 퇴원하는 날이 되었다.

아이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다. 평일 오전, 조리원 앞 도로 위로 수많은 차량들이 오간다. 여느때와 같이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정신 없는 하루가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마냥 화창한 날이 되겠지.

"심쿵아, 이제 우리집에 가자!"

아이가 엄마 뱃속으로부터 나온지 정확히 16일만에 집에 가게 되는 날이다.

그동안 아이를 보살펴주셨던 분들이 계시지 않으니 이제부터 육아는 온전히 엄마와 아빠의 몫이 되었다.

집에 돌아온 후 여행에서 돌아온듯 짐을 정리하고 그간 밀려있던 빨래를 햐려고 하니, 조용히 잠만 자던 아이가 한참을 울어댔다.

어디가 아픈건 아닐까? 준비해두었던 체온계로 열도 재보고 안아서 달래주기를 무한반복했지만 그치질 않았다. 배가 고픈걸까? 분유를 타서 시도도 해보고 엄마가 다시 안아주며 모유수유를 해보기도 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환경이 바뀐 탓인건 아닐까? 조금씩 조금씩 평온을 되찾아가며 잠잠해졌다. 지친 모양이다.

빨래를 겨우 마친 후, 저녁 준비를 했다. 집에 와서도 메뉴는 바뀌지 않았다. 미역국을 정성스레 끓인 후 밥을 먹으려고 했으나 아이의 울음이 다시 시작되었다. 조금 아까 있었던 행동들의 반복. 조리원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싶을 정도였다. 시간은 점점 지나가고 팔팔 끓었던 미역국도 차가워져갔다. 결국 아이가 집에 온 첫날은 저녁도 굶고 밤새 아이를 달래주며 시간을 보냈다.

"아, 이래서 조리원이 천국이라고 하는구나"


생후 17일차.

아이는 엄마와 함께 대전에 있는 처가에 가기로 했다. 생후 1개월도 되지 않는 아이를 태우고 고속도로 위를 달려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본래 계획했던 것이기에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우리는 너무도 피곤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야말로 피곤에 찌들었기에 눈 좀 붙이라고 말하고는 난 진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화창한 날, 바람이 몹시도 불었다.


아이에게 있어 주변의 모든 세상들을 처음 접하는 이 순간. 이 녀석 역시 밤새 울어댄 덕분인지 고요하게 잠을 자고 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약 3시간 가량 아이는 잠에서 깨지 않고 종일 잠만 잤다.
심쿵이는 그렇게 짧은 여행을 했다.


"심쿵아, 오늘도 잘 자라줘서 고맙다! 마음껏 울어도 좋다. 아빠도 엄마도 그랬을테니. 힘차게 울어주는 것, 너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켜주는 자연스러움이다! 근데... 자니?! 그래, 그것마저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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