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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ul 05. 2017

우리 아이와 마주한 감동의 순간, D-day

#4 엄마는 위대하고 출산은 경이로우며 아이는 신이 주신 축복이다

4월 11일. D-4. 예정일까지 앞으로 4일이 남았다.  

길거리에 피어난 아름다운 벚꽃들이 봄이 자연스레 안착했음을 알린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화창한 봄 날씨가 설렘마저 느끼게 해준다. 해가 뉘엿뉘엿 자신의 모습을 감추자 살짝 날이 추워진다. 퇴근시간에 몰려드는 사람들과 수많은 차량들이 도로 위를 가득 메운다. 퇴근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컨디션 괜찮았어? 저녁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들쑥날쑥한 진통 주기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오래간만에 감자탕이 먹고 싶다고 해서 근처 감자탕집을 검색한 후 포장을 해갔다. 팔팔 끓는 감자탕의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밥을 다 먹고 나니 하루 종일 회사에서 전투라도 치른 듯 나른함과 피곤함이 급습했다. 


"이상해. 배가 조금씩 더 아픈 것 같아"

저녁을 먹고 약 1~2시간이 지나자 아내는 진통 주기가 갑자기 짧아진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얼마나?"

1시간에서 30분으로 그리고 다시 20분에서 10분 정도로 짧아졌다가 어떨 땐 5분이 되기도 했다. 가진통과 진진통 사이에서 불규칙했어도 그 주기는 점차 짧아졌다. 

밤 10시 반이 되어갈 때쯤 그 주기는 10분을 넘지 않았다. 병원에서도 10분 이내로 주기가 찾아오면 지체 없이 오라고 했다. 

초산인 데다가 예정일보다 4일이나 빨랐고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들었지만 돌아오더라도 병원에 가자고 했다. 

아내는 출산과 함께 조리원에 머무는 기간 동안 필요한 '출산 가방'을 며칠 전부터 미리 싸기도 했다. 그 짐을 한가득 차에 싣고 병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대략 20분. 우리의 마음을 알았는지 도로 위엔 차도 별로 없었고 신호등도 파란 불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긴박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조마조마했다. 


진통의 시작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진통 주기를 물었고 초음파를 통해 바로 상태를 확인했다. 

"일단 조금만 대기해주세요. 조금 있으면 주치의 선생님이 오실 겁니다"

자궁이 약 1~2cm 정도 열려있다고 했고 병원에서도 출산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 드디어 우리 아이를 만나게 되는 건가?'

기분이 묘했다. 더구나 엄습했던 피곤함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궁이 어느 정도 열리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대략 1cm 개방에 1시간이라고 하니 그만큼 산모도 아이도 힘든 시간을 견뎌야만 한다. 

바로 옆 분만실에서는 어느 산모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몇 분이 지나자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아빠들의 모습도 보였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고 있는 어느 아빠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고 몇 시간 후의 내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다. 

어느새 자정을 넘기고 새벽 1시, 새벽 2시. 그렇게 시간이 흘러만 갔다. 

자궁 개방과 함께 그 고통은 더해져만 가는 듯 보였다. 

몇 달 전, 절대 놔주지 않는다는 무통주사를 주치의에게 부탁했었고 꼭 놔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단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진통이 올 때쯤 무통주사를 통해 조금씩 완화시킬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무통주사로 인해 자궁이 열리는 시간을 지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내는 무통주사가 있어 그나마 참을만했다고 한다. 

바람도 쐴 겸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오라며 이내 잠들어버린 아내. 

새벽 공기가 차갑다. 한적한 길거리에는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과 트럭, 텅 빈 버스만이 오간다. 


비로소 우리 아이와 마주하는 그 찰나의 순간

새벽 시간이었으니 밤샘 근무하는 몇몇 직원들만 보였을 뿐 복도도 로비도 모두 조용했다. 

가장 어두웠던 새벽의 어느 순간이 지나자 새들이 지저귀며 아침을 깨운다. 

다시금 북적거리는 공간과 그 시간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간호사와 의사들. 

주치의가 들어와 힘을 내라는 듯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잘 하고 있고 아기도 잘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면 금방 아기 볼 수 있을 거예요"

그 한마디가 어찌나 편안한지.

몇 분 뒤 건장한 치프(레지던트 4년차급) 선생이 들어와 간호사와 함께 출산의 과정을 돕는다. 

"자, 남편분께서 아내분 목 좀 잡아주시고 같이 호흡할게요"

무통주사의 효과도 무색할 만큼 아내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참아내며 다시 내뱉기를 무한 반복했다. 자궁도 꽤 열린 상태였다. 점차 출산이 임박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 조금만 더 해볼게요"

머리는 보이는데 아직 완벽한 단계는 아니라고 했다. 아내는 잠재해있는 그 힘까지 최대한 끌어올렸다. 

대변 본다는 느낌으로 힘을 줘야 한다고들 하지만 아이를 낳기 위한 그 순간의 고통과 집중력이 생리현상과 비교할 수 있을까? 감히 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병원에 온 지 11시간이 되었다. 피곤함도 배고픔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전 10시가 되자 주치의가 분만실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한다. 

자궁도 어느 정도 개방되었고 조금만 더 힘을 내면 금방 아이와 만날 수 있을 거라 한다. 

그리고 30분이 흘러 어느새 10시 30분. 

아내는 주치의를 포함해 여러 간호사들과 함께 분만실로 들어갔다. 주치의는 그간 드라마에서 보듯 손을 박박 닦고 마스크와 방진복을 입었다. 분만실 앞 복도에는 전운마저 감돌았다. 나 역시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 속에서 방진복을 입고 들어갈 준비를 했다. 

"아빠 들어오세요"

흔한 수술실의 분위기 속에서 의사, 간호사 등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자 마지막으로 힘을 내봅시다"

의사는 '파이팅'을 외치는 듯 아내와 나 그리고 곧 세상의 빛을 보게 될 우리 아이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조금만 더요!"

아내는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내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자, 치프가 위에서 조금만 더 눌러봐. 이쪽 옆으로 와서 이것 좀 잡아주시고. 자, 세팅하시고 아이 받을 준비 하세요. " 

주치의의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 같았고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

"오전 10시 40분, 아기 나왔습니다. 아들입니다." 

드디어 아이가 나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한 몇 초가 지나가고 있다. 내 숨소리만 서서히 들려온다. 아이의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어주고 엉덩이를 몇 번 툭툭 치자 그 작은 생명체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고요했던 분만실의 정적을 깨운다.

"응애. 응애"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아이와 마주했다. 39주 3일째, 무려 276일간 엄마의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온 우리의 아이가 11시간이 넘는 진통 끝에 엄마 그리고 아빠와 만나게 되는 그 감동의 순간을 우렁찬 울음으로 인사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아픔도 고통도 다 잊은 채 아이만 바라봤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이는 그야말로 '핏덩이'가 되어 저울에 올라갔고 세상에 나온 신고라도 하듯 발도장을 찍었다. 

키 50cm, 몸무게 3.11kg.

심쿵이라는 태명을 가진 우리의 아이가 우리와 마주한 그 감동의 순간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신생아실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참을 울다가 어느새 잠잠해진 아이는 그저 눈을 끔뻑 거릴 뿐이다. 

'이렇게 작은 아이가 내 핏줄이구나, 내 아이구나'

가진통과 진진통의 오랜 시간을 버티며 태어난 아이와 그 시간을 감내하며 찢을듯한 고통을 이겨낸 아내에게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해주고 싶다. 


아내는 회복을 위해 입원실로 들어갔고 아이는 신생아실로 짧은 만남과 이별을 하게 되었다. 태어난 바로 그 날은 몸을 씻기지 않는다고 한다. 오전 10시 50분쯤 신생아실로 이동한 아이는 오후가 돼서야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세상이 궁금한 아이는 여기저기 쳐다보기 바쁘다. 아직 초점도 흐릿한 신생아임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의 눈을 마주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 눈빛은 똘망똘망하고 작은 입의 오물거림과 울음소리마저 반갑고 사랑스럽다.

"한번 안아보세요"

아이를 건네는 간호사의 노련함에서 아직은 어설프고 조심스러운 내 손으로 '따뜻한 가벼움'이 이어진다. 조심스럽게 한참동안 아이를 쳐다봤다.  

'오늘부터 1일'

'심쿵아.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고마워. 너의 작은 손가락, 발가락. 작디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사랑스럽다. 오늘부터 너와 1일째. 앞으로 수많은 세월들을 너와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니 행복할거야! 사랑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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