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세상의 밝은 빛을 보게 된 우리 아이 그리고 초보 아빠
몽롱하다.
어른어른 희미한 병원 복도의 불빛이 원래 이렇게 흐릿한 색이었나 싶다.
벌써 몇 시간째 뜬 눈으로 우왕좌왕 헤매고 있다.
11시간 이상 가진통과 진진통을 오가며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낸 아내는 수액을 맞으며 누워있다.
마침내 세상의 빛을 처음 보게 된 우리 아이는 신생아실에서 다른 친구들과 나란히 누워 새근새근 평온하게 자고 있다.
40여 시간이 지나도록 이렇게 이틀을 지내본 게 얼마만이던가? 허나 배도 고프지 않았고 그렇다고 딱히 잠이 쏟아지지도 않았다면 거짓말일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라는 낯설지 않으면서도 때론 어색했던 이 한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새삼 느낀다. 마치 구름 위에 올라온 듯 몸이 둥실둥실 떠있는 기분이 참 묘했다.
신생아실로 들어갔던 아이는 약 6시간이 지나서야 아주 잠깐 병실로 들어왔다.
"한번 안아보세요"
"괜찮을까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아이를 안았다. 3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아이의 체중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이 작은 생명이 눈을 깜빡거리고 숨을 쉬고 있다.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며 인사를 하는 듯했다.
정신없었던 3일간의 병원 생활
찰나의 순간으로 마주했던 핏덩이의 아이는 다시 신생아실로 돌아갔다.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다며 열 일 제쳐두고 달려오신 부모님은 신생아실 유리창을 통해서 겨우 얼굴만 확인했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무심하고 냉정하게 커튼이 닫혔다. 멀리서 오신 부모님은 그 짧은 시간의 만남마저도 매우 기뻐하셨지만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셔야 했다.
"나중에 또 보자! 그땐 얼마나 커있을꼬"
정신 없던 하루가 저물고 밤 11시가 되었다. 만 40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보조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으니 바로 잠이 쏟아졌다. 새벽이 되니 6인실의 병실에서 부스럭대며 정적을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깬 나는 비몽사몽으로 길게 스트레칭을 했다.
아직도 꿈을 꾸는 것만 같다. 눈을 뜨니 병실이고 신생아실 문틈으로 아기들이 보인다. '진짜'구나.
아침이 되자 분주하게 돌아가는 병원 복도. 밥 냄새를 몰고 다니는 아줌마들이 식판을 들고 인사를 하며 식사를 건넨다.
"맛있게 드시고 기운 차리세요!"
이후 의사와 간호사가 우르르 회진을 돌며 몸상태는 어떠냐고 묻는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사항을 이야기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고 진지하게.
"처음 소변이 마려워서 화장실을 가시게 되면 남편분이 꼭 따라가 주셔야 돼요. 극한의 어지러움이 올 수 있으니 정말 정말 주의하셔야 돼요. 꼭 조심하셔야 됩니다. 꼭이요!"
솔직히 '극한'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몸에서 온도와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이니 잠깐 어지러울 순 있겠지만 이는 그보다 수 배 이상의 어지러움을 동반하니 반드시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다가왔다.
어지럽다고 말하는 아내의 말에 손을 꽉 붙잡았다.
"괜찮아?"
일어나면서도 어지럽다고 말하는 아내.
겨우 화장실 문 밖으로 나왔다. 침상에 다시 가려는 순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아내를 있는 힘껏 붙잡았다.
급하게 간호사를 불렀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저기.. 여기요! 좀 도와주세요!"
다행히 바로 옆에 간호사가 있었고 뒤이어 몇 명이 더 들어와 아내를 보조침대에 눕혀 깨웠다. 겨우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 아내를 부축하고 침상에 눕혔다. 1분~2분이라는 굉장히 짧은 찰나였지만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기억 안 나? 큰일 날 뻔했어."
"아니, 기억이 안 나. 근데 지금도 어지러워."
아무래도 출혈이 심했고 오랜 시간 진통을 감내해야 했으며 누적된 피로로 인한 후유증인 모양이다.
여러모로 몸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 숟가락씩 힘겹게 밥을 먹는 아내. 그 앞에 놓인 메뉴는 다름 아닌 미역국이다. 누군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미역국의 모든 종류를 섭렵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그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이다. '시작이구나'
밥을 먹고 나니 신생아실에서 호출이 왔다.
"아기 젖 물릴 시간이에요"
처음부터 젖이 나오는건 아니지만 아이와 엄마가 서로 익숙해질 수 있도록 스킨십을 하는 중요한 시간들이다. 아내가 수유실로 들어가기 전 뽀얗게 씻고 나온 우리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평화롭게 곤히 잠든 아기의 뽀송뽀송한 얼굴이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그저 잘 생겨 보이고 마냥 사랑스러울 뿐! 한참을 신기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고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아이의 움직임과 울음소리를 느끼며 비로소 '엄마'라는 자리에 앉았다.
정신없던 3일. 어느덧 퇴원할 날이 다가왔다. 3일 동안 돌봐준 신생아실의 간호사 한분이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푹신 거리는 포대기에 아이를 감싸 부모에게 건넨다.
"가서 무럭무럭 자라라. 예쁘게 키우세요!"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하고 그렇게 병원을 나왔다.
내리쬐는 태양빛의 따뜻함과 봄이라는 계절의 산뜻한 공기를,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 우리 아이는 품에 안겨 다시 잠에 빠졌다.
"와, 아기다. 아기! 나보다 작아"
주변에 있던 아이가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보며 마냥 신기해한다. 주변 사람들도 그러한데 우리는 오죽하랴.
아빠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제 시작합니다
평일 낮인데도 도로 위는 차량으로 가득 찼다. 심지어 점심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사람들로 인해 길거리가 북적거린다. 하늘은 여지 없이 맑고 광화문 앞은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여느때와 같이 평범한 날이지만 기분 좋은 오후다.
"심쿵아. 이게 바로 너와 함께할 세상이란다!"
병원에서 산후조리원까지는 약 5km. 15분이면 또 다른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아이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조리원 입구에 들어서자 원장이 나와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바로 신생아실로 직행했다. 난 아내를 부축해 우리가 14일간 머물게 될 공간에 들어섰다. 온통 아이와 산모를 위한 공간으로 꾸며진 이 곳.
14일 동안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주의사항은 무엇인지, 아이는 어떻게 케어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무거웠던 몸을 소파에 맡겼다.
창 밖을 보니 인왕산이 보인다. 인왕산 저 끝에서 내려오는 공기마저 상큼하다. 슬슬 잠도 온다.
"아직 밥을 안 드셨을 테니 점심 챙겨드릴게요"
그리고 몇 분 뒤 식사가 들어왔다. 역시나 미역국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출산을 하게 되면 산모의 몸은 출혈로 인한 혈액 부족과 몸의 기능 저하로 반드시 산후조리가 필요하다. 산후조리 중 미역은 요오드 성분이 많아 이 성분이 혈액을 보충해주고 더불어 맑게 해주기도 한다. 특히 젖의 분비를 돕고 붓기도 가라앉힌다고 한다. 그냥 단순한 미역국을 먹게 되면 분명히 질릴 수 있을 테니 온갖 종류로 만들어진다. 가령 사골 미역국, 소고기 미역국, 홍합 미역국, 성게 미역국과 같이 말이다.
난 딱히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산모인 아내는 미역국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이 곳은 하루에 딱 두 차례 아이와 함께 하는 모자동실 시간이 있다. 오전 10시쯤 약 1시간, 저녁 7시쯤 약 2시간 남짓.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저녁이 들어왔다. 대충 저녁 식사가 마무리 될때쯤 "아이 왔어요!"라며 문을 두드린다. 품에 안겨 편히 잠을 자는 아기를 아주 작은 신생아침대에 눕혔다. 곧 이 침대의 공간이 꽉 찰 정도로 무럭무럭 자라게 되겠지.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호출하세요"
그리곤 잠을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다. 길게 뻗은 속눈썹, 오똑한 코, 오물거리는 입. 손바닥을 쫙 펴고 아이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눈대중으로 확인했다. 한 뼘, 두 뼘. 그래 딱 그정도다.
"작다. 작아!"
본래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도록 꽁꽁 감싸져있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불편했다. 이녀석은 괜찮은거겠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긴장되는 순간.
어떡하면 되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린 일단 아이를 재빨리 안았고 따뜻한 온도의 젖병을 입에 가져다댔다. 그러나 먹지 않았다. 분명히 어느 정도 먹이고 왔다고 했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토닥토닥 거리기를 몇 분, 뒤이어 기저귀를 확인했다. 색이 변해있는 기저귀를 확인하고 어설프게나마 기저귀를 갈았다. '아 불편했나보다.' 점차 잠잠해진 아이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여기저기 마치 우리와 눈을 마주치는 듯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심쿵아, 아빠야!"
이 곳 저 곳, 처음 보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잘 있는 듯하다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한 "응애, 응애"라는 울음소리가 명확하게 귀에 꽂혔다. "진짜 응애응애 하고 우네?"
신기함도 잠시, 다시 아이를 안았다. 기저귀는 갈았으니 배가 고플 수도 있겠다 싶어 다시 젖병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이번엔 놀라운 속도로 빨기 시작했다. 우리의 손으로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이렇게 식사를 마친 아이는 반드시 트림을 시켜줘야 한다고 했다. 아직 신체 기관이 발달되지 않은 상태라 충분히 소화를 시켜줘야 한다. 사실 이 곳의 직원분들이야 능수능란한 전문가답게 아이를 안고 토닥거리지만 난 말 그대로 초보아빠가 아니던가. 그 분들이 그러하듯 그대로 따라했다. 거울을 보며 조심스럽게 어깨 위에 얼굴이 잘 올라오는지 확인하고 아이의 몸집만한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고 쓸었다. 우렁찬 소리의 트림이 나오더니 어느새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하는 우리 아기가 무척 평온해보인다.
그렇게 1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이 시기에 아이가 우는 이유는 배가 고프거나 배변을 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아픈거라고 한다.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고 케어마저 확실하니 아프지 않다는 전제 하에 배가 고파서 또는 배변으로 인한 울음이 전부이긴 했다.
하지만 긴장의 순간은 또 있었다. 누워있던 아이가 먹었던 분유를 갑자기 토해냈다. 처음엔 속이 좋지 않은건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더니 딸꾹질로 이어졌다. 다시 한번 혼란에 빠졌다. 전화를 해야 하나? 일단 울지 않으니 검색을 해볼까? 그때 여기 직원분들이 뭐라고 했던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우선 가재수건으로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주고 분비물까지 치워냈다. 딸꾹질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딸꾹질은 아기의 몸이 느끼는 온도차로 인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아직 숨을 쉬는게 부자연스러운 아기 횡경막의 수축 작용이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목욕 후 추위를 느낄 때, 배변으로 인한 온도 변화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외부 온도에 민감한 피부를 가진 아기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거나 작디 작은 머리에 모자를 씌워주거나 양말을 신기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역시 미리 준비해둔 모자를 씌웠고 수분내로 딸꾹질이 멈췄다. 다시금 평온을 되찾은 아기는 연신 하품을 해대더니 다시 잠에 빠졌다.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직원분이 찾아와 신생아실로 모셔가듯 했다.
"아기 잘 있었죠?"
긴장과 혼란의 시간이 있었지만, "네, 잘 있었어요"하며 태연하게 인사를 했다.
"심쿵아, 내일 또 보자"
마냥 초보인 엄마와 아빠는 숨 쉴 수 있는 온전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아이와 함께한 3일째 밤이 뉘엿뉘엿 지고 있다.
아빠, 엄마 그리고 하늘이 주신 새 생명이 하나의 가족이 되어, 또 다른 인생의 출발선에 서게 됐다. 이제 시작이다.
"심쿵아, 널 만난건 하늘이 주신 축복이야!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잘 싸고 잘 먹고 잘 우는 것 자체가 너의 본 모습이고 건강하다는 증거이니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하품하는 모습도 우렁차게 우는 모습도 어깨에 기대어 평온하게 잠든 모습마저 사랑스럽다. 늘 지금처럼, 그리고 늘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주렴. 언제나 함께할께!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