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첫사랑 같았던 꿈을 꿨다.
달콤 쌉싸름했던 어젯밤 꿈 이야기.
언젠가 친구를 만나 뜬금없이 꿈 이야기를 했다. 대다수 옅기는 해도 선명한 잔상이 있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 어제 꿈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만났어”
“그럼 로또 사야겠네. 조상 꿈은 로또 꿈이라잖아. 숫자는 얘기 안 해주셨어?”
“물어봤으면 알려주셨을까?”
꿈에서나 겨우 마주한 것인데 “그동안 안녕하셨냐”는 안부조차 없이 “로또 번호나 좀 불러주세요”라며 할아버지에게 떼쓰는 꼴은 아닌지. 사실 나는 해몽이나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다. 꿈에 나타난 무의식의 시각적 심상들을 의식이 살아있는 현실에 반영하며 나의 운명을 예측하는 듯한 운세조차 무시해왔다. 꿈이라는 건 과거의 수많았던 잔상들이 무작위로 구성된 무의식의 세계가 아니던가.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며 그 잔상들을 되새김질하려 해도 순식간에 흩어져 아주 깊숙한 곳으로 숨어드는 것 같다. 우주보다 광활한 무의식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테지만 결코 꺼내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글로 남겨두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때때로 달콤한 꿈을 꿀 때가 있다. 깨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설령 중간에 깨어났다고 해도 다시 이어가고 싶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꿈의 세계에서 펼쳐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기분 좋은 꿈이란 무엇일까? 명확한 수치로 표현할 순 없겠지만 사람마다 행복의 지수는 천차만별, 하지만 희로애락을 느끼는 감정의 경계는 대개 비슷하다. 로또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되는 꿈이거나 내가 좋아하던 연예인과 연인이 되어 만나는 꿈 혹은 그리웠던 사람을 마주하는 꿈이라면 달콤한 꿈의 기준이 될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첫사랑 같은 설렘이 꿈속에서 실현되면 무의식 세계라 하더라도 흐뭇한 감정을 오감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난 후 막 이별한 것처럼 가슴 저렸다. 달콤하면서 씁쓸했던 어젯밤 꿈에 대한 기억이 하루를 지배한다. 손에 잡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꿈의 조각들이 지금도 눈앞에서 흩어져 날아간다.
“어제 꿈을 꿨는데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뭐랄까 풋풋했던 첫사랑 느낌 같아”
설렘으로 시작한 첫사랑의 끝에는 상처가 걸려있을 뿐이다. 지금보다 한참이나 어린 시절이었으니 나이만큼은 순수했다고 해도 이별을 외치던 그때의 감정은 서로를 할퀴는 듯 날카로웠을 것이다. 분명 좋았던 기억들이 있다. 선명하긴 해도 좀처럼 꿈에 나타나지 않는 과거일 뿐이다.
누구나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누군가에게 첫사랑에 대한 감정과 기억은 달콤하면서 씁쓸할 것이다. 그걸 오롯이 무의식의 세계에서 경험했지만 꿈은 그저 꿈으로 끝났고 손끝에 남았던 어젯밤 꿈의 파편도 모두 사라졌다. 노을이 지고 있다. 퇴근할 무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