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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May 11. 2016

무작정 떠난 남쪽 마을, 통영 그리고 봉하마을

짧게 적은 '남쪽 마을'의 추억

여행 에세이?

에세이라고 하기엔 볼품없어 보여 '남쪽 마을의 추억'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동안 브런치에 중독된 덕분에 '에세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써놓고 '추억팔이'로 다시 읽어나가는 재미를 즐기고 있다.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 내가 느꼈던 그리고 경험했던 추억과 기억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사진들을 보며 내가 놓쳤던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것도 꽤 흥미롭다.

브런치를 포함한 여행 에세이들을 보다 보면 관심이 가는 여행지, 그곳의 사진,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수많은 여행 에세이 중에서,

난 과연 국내 여행지에 대한 글들을 얼마나 봤을까?


관심이 가는 건 사실 해외 쪽이었다.

그래 봐야 몇 개국 되지도 않는 나라들을 여행한 후,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남기고 보니 '여행'이라는 것을 꼭 해외에 포커싱 해서 써 내려간 것만 같다.




즉흥여행?

내게 남쪽 마을 여행은 매우 즉흥적인 것이었다.

 

"이번엔 해외 말고 국내로 가볼까? 출사 개념으로"

"출사 좋지. 근데 내가 봤을 땐 해외 나가는 돈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 저지르고 보자"


그렇게 저지른 곳이 통영이다. 통영 지역을 쭉 살펴보다가 한산도와 매물도가 눈에 띄었다.

그래, 소매물도. 여기에 가보는 거야!

얼마나 걸리는지, 배가 자주 있는지도 모른 채 통영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또 다른 목적이 정해졌다. 


상하이와 도쿄를 함께 다녀왔던 후배와 3년째 휴가 일정을 맞췄다.

'출사'의 개념이니 카메라와 렌즈, 충전기 등은 필수였다. 

차에 짐을 싣고 대략 160km 떨어진 제천 의림지를 1차 목적지로 설정한 채 후배를 만나러 갔다.

기름을 가득 채우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속도로 위를 신나게 달렸다.  

의림지에 도착해 커피 한잔과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진짜' 여행을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에 통영의 어딘가를 찍고 보니 약 340km.

제천, 단양, 영주, 안동을 거쳐 이어지는 고속도로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제천 의림지에서 출발한 시간이 대략 오후 3시, 통영 도착 예상시간은 8시가 넘었다.

 

"얼마나 남았어?"

"조금만 더 가면 돼!"


그나마 차가 별로 없었기에 가능했다. 아마 차까지 막혔다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서서히 통영에 진입했다. 집에서 출발한지 약 8시간 만이다.


일단 정해야 할 곳은 '숙소'였다.

아무런 정보나 계획 없이 왔으니 편히 잠만 잘 수 있는 곳을 선택할 수밖에.

물론 주차도 가능한 곳으로 말이다.

아주 싼 가격에 모텔을 잡았다. 침대가 원형이었다.

왜지? 왜일까?

우린 짐을 풀어둔 채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미 어둡다.

통영문화마당 쪽으로 이동하니 충무김밥집과 횟집 몇 군데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강구안 통영문화마당에서는 거북선과 더불어 여기저기 켜진 불빛으로 인해 멋진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구안 통영문화마당에서.  다소 흐릿하지만 오른쪽으로 보이는것이 거북선입니다.


통영 강구안의 야경


허기진 배를 스끼다시, 세꼬시 회 한 접시 그리고 알콜로 채운다.

세꼬시 회. 아주 감칠맛 나요.
식당에 붙어있는 통영의 여행지도

다음 날 아침.

우린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으로 중국집에 들른다.


"소매물도 가는 배가 있을까?"

"가야 되는데..."

"지금 시간이..."


미리 알아보지도 못하고 무작정 내려왔던 터라 배 시간에 대해 전혀 감이 없었다.

출발시간도, 도착시간도, 얼마나 걸리는지도.

'자주 있겠지. 그래 봐야 얼마나 걸리겠나' 싶었던 것이 문제였다.

부랴부랴 통영항으로 달려가서 배 시간을 알아보니, 가는 건 문제가 없었으나 돌아올 수가 없었다. 대략 낭패.

망했다. 어쩌지? 내일 가야 하나?

무작정 떠나 이 곳에 왔지만, 눈 앞에서 계획이 틀어지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순 없어 대안을 찾았다. 차를 배에 태워 한산도에 가기로 결정!


위쪽으로 한산도, 저 남쪽 아래가 소매물도입니다.


지도에도 나와있듯, 소매물도는 배를 타고도 한참을 가야 했다.

돌아오는 배가 없는 게 당연했다.

소매물도에 비하면 한산도는 코 앞이었다. 더구나 소매물도보다도 크기 때문에 한산도 내부를 차로 둘러볼 수도 있다.

티켓을 끊고 차를 배에 실었다.

 

통영항 여객터미널의 모습
우리가 탈 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조선소의 웅장한 모습
통영항에 정박한 수많은 배들

수많은 조선소에서 탄생을 기다리는 배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산도로 가는 배, 태극기가 펄럭

한산도로 가는 배는 시원하게 달렸다. 

자, 한장 찍어볼까?
많이 낚으세요.
갈매기 한마리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출발, 거북등대

멀리 한산도의 모습이 보였고 거북등대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작점을 알렸다.

예상대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원한 바람을 한가득 품은 채 달렸던 배는 30여분이 지나자 한산도에 도착했다.

굉장히 한적한 느낌이었다. 

차를 몰고 한산도 땅을 밟았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한산도는 절벽 해안으로 구성된 바위섬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읊었던 시조처럼 한산도대첩을 이룬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산면의 본섬이기도 한 이 곳은 한산면을 이루는 총 29개의 섬 중에서 가장 크다. 


한산도 선착장. 쌓여있는 시멘트는 옥의 티.
한산도의 맑은 하늘


공간이 있는 곳에 차를 두고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보기로 했다. 

높이 약 290미터쯤 되는 한산도 망산은 도서지역의 등산로가 존재한다는 점,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망산과 더불어 한산대첩기념비가 세워진 문어포에서도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관광안내도. 자 어디로 가볼까?


조용한 분위기에서 산책을 할 수 있어요. 뭔가 포근한 느낌입니다.


쉬었다 갈까요?
서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군요.


한산대첩 기념비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이 왜군 함대를 침몰시킨 것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것이다. 


한산대첩기념비


웅잠함. 그리고 그의 넋. 한산대첩 기념비의 모습


활짝핀 무궁화


우린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고 배 시간에 맞춰 천천히 내려왔다. 

평일이라 그랬는지 우리말고는 사람도 잘 보이지 않았다. 

새소리나 곤충소리가 크게 들릴만큼 한적하고 매우 조용했다. 


당시 내 발이 되어주었던 애마, 고생했다. 이 차도 추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다시 차로 돌아와 카메라를 챙기고 배를 기다렸다. 

배 시간이 되자 한두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돌아갈 배를 기다리며


우린 다시 배에 올랐다. 

배는 아까와 똑같이 시원하게 달렸다. 



"우리 이제 어디 가지?"

"글쎄..."

"매물도는 꼭 다시 가보자!"

점점 멀어져가는 한산도 그리고 남쪽 어딘가에 있을 매물도를 뒤로 한채 육지로 향했다. 


우린 이날 부산으로 향했다. 

광안리와 해운대를 돌면서 1박 2일을 보냈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

우린 부산을 출발해 김해로 넘어가기로 했다. 

통영에서 부산까지도 꽤 먼 거리였다. 차도 막혔고 점차 피곤함이 쌓여갔다. 

통영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대략 100km.

해운대에서 봉하마을까지는 다시 55km 수준이다. 

통영, 부산 그리고 김해 봉하마을까지




봉하마을로 가다.


사실 봉하마을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내려오게 된 곳.

당시에는 살아계셨던 하지만 이젠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 입구에서

꼬불꼬불 한적한 도로를 지나 조금 들어가니 노무현 대통령 생가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전거를 타는 큰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다 왔다!"

봉하마을에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봉하마을의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는 사람들. 


오리농법의 시작

작은 개천에서는 오리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그간 방송이나 미디어에서 봤던 것처럼 오리농법에 의한 친환경 논농사를 위한 오리들이었다. 

알려진 것처럼.

오리들이 그 넓은 논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잡초와 해충으로 배를 채우고 오리의 배설물 또한 비료로 활용되는 방식인데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리농법에 각별한 애정을 쏟기도 했다. 

이 곳에서는 오리뿐 아니라 우렁이를 이용한 친환경 농법도 소개된 바 있다. 

한때 조류독감인 AI(Avian Influenza)로 오리농법이 주춤하기도 했다. 

 

꽥꽥꽥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는 굉장히 아담하고 소박했다. 

그 뒤로는 아방궁 논란이 있었던 '사저(私邸)'도 볼 수 있다. 

그때도 그랬지만 '아방궁'이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는 느낌이 더 크다. 

지금은 개방행사가 열려 안으로도 들어가 볼 수 있는데 역시나 '아방궁'은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노무현 대통령 사저


'18시에 나오실 예정입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보였다. 

앞쪽으로는 여러 사람들이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다시 제천을 거슬러 서울까지 가야 했다. 시간이 많지 않은 상태였고 어둑해진 고속도로 위를 올라타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어떡하지?"

"시간이 너무 애매한데. 지금 가도 늦겠다"

"그럼 다음에 올까?"

"그래, 그러자"


그게 마지막이었다. 

부담감과 빡빡했던 시간을 어느 정도 감수했더라면 마지막 모습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18:00시경 나오실 예정입니다"

그 안내문구는 우리에게 마지막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 안동휴게소


내려오기 전 찍어두었던 미터기는 1천 킬로미터에 육박했다. 

하긴 내려가는 길만 해도 400킬로미터가 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넘었다. 

한참을 운전하고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닌 덕분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아쉬움도 함께 말이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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