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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un 03. 2016

영화 <아가씨>  : 배우, 이야기, 비주얼의 시너지

내맘대로 리뷰 #19


박찬욱의 <아가씨>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박찬욱 감독의 손을 거친 이 영화는 사라 워터스(Sarah Waters)의 2002년작 영국 소설 <핑거스미스(Fingersmith)>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펼쳐진 1860년대 빅토리아 시대가 영화로 옮겨오면서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변모했다.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배우들의 대사 자체가 대부분 일본어로 이루어졌다.

참고로 소설 <핑거스미스>는 추리소설로는 드물게 영국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단다.

소설 <핑거스미스>는 2005년 영국 BBC의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소설도 드라마도 접하지 못했던 내게 <아가씨>는 그저 새로운 플롯이었다.


영화<아가씨>의 공식 포스터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조진웅)의 보호 속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에게 어느 날 새로운 하녀 숙희(김태리)가 찾아오게 된다.

숙희는 장물아비 손에서 자라온 소매치기 고아 소녀다. 숙희는 사기꾼 백작(하정우)의 제안으로 아가씨를 유혹해 재산을 가로채는데 도움을 주기로 한다.

숙희와 아가씨, 아가씨와 후견인, 백작과 아가씨 안에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묘한 관계를 전체 3가지 파트로 구분된 옴니버스 형식의 스토리로 이어나간다.


1. 당돌한 숙희, 김태리 그리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히데코, 김민희

아가씨 히데코에게 있어 이모부의 '보호'라는 표현은 플롯상의 단어이자 외형상의 시선일 뿐 실제 느낌을 보면 '감금'이자 '사육'의 수준이다.

보기에도 화려한 모자와 스카프, 서랍장에 겹겹이 쌓여있는 장갑들, 신지도 않은 새 것의 구두, 화려한 패물 등 가진 것 많은 귀족 아가씨에겐 그저 껍데기일 뿐. 그녀가 갈구하는 건 단지 세상 밖으로의 탈출 그리고 자유다. 그 때문에 대저택에서 살고 있는 그녀에겐 하루하루가 '버티는 셈'이다.

각박한 삶 속에서 숙희는 히데코에게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해준다.

그런 그녀로부터 이야기의 1부가 전해진다.

하녀 숙희 역의 김태리

'노출신에 대한 협의 불가'에도 불구하고 숙희 역의 김태리는 오디션에 지원했다.

김태리는 무려 '1,500: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박찬욱 감독을 통해 캐스팅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연기를 선보였을까'라는 김태리에 대한 궁금증과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이 나도 모르게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김태리의 연기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다.

144분간 표현되는 반복적 이야기 속에서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

때로는 한없이 천진난만하고 때론 칼날 같이 예리하며 때론 김민희와 대등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숙희라는 존재는 하녀임에도 불구, 당돌하고 거침없다.  

아가씨 히데코 역의 김민희

숙희의 캐릭터와 달리 히데코는 자라온 환경 탓에서인지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아가씨라는 '여자'는 백작이라는 '남자'에게 '나약한 여자'이자 '탐욕의 대상'일뿐이었다.  

1부가 숙희의 중심으로 포커싱 되었다면 2부는 히데코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히데코의 어린 시절부터 이어지는 스토리에서 또 다른 반전이 등장한다.

영화 중반에 히데코는 '낭독시간'이라고 했고 그 시간이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무슨 말인가 했다.

영국 신사 마냥 수트를 차려입은 남자들이 연극무대를 내려다보듯 앉아있다. 그리곤 책 속의 활자들을 히데코의 입으로 전해 듣는다.

후견인 코우즈키(조진웅)와 히데코

이 곳은 후견인 코우즈키의 책장이자 서재이고 지금의 히데코를 만들어낸 훈육장이다. 전형적인 일본 다다미 스타일에 영국스러운 멋을 입혀 고풍스럽고 엔틱 하게 만들어졌다. 마치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비밀장소에 온듯한 느낌이 든다.  


히데코의 목소리로 펼쳐지는 낭독회는 굉장히 수위가 높다.

사실적으로 표현되는 문장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와 에로틱하고 야릇하며 신비롭게 들려온다.

길지 않은 씬이지만 무게감이 있어 집중된다. 그리고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에로티시즘에 입혀진 낭독에는 사랑과 아름다움이 있었지만 거짓과 죽음이 함께 드리워져 고혹적이면서 섬뜩했다.

남자들은 그저 배경이 되고 히데코는 이 씬을 제대로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된다.




2. 노출 수위?

영화는 <아가씨>에 대한 노출수위로도 논란이 많았다.

대한민국 상업영화 중에서 동성애를 이토록 과감하게 다룬 퀴어영화(Queer movie)가 있을까 싶다.

※ 퀴어영화 : 'Queer'라는 단어는 본래 '기묘하고 이상한', '기분 나쁜', '괴상한'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동성애라는 성 정체성에 대한 그리 좋지 않았던 시선을 빗댄 말로 동성애자 스스로 자신들을 퀴어라 풍자하며 '동성연애자'라는 의미로 통하게 됐다.
결국 '퀴어영화'는 동성애자의 권익 보호와 그것을 주제로 한 영화를 일컫는다.
동성애를 다룬 알만한 영화라면 구스 반 산트 감독, 리버 피닉스 주연의 <아이다호>(1991),  78회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2005), 최근 많은 사랑을 받은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캐롤>(2015)이 대표적이다.
히데코와 숙희

'노출수위'에 대해 협의가 불가하다는 건 어쩌면 '마케팅'의 종류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미 퍼져나간 언론사들의 기사만 보면 '이 영화 노출이 어마어마한가 보다'라고 느낄 수도. 하지만 제작진과 배우 간의 윈윈을 위한 조건이라 했고 박찬욱 감독이 예상한 대로 프레임에 담았으리라 생각된다.

박찬욱 감독이 만들어낸 김민희와 김태리의 베드신은 두말할 필요 없이 파격적이었다.

어쩌면 관객들의 입장에서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다. '너무 과한 건 아닌가'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노출이 이야기를 흐리진 않는다고 본다.




3. 놓칠 수 없는 백미, 미장센(mise-en-scene)과 하이라이트

노출보다 중요한 시퀀스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당연하게도.

특히나 대저택에서 시종일관 등장하는 아름다운 미장센과 비주얼은 이 영화의 백미다.

제작진들이 애써 쌓아 올린 아름다운 비주얼과 탐미적 요소들이 영화 속 두 여자를 통해 산산이 부서진다.

제작진들에겐 아까울 수(?) 있지만 통쾌함은 분명하다.

탐욕스러웠던 후견인, 거짓 캐릭터인 사기꾼 백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델마와 루이스>가 생각나는 포인트다.


히데코를 유혹하는 사기꾼 백작(하정우)

영화 속 조연들이 선사해주는 깨알 같은 블랙코미디 또한 관전 포인트다.

하정우가 연기한 백작의 모습은 '가짜'의 존재이자 '진짜' 사기꾼으로서 케이퍼 무비에서나 볼법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숙희와의 케미도 실소가 터져나올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진중하게 흘러가는 플롯 속에서 튀어나오는 그로테스크함은 박찬욱 감독의 전작에서 익히 볼 수 있었던 구성요소들이다. 대저택 곳곳에 숨어있는 오브제들 역시 마찬가지다.

박찬욱이라는 이름을 가려도,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떠오를 만큼 박찬욱 색깔이 짙다.



영화를 잘 보다 보면 카메라 워킹과 미장센이 조화를 이룹니다.

틸팅(Tilting), 패닝(Panning), 모두 영화를 극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몇 번이나 감탄을 했네요.


'여성 폄하', '여혐'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이 우리나라 사회를 뒤덮었던 최근의 이슈 속에서,

이 영화는 남성적인 폭력성을 뚫고 자유로움을 찾는다는데에서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호불호'는 영화마다 따라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넋두리 하나 남깁니다.



에피소드.

전 어제 <아가씨>를 봤습니다.

어제(목요일) 아침, 수요일에 <아가씨>를 봤다는 지인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짜고짜

"아가씨, 완전 별로야. 보지 마. 그냥 보지 마"(진지)

영화라는 것이 10점짜리 별점이 있으면 1점짜리 별점도 존재하듯 개인의 취향이 분명한데 영화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듯한 발언은 스포일러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이상 개인적인 생각을 담은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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