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카페인 한잔
요즘 어딜 가나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 광화문으로 가는 출퇴근 동선에는 무조건 1개 이상 카페가 존재한다. 1개도 아니고 2개, 3개 아주 넘쳐난다. 집에서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는 약 200미터 남짓 되는 거리 안에 브랜드가 서로 다른 약 5~6곳의 커피숍이 있고 다시 회사 근처로 오게 되면 S 커피부터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곳까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많다. 회사 뒤편 골목에 자리 잡은 커피숍만 대략 4개 정도 되는데 어떤 곳은 아침부터 인산인해다. 무엇보다 가격이 싸서 가성비가 너무 좋다. 근데 바로 앞에 자리 잡은 커피숍은 사람이 별로 없다. 안쪽에서 사장님이 반대편을 바라보시며 한숨을 내쉰다. 인산인해인 곳은 테이크아웃 전문이고 사장님의 한숨이 새어 나오는 곳은 테이블이 있다. 무엇보다 가격차이가 있다. 하지만 테이크아웃 전문이라는 것과 테이블 유무는 일장일단 같기도 한데 어쨌든 이는 소비자의 선택일 뿐이다.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은 서양문물을 꽤 많이 접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가장 많이 접했다던 외국의 문물 중 하나도 당시에는 가배 혹은 양탕국이라 불린 커피였다. 보통 커피 원두는 원산지마다 그 풍미도 다른 편인데 고종은 커피를 많이 마셨던 사람이라 냄새는 물론 커피 맛을 조금만 봐도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알고 있을 정도로 애호가라고 했다. 만일 고종이 지금 시대를 살았으면 스스로 바리스타가 되어 신하들에게 직접 커피를 내려줬을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이렇게 좋아하는 커피가 지금 이 시대에는 여기저기 널렸으니 말이다. 고종이 커피 다음으로 좋아했다는 게 식혜라고 하던데 생각해 보면 식혜, 수정과 같은 전통음료나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대다수의 커피 브랜드가 커피 말고도 티나 에이드 같은 음료를 함께 판매하고 있긴 하지만 식혜, 수정과 혹은 쌍화차나 홍삼차 따위를 같이 판매하는 곳은 거의 없다. 사실 인사동에만 가도 이러한 한방차를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더러 있는데 대다수 아메리카노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그러니까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브랜드에서는 전통차를 마시기 힘들지만 전통차를 전문으로 하는 곳에서도 아메리카노 하나쯤은 마실 수 있다는 얘기다. 맛이 있든 없든. 어떤 곳에서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커피, 녹차 있습니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커피는 필수고 녹차는 덤이다. 하긴 커피나 녹차를 후식으로 주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만.
점심시간만 되면 길거리가 북적인다. 회사가 밀집한 곳이면 더더욱 그러하다. 주변에 식당도 여럿이긴 하지만 음식을 파는 식당보다 커피숍이 더 많다는 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길 하나만 건너가도 편의점, 편의점 옆에 편의점이라는 것도 재미있지만 카페는 더욱 심해 보인다. 회사 근처 어떤 건물 1층에는 전부 브랜드가 다른 커피숍이 나란히 존재하고 있다. 역시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커피숍 바로 옆이 커피숍이고 그 커피숍 옆도 커피숍이다. 그렇게 3곳의 카페가 있는데 다 장사가 되냐고? 장사는 다 된다. 어느 한 곳의 매출이 높은지 사실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저렇게 서로 경쟁하다가 제일 먼저 나가떨어지는 곳이 가장 매출이 적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요 근래 몇 개월간 가만히 지켜봤는데 최근 가운데 커피 브랜드의 간판이 내려가고 말았다. M커피와 B커피 사이에서 새우등이라도 터진 것일까. 하지만 다른 곳들은 건재했다. 물론 위치도 중요한 법인데 요즘 세상에서는 '밥은 걸러도 커피는 마시는' 시대가 아니던가.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 세상.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카페인에 중독되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나도 밥을 거를지언정, 하루 한잔씩 필수적으로 카페인이 몸을 채우고 있다.